1. 문화
[2470호] 201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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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도시 이야기] 뮌헨

먼 곳을 향한 그리움을 가르쳐준 도시

정여울  작가·‘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저자  

▲ 뮌헨의 상징, 프라우엔교회의 웅장한 모습. photo 이승원
여행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기분 좋아지던 때가 있었다. 아직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없던 시절, 나는 혼자 떠난 첫 번째 유럽여행에서 깨알 같은 글자들이 빼곡히 적힌 소책자를 늘 휴대하고 다녔다. 기차로 왕복할 수 있는 유럽 모든 도시의 운행 스케줄표였다. 바로 유레일 시간표였다. 틈만 나면 그 기차시간표를 펼쳐 들고 ‘다음에는 어떤 도시로 갈까’ 하는 설렘을 만끽하곤 했다.
   
   지금은 유레일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지만, 앱으로 검색하는 행위에는 ‘뚜렷한 목적지’가 필요한 반면 이리저리 책을 들춰보는 아날로그 시간표는 ‘목적 없는 헤맴’의 자유가 있었다. 앱이 아닌 책자로 시간표를 볼 때는 ‘베를린에서 파리까지’라는 식으로 검색하지 않고, ‘베를린에서 기차로 갈 수 있는 유럽의 도시는 몇 개나 있을까’라는 식으로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요긴한 유레일 기차시간표 덕에 나는 마음속으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베니스로, 모나코로, 페테르부르크로, 종횡무진 유럽의 도시들을 횡단할 수 있었다. 그때 열차시간표를 요모조모 연구하며 나를 가장 설레게 한 도시가 바로 뮌헨이었다.
   
   독일 뮌헨은 유럽의 거의 모든 주요도시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지금도 기차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뮌헨에서 출발하라고 권해주고 싶다. 뮌헨에서 취리히까지는 4시간, 뮌헨에서 파리까지가 6시간, 뮌헨에서 피렌체까지는 7시간 반, 뮌헨에서 암스테르담까지는 8시간, 뮌헨에서 잘츠부르크까지는 1시간 반이면 충분했다.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꿈꾼다면 뮌헨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01 노이에 피나코텍에 전시된 폴 고갱의 ‘신의 아들, 테 타마리 노 아투아(Te Tamari No Atua)’.
02 노이에 피나코텍의 하이라이트,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03 알테 피나코텍의 걸작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

   여행중독자들에겐 ‘마음의 수도’
   
   특히 복잡한 공항검색대를 통과하지 않아도 되고, 국경을 넘는 순간에도 별다른 검문검색이 필요 없는 유럽 기차여행의 매력을 만끽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뮌헨이 여러모로 편리한 도시다. 여행중독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마음의 수도’ 같은 곳이 생기게 마련인데, 내 마음의 수도는 뮌헨이었다. 뮌헨 중앙역 2층에서 유럽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기차들이 오가는 플랫폼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세계를 내 품 안에 고스란히 껴안는 듯한 환상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시청사와 성당이 있는 구시가의 중심지 마리엔 광장을 걸으며 온갖 골목길과 가게들을 구석구석 구경해보는 것도 좋고, 세상 모든 식물들이 다 함께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영국 정원(British Garden)에서의 산책도 좋다. 뮌헨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베를린의 ‘박물관섬’처럼 여러 개의 박물관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바러 슈트라세(Barer Strasse)’다. 그리스 신화를 알록달록하게 재현한 옛 그림들이 많은 알테 피나코텍,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그리고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작을 찾아볼 수 있는 노이에 피나코텍, 온갖 최첨단 자동차와 아름다운 가구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는 모데르네 피나코텍 등 뮌헨은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풍요로운 감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루브르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처럼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지는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천천히 여유롭게 온갖 명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뿐 아니라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 폴 고갱의 ‘신의 아들, 테 타마리 노 아투아’ 등 수많은 명작들이 뮌헨의 박물관 단지에 있다.
   
▲ 알테 피나코텍의 잔디밭에서 햇살바라기를 즐기는 사람들. photo 이승원

   맥주 매니아들의 성지이기도 한 뮌헨에는 ‘호프브로이’라는 거대한 맥주집이 있는데, 이곳은 분명 실내인데도 거대한 야외광장 같은 느낌을 준다. 전 세계의 국가(國歌)나 민요들이 매일 밤 연주되고,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도 답답하거나 비좁은 느낌을 주지 않고 오히려 다정하고 친밀한 느낌을 준다. 호프브로이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먼저 말을 걸어주는 외국인들이 많다.
   
   뮌헨대학에서 공부하며 뮌헨의 슈바빙거리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던 전혜린의 오랜 노스탤지어가 뿌리를 내린 곳. 바로 그 뮌헨의 거리 구석구석을 걷다 보면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살아가는 은밀한 기쁨을 꿈꾸던 전혜린의 목마른 그리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혜린이 뮌헨 시절을 그리워했던 이유는 그곳이 편안하고 행복하고 낭만적인 곳이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토록 가난하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고, 아는 사람 하나 없었던 시절, 그럼에도 자신을 지탱하게 해주었던 보헤미안적인 삶을 향한 막연하지만 절실한 동경이 뮌헨에 대한 그리움의 뿌리였다.
   
   ‘먼 곳에의 그리움’이라는 수필에서 전혜린은 이렇게 썼다. “먼 곳에의 그리움(Fernweh)! 모르는 얼굴과 마음과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 텅 빈 위(胃)와 향수를 안고 돌로 포장된 음습한 길을 거닐고 싶은 욕망. 아무튼 낯익은 곳이 아닌 다른 곳,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
   
   
▲ 뮌헨 거리의 여유로운 모습. photo 이승원

   전혜린에게 뮌헨이란
   
   전혜린은 숙소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터덜터덜 뮌헨의 거리를 걷다가 작은 방을 하나 구하고 그곳을 둥지로 삼아 번역과 집필활동을 시작했다. 그에게 뮌헨은 머나먼 어딘가를 향한 그리움, 페른베(Fernweh)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공간이었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도 아니고, 딱히 정해진 공간을 향한 그리움도 아닌, 단지 그곳이 그토록 멀리 있기 때문에 막연히 동경하는 마음. 그곳이 가깝고 친밀한 공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머나먼 곳, 신비로운 곳, 알 수 없는 곳이기에 더욱 가슴 아프게 동경하는 마음. 그 목마른 그리움이 있었기에 전혜린은 뮌헨에서도, 서울에서도 문학을 향한 꿈을 놓치지 않을 수가 있었다.
   
   전혜린은 보헤미안적인 삶을 동경했다. 그것은 정착민의 삶, 무언가를 끊임없이 쌓아올리고, 비축하고, 차지하는 삶이 아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보헤미안적인 삶을 향한 동경이기도 했다. “포장마차를 타고 일생을 전전하고(목적지 없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사는 집시의 생활이 나에게는 가끔 이상적인 곳으로 생각된다. 노래와 모닥불가의 춤과 사랑과 점치는 일로 보내는 짧은 생활, 짧은 생. 내 혈관 속에 어쩌면 집시의 피가 한 방울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공상해 보고 웃기도 한다.” 당시 돈으로 1마르크만 있어도 한 끼 식사를 넉넉히 해결할 수 있었던 뮌헨의 슈바빙거리에서, 전혜린은 먹는 것은 간단히, 빨리 해결하고, 더 많이 걷고,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학생활 중에도 보헤미안적인 삶의 동경을 누렸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뮌헨대학의 유일한 동양인 여학생’으로 살아가면서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완벽한 자유를 누리기도 했다. 타인의 시선에 결박되지 않는 삶, 누가 뭐래도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전혜린은 자기 안에 흐르던 ‘집시의 피’를 느꼈다.
   
▲ 뮌헨대학에서 공부했던 전혜린이 사랑한 슈바빙거리. photo 이승원

   머무르며 집착하는 삶이 아니라, 불같이 사랑하되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삶. 그런 삶을 꿈꾸게 해준 뮌헨의 ‘슈바빙적인 것’은 바로 그곳 특유의 넉넉한 인심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삶의 태도가 생활화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맥주 한 병만 시켜도 밤새도록 춤을 추며 음악을 느낄 수 있는 카페가 있었고, 1마르크만으로도 저녁은 물론 ‘하염없이 앉아 있을 수 있는 자유’와 ‘멋진 토론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선물받을 수 있었던 레스토랑들. 그곳에서 전혜린은 힘겨운 유학생활의 피로를 잊고 정신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는 힘을 발견하곤 했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가난이 수치 대신에 어떤 로맨틱을 품고 있고, 흩어진 머리는 정신적 변태가 아니라 자유를 표시하는 것으로 간주되며, 면밀한 계산과 부지런한 노력 대신에 무료로 인류를 구제할 계획이 심각히 토론된다.” 단정하고 깔끔하게, 뭔가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는 척 연기하는 삶이 아니라, 가진 것이 없어도 결핍을 느끼지 않는 삶, 오직 예술과 지식을 향한 강렬한 탐구욕만으로도 엄청난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 내가 뮌헨에서 느낀 감정도 바로 그런 따스한 충족감이었다.
   
   
▲ 뮌헨의 핫 플레이스 ‘호프브로이’. 바이에른 지방의 다양한 맥주들을 즐길 수 있다. photo 이승원

   독일 음식이 맛없다고?
   
   뮌헨은 나에게 ‘독일 음식은 맛이 없다’는 편견을 기쁘게 깨뜨려버린 도시이기도 하다.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이 살아 있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맛있었다. 파울라너, 뢰벤브로이 등의 맥주를 캔이나 병이 아닌 신선한 생맥주로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뮌헨은 맥주매니아들에게 매력적인 곳이다. 바이스비어(Weissbier)라고 불리는 밀맥주의 종류가 가장 많고, 맛도 뛰어난 곳이 바로 뮌헨이다. 매년 9월 말 시작되는 옥토버페스트에 세계인이 몰려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이에른 지방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흰색 소시지는 물컹해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정말 고소하고 풍부한 맛을 자랑했고, 짭짤하면서도 담백한 프레츨에 곁들여 먹는 각종 수제 소시지들은 그 접시 그대로 한국에 옮겨오지 못해 안타까울 정도였다. 평소에 소시지를 즐겨 먹지 않는 나도 뮌헨의 수제 소시지에는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커다란 냄비에 넣어 고소하게 구운 돼지고기 요리 슈바인브라텐(Schweinsbraten), 감자나 흰빵으로 만든 만두 크뇌델(Kndel),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내는 양배추절임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 독일식 족발이라고 볼 수 있는 바삭바삭한 슈바인학센(Schweinshaxen). 모두가 잊을 수 없는 독일 요리였다. 달콤한 바닐라소스를 곁들인 파이, 사과 스트루들(Apfelstrudel) 또한 뮌헨에서 맛 본 최고의 디저트였다.
   
   뮌헨은 BMW, 지멘스, 알리안츠 등 수많은 기업들이 자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수많은 명사들이 거쳐간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도 뮌헨이고, 세계적인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조크가 태어난 곳도 뮌헨이다.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 작가 에리히 캐스트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토마스 만, 퀸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도 뮌헨에 거주한 적이 있다. 그들 또한 뮌헨의 양파껍질 같은 매력, 즉 최첨단의 문명과 뜻밖의 전통들이 마치 처음부터 하나인 듯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다채로운 시간성의 매력에 빠지지 않았을까.
   
   내게 ‘먼 곳을 향한 속절없는 그리움’을 가르쳐준 도시, 뮌헨은 여러 번 가도 그 매력을 잃지 않는 도시, 오히려 갈 때마다 뭔가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주는 양파껍질 같은 도시다. 뮌헨은 고향이 아니어도 고향처럼 그리워할 수 있는 곳,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지만 전혀 무섭거나 낯설지 않은 친근한 도시다.
   
▲ 뮌헨의 마리엔광장 근처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아티스트들. photo 이승원

   뮌헨에서 나는 뼈아픈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뮌헨에 짐을 풀고 독일 곳곳의 소도시를 여행하면서 절대로 여기, 이 장소, 이 느낌은 잊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는데, 버튼 하나를 잘못 눌러 그만 500여장이 넘는 사진 파일을 몽땅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초점이 맞지 않았던 사진 ‘한 장’을 지우려다가 ‘모두 삭제’를 잘못 누른 것 같다. 혼자서 여행 다닐 때는 가끔 카메라가 ‘친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없어진 것은 그저 사진일 뿐인데 나는 사랑하는 죽마고우를 잃어버린 듯 가슴이 아팠다.
   
   게다가 동행이 없었기 때문에 그 사진파일 속의 추억은 오직 내 머릿속에만 남아 있었다. 추억을 의지할 만한 어떤 존재도 남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없어진 것은 전혀 실물의 무게가 없는 사진일 뿐이었는데, 마치 내가 걸어온 발자취와 시간을 모두 잃어버린 듯 황량한 느낌이 들었다. 소중한 추억마저 모두 날아가버린 듯 안타깝고 당혹스러웠지만 기계치였던 나는 어떤 대안도 찾지 못했다.
   
   거의 집착에 가깝게 엄청나게 사진을 찍어대다가 그 소중한 시간의 흔적을 몽땅 잃어버리고 나니 신기하게도 기이한 해방감이 몰려왔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부터는 사진에 집착하지 말고, 추억을 가슴에 새겨두는 데 집중하자’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티끌 하나 없는 명경(明鏡)처럼 맑아졌다. 가는 곳마다 ‘여기 이곳은 카메라가 아닌 내 마음속에 담아두자’라는 생각으로 바라보고, 걷고, 냄새도 맡아보고, 손가락으로 돌이나 나무의 촉감을 느껴보기도 했다.
   
   몇 년 후에 다시 뮌헨을 방문하여 새로운 사진들을 찍긴 했지만, 그때 혼자 정처 없이 걷던 뮌헨 곳곳의 추억은 오직 내 마음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진의 초점이 아닌 마음의 초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그제야 여행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내가 ‘단순한 여행의 감상이 아니라, 내 고민과 방황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담은 내밀한 여행기를 쓰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장소, 그곳이 바로 ‘먼 곳을 향한 그리움’이 불꽃을 피워올린 도시, 뮌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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