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73호] 2017.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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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소울푸드] 박일호 밀양시장의 ‘돼지국밥’

박일호  밀양시장  

어머니와 마주한 아침상은 소박하다. 밀양산 고추를 썰어 넣어 끓인 담백하고 구수한 된장찌개와 여름에 무성한 잎을 따서 간장이나 된장에 박아두었던 들깻잎 장아찌가 내 입맛을 당긴다. 밥맛이 달큰하다. 우리 어머니는 모든 자식이 그러하리라고 생각하고, 그러했으면 바라는 전형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가진 분이다. 경제적으로 부족할 게 없는 친정에서 집안사정이 넉넉지 못한 집안으로 시집오셔서 온갖 고생을 하셨다. 어머니는 말수가 적고 포용력이 있는 분이다. 내가 성장할 때 큰소리로 혼을 내거나 매를 든 적이 없으셨다. 그저 뒤편에서 자식이 하는 행동이나 일들을 가만히 지켜보거나 감싸주셨던 분이다. 지금도 말씀이 많으신 편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리저리 궁금한 것을 물어보시며 제법 말씀하기를 즐겨하신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적적한 기운을 아들을 통해 달래려 하시는 것 같아 적이 마음이 찡할 때가 있다.
   
   어머니의 손맛이 평생의 입맛을 좌우한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집사람이 들으면 섭섭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아직도 나는 어머니가 해주시던 요리의 간이 너무나도 잘 맞는다.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 먹었던 음식 가운데 요즘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보양을 위해 먹었던 돼지국밥이 생각난다. 돼지뼈로 우려낸 육수에 돼지고기 편육과 밥을 넣어 먹는 국밥류의 요리로 밀양의 향토 음식이다.
   
   돼지국밥의 유래에는 다양한 설이 있다. 6·25전쟁 중에 피란길을 전전하던 이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돼지의 부속물로 끓인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본래 돼지국밥은 밀양과 부산, 대구 지역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발전해오다가 현재는 그 세 가지 방식이 혼합된 형태에 이르렀다.
   
   지역별 특성을 살펴보면 밀양의 돼지국밥은 소뼈로 육수를 내 국물 색이 진한 것이 특징이다. 내 입맛에는 밀양 돼지국밥이 단연 으뜸이다. 대구의 돼지국밥은 내장과 같은 부속 부위를 다양하게 첨가한 점이 다르다. 부산식 돼지국밥은 돼지의 뼈로 우려내기 때문에 색이 탁하다. 세 지역 중 돼지국밥이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얻게 된 곳이 밀양이어서 돼지국밥은 밀양의 향토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돼지국밥을 만드는 방법은 먼저 돼지의 사골과 돼지고기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냄비에 물이 끓으면 사골을 넣어 한 번 데친 뒤 건져낸다. 다시 냄비에 물을 붓고 대파, 양파, 후춧가루, 청주 등을 넣어 끓이다가 사골과 돼지고기를 넣고 6시간 이상 푹 끓여낸다. 이때, 돼지고기는 30분 정도 끓이다 건져낸다. 돼지고기는 편으로 썰고, 부추는 4㎝ 간격으로 썰어 고춧가루, 새우젓, 들깨가루와 함께 무친다. 고춧가루, 간장, 다진마늘, 참기름, 새우젓 등을 섞어 다진 양념을 만든다. 그릇에 밥을 담고, 썰어놓은 돼지고기를 얹는다. 여기에 육수를 붓고 그 위에 만들어 놓은 부추무침을 얹는다. 기호에 따라 다진 양념으로 간하거나 새우젓이나 소금으로 간한다.
   
   돼지고기는 육질이 연하고 부드러워 소화가 쉽고 단백질이 풍부하여 근육 형성, 체력 보강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또한 불포화지방산이 함유되어 있어 혈관의 콜레스테롤 축적을 막아주어 동맥경화와 같은 성인병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밀양에서 돼지국밥을 만들어 파는 곳은 줄잡아 50여곳에 이른다. 이 식당들이 모두 똑같은 제조법으로 국밥을 만드는 것은 아니겠지만 밀양 돼지국밥은 맛과 질에서 큰 차이가 없다. 돼지국밥은 겨울철에 인기 있지만 요즘 같은 더운 날씨에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밀양은 여름이 덥기로 유명하다. 이열치열인지는 몰라도 시민들은 돼지국밥을 여름에는 보양식으로 먹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곳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기억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물론 본능에 기댄 그들의 여정은 험난하다. 자신을 삼키려 위협하는 대어들이 출몰하는 망망대해를 헤엄치고 강을 가로지르고, 세찬 폭포를 거스르며 수천㎞를 역류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생명이 열렸던 곳에 당도한다. 연어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선대를 이어갈 새로운 세대를 생산한다. 삶을 시작한 곳에서 이내 삶을 마감한다. 내 인생의 절차탁마는 모두 밀양을 향한 것이었다. 나도 연어처럼 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하면서. 고향의 맛 돼지국밥이 나를 내 고향으로 오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곳 밀양에는 국밥 이상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다양한 추억들이 곳곳에 스며 있다. 나는 청소년기 학교 다닐 때 소풍 장소로만 알고 있던 밀양의 여러 역사·문화적인 장소들에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주말에는 영남루에 올라 기둥이며 편액을 새삼스레 바라보고 여름 한낮의 고요한 밀양강을 굽어보았다.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 ‘표충사’도 몇 번 둘러본 곳 중 한 군데였다. 사명대사는 위인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라 식상한 소재로만 치부하고 있었는데 진지한 마음을 가지고 다시 가 본 표충사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유정의 충심과 의기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영남 사림파의 거두였던 김종직 선생을 모신 예림서원에서 나는 조선시대 유림들의 목숨을 건 강직함이 얼마나 엄중한 자기 완성의 노력이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밀양의 전통시장에 동료들과 몰려가 돼지국밥에 소주 한 잔씩을 기울이던 학창 시절이 새삼 떠오른다. 그 시절 추억의 친구들은 이제 모두 헤어져 각각 따로 살고 있다. 그럴 때 돼지국밥을 먹으면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돼지국밥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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