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85호] 20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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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소울푸드] 소설가 오효진의 벌금자리 비빔밥

고향의 봄은 ‘벌금자리’ 뜯기로 시작된다

오효진  소설가  

내 마음의 봄은 화사한 꽃에서 오지 않는다. 봄이 오면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상큼한 벌금자리다. 봄바람과 함께 봄 내음이 풍겨오면 내 가슴과 머릿속엔 벌금자리로 뒤숭숭해진다. 벌금자리를 뜯으러 가야 할 텐데. 입이 먼저 알고 군침이 돈다.
   
   벌금자리! 나에겐 그렇게 친숙하고 그리운 이름이, 충청도 사람이 아닌 타지 분들에겐 그저 낯설기만 한 풀 이름인 모양이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벌금자리 얘기를 늘어놔 봤지만 타지 분들에겐 전혀 통하지 않아서 좀 맥이 풀리기도 했다. 그 좋은 걸 왜 모를까, 참!
   
   이 글을 쓰느라고 인터넷을 뒤져 봤더니, 벌금자리가 ‘석죽과의 2년초로 벼룩나물’이라면서 충청도에서만 벌금자리라고 한단다. 그래서 그랬구나 싶다. 그런데 석죽은 뭐고 또 2년초는 뭘까. 벌금자리가 2년초라고? 무식이 마구 드러났다. 사전 설명에 볼도 메어졌다. 그렇게 맛있는 봄나물을 원 벼룩나물이라니!
   
   내가 어렸을 적 충청도에서는 이 벌금자리가 봄나물로 별미 중의 별미였다. 달래, 냉이, 꽃다지 같은 흔한 나물보다 훨씬 더 윗자리를 차지했다. 봄이 오면 벌금자리가 추위를 이기며 논바닥이나 논둑, 밭고랑 같은 곳에 기다시피 땅에 바짝 붙어서 자랐다. 검불 속에서 몰래 자라는 경우가 많아서 정신 차리고 찾아야 한다. 이른 봄엔 먹을 만큼 뜯으려면 허리가 제법 아파야 한다. 벌금자리는 다듬는 데도 품이 많이 든다. 검불과 함께 뜯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일일이 떼어내자면 성가시기도 하다. 한 사발을 채우려면 양도 많이 뜯어야 한다. 벌금자리를 깨끗이 씻기만 하면 이제 먹을 준비가 거의 끝난다. 고추장을 넣고 참기름을 살짝 친다. 그리고 식초를 조금 친다. 그냥 버무려 무침으로 먹어도 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보리밥을 사발째 덥석 쏟아 넣고 숟갈로 썩썩 비벼서 눈을 치켜뜨며 정신없이 퍼먹는 게 제격이다. 세상 어느 산해진미와도 비할 바가 아니다. 한 숟갈을 입에 넣으면 향긋한 봄 내음이 혀끝으로 스며들고, 씹는 순간 그 조그맣고 둥글넓적한 잎이 오돌오돌 씹히며 봄 소리를 전한다. 입속으로 가득 퍼넣은 비빔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다음 숟갈을 눈을 부릅뜨고 밀어 넣는다. 이 맛을 모르다니, 타지 분들이 참으로 불쌍하다.
   
   내가 참 오래 전 얘기를 하고 있다. 적어도 65년 전쯤의 얘기다. 타지 분들에게 벌금자리를 설명할 때는 화투 그림 4월의 흑싸리 같다고 한다. 약간 타원형의 작은 잎들이 서로 닮았다. 화투 얘기만 나오면 우리 옆집 기미코 누나가 떠오른다. 우리는 그때까지 일본 이름을 달고 살았다. 그 누나는 전쟁통에 나뒹굴던 박격포탄 포장상자로 화투를 만들었다. 포탄을 담았던 원통형의 종이 포장을 뜯고 오려서 화투장 크기로 만들었다. 그리고 신탄진 장터에 가서 염색물감을 사다가 화투를 그렸다. 화투가 귀했던 시대 우리는 그 화투를 빌려다 밤이 이슥하도록 팔뚝맞기 놀이를 하며 보냈다.
   
   우리 집엔 지름이 30㎝는 됨 직한 큼지막한 놋양푼이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후 우리 집에선 안택(安宅)이란 걸 했다. 박수무당을 불러다가 경을 읽으며 온갖 귀신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술과 떡을 대접하는 행사였다. 그때 무당이 그 놋양푼을 엎어놓고 북과 함께 두드리며 신나게 경을 읽었다. 낭낭하고 고운 소리가 쟁쟁 울리던 양푼이었다. 우리 어려선 그 놋양푼에 벌금자리 두어 사발을 넣고 밥을 썩썩 비빈 후 두리반에 둘러앉아 할머니와 함께 여러 식구가 맛있게 먹곤 했다. 또 군침이 넘어간다. 박수무당이 두드려대던 징 소리도 저쪽에서 들려온다.
   
   우리 시골집 부엌 나무청 옆엔 식초 항아리가 있었다. 할머니 적부터 내려오는 것이었는데 술을 담가 먹다가 시어지면 그 항아리에 부었다. 그러면 그게 식초가 됐다. 이 천연식초를 벌금자리 비빔밥에 조금 치면 금상첨화였다. 언제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 식초 항아리도 덩달아 그립다. 벌금자리 무침이나 비빔밥은 레시피고 조리과정이고 어쩌고저쩌고 할 게 없다. 식초와 참기름이 없을 땐 그저 고추장만 넣고 버무리고 밥을 비벼서 먹으면 된다. 어떤 땐 고춧가루, 간장, 마늘 같은 것을 넣고 무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놈이 왜 봄만 되면 사람을 홀릴까. 고향의 맛과 추억을 함께 실어오기 때문인가 보다.
   
   15년 전쯤 아내와 청계산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논둑에서 벌금자리 군락지를 만났다. 서울 사람들은 벌금자리를 토끼풀이라고 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우리는 정신없이 두어 사발을 뜯어서 그 자리에서 다듬었다. 산자락 식당에 들러 산채비빔밥을 시켰다. 나는 산채 대신 벌금자리를 듬뿍 부은 다음 초고추장을 넣고 썩썩 비벼서 눈을 부라리며 꿀꺽꿀꺽 삼켰다. 서울서 자란 아내는 혼자 산채비빔밥을 먹으며 이런 나를 멀거니 보고 있었다.
   
   고향에 내려와 살 때도 봄만 되면 벌금자리 찾기에 바빴다. 요즘엔 도시 사람들 때문에 봄나물이 귀해졌다. 도시 사람들이 차를 몰고 우르르 몰려와서 논밭은 물론이고 남의 집 마당에까지 들어와 봄나물 비슷한 것만 보면 모조리 뜯어서 검은 비닐봉지에 쑤셔넣어 갔다. 근처 인삼밭에서 뿌려대는 농약도 꺼림칙했다. 그러다 보니 터줏대감도 벌금자리를 차지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나는 선수가 아닌가. 나는 산책길에 강가 으슥한 곳에서 벌금자리 밭을 발견하고 금광이라도 찾은 듯 쉬쉬하고 뜯어 먹으며 고향의 봄을 만끽했다. 지금은 또 고향에서 떨어져 살고 있어서 몇 년째 그 좋은 맛을 그리워만 하면서 보내고 있다.
   
   최근엔 벌금자리를 양식해서 먹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 양식 벌금자리에서도 내가 맛보는 깊은 맛이 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벌금자리 비빔밥이 국민 식단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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