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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2503호] 20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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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예술기행] 시벨리우스의 헬싱키

지상의 현실에서 천상의 멜로디로

정여울  작가·‘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저자  / 사진 이승원    

▲ 헬싱키를 대표하는 건축물 템펠리아우키오교회.
왜 이렇게 모든 것들이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우며 어여쁠까. 핀란드의 헬싱키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도시의 인상이었다. 헬싱키의 항구와 곧바로 연결된 시장 좌판에 놓인 체리와 블루베리들, 걸거리의 평범한 카페 입구에 놓인 화분 하나하나,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자그마한 가게의 소품들, 그 어느 것도 예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들은 단지 팔기 위해 상품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상품’ 하나하나를 ‘소중한 존재’로 쓰다듬고 돌보는 듯 보였다. 무심코 놓인 듯한 자전거 한 대, 노천카페의 테이블 위에 놓인 양초 하나하나도 조금 더 정성스러워 보이고 조금 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거기 유명하고 화려한 것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조차 빨강머리 앤의 수다스러움으로 저마다 나름대로의 이름을 붙이고 싶은 곳이 바로 헬싱키였다.
   
   핀란드 사람들은 좀처럼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건을 살 때 엄청나게 오랜 시간 고민하고, 심사숙고하여 구매를 결정하기 때문에 ‘싸게 사고, 몇 번 입고, 빨리 버리는’ 최근의 패스트패션(fast fashion) 브랜드식 소비는 발붙일 틈이 없다. 자립심 강하게 키워진 핀란드의 자녀들이 일찌감치 독립을 할 때 부모들은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어떤 그릇을 가져가고 싶니?” “무슨 브랜드 그릇을 좋아하니?” 독립을 하거나 결혼을 할 때 그릇이나 냄비를 무조건 새것으로 사주는 우리 문화와는 달리, 핀란드 사람들은 오래오래 쓰던 식기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컨대 남녀노소 모두에게 두루 사랑받는 이탈라(ittala)의 식기들은 단지 트렌디한 제품이 아니라 대대로 물려주어도 전혀 촌스럽거나 지겹지 않은 디자인과 색감을 지니고 있다.
   
   내구성은 기본이다. 옷장에 옷이 꽉 차 있으면서도 ‘어디 갈 때 입을 옷이 없다’고 걱정하는 우리들과 달리, 그들은 ‘옷은 해지거나 떨어지면 산다’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소박한 신념을 실천한다. 폭탄세일이나 1+1 행사에 혹하여 많은 물건을 한꺼번에 충동적으로 사기보다는, 대를 물려 쓸 수 있을 만큼 좋은 물건을 제값 주고 구매하여 오래오래 길들이고 소중히 여기는 지혜는 핀란드 사람들이 척박한 환경(혹독한 겨울이 1년에 거의 6개월에 가까운 이곳의 기후와 좁은 영토, 부족한 자원 등) 속에서 오랫동안 안정된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해온 비결이기도 하다.
   
   
   무민 캐릭터의 고향
   
   나는 특히 핀란드의 대표적 만화 캐릭터인 ‘무민 가족’을 워낙 좋아해서, 귀여운 하마 가족 무민네가 그려진 머그컵을 두 개 사고는 엄청나게 뿌듯해하며 ‘이제부터 나도 이 그릇을 조카들에게 대대로 물려주고 싶다’는 야무진 결심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 또한 미니멀리즘을 지금 당장 실천하기엔 너무도 많은 물건을 쌓아놓고 살아온 ‘귀 얇은 소비자’에 속한다. 당장 쓸 것도 아니면서 할인 행사에 혹해 상품을 신나게 구매하고, 집에 돌아와 보면 거의 비슷한 디자인의 상품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유행은 변해도 취향은 변하지 않으니, 나도 모르게 자꾸만 비슷비슷한 물건을 쟁여놓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다.
   
   요새 유행하는 ‘살림의 미니멀리즘’은 사실 산더미처럼 쌓여 인간의 누울 자리까지 위협하는 물건과의 전쟁이자, ‘많이 사놓고 다 못 쓰고, 수납공간이 없어 한꺼번에 버리기’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포할 위험이 있다. 이미 우린 너무 많은 물건들을 집안에 쌓아놓아서, ‘삶의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한꺼번에 버리기’라는 초강수를 둘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미니멀리즘은 하루아침에 물건을 와르르 버리는 이벤트식 대청소로는 지속적으로 실천되기 어렵다. 1인 가구, 2인 가구가 늘어나고, 가구들의 평균 임대계약 기간이 외국에 비해 매우 짧은 한국에서는, 이사할 때마다 버려지는 가구와 의류 쓰레기들이 엄청나다. 핀란드 사람들의 검소함은 그들 특유의 미적감각과 어우러져 대대로 이어지는 일상의 미니멀리즘을 실천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된다.
   
   이사 갈 때마다 인테리어를 시시각각 바꾸면서 그때마다 가재도구를 다 버리는 것을 미니멀리즘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본래 물건의 가짓수가 적어야 하고, 버릴 물건이 없도록 지극히 깔끔하고 단순하게,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생활패턴을 최대한 단순화하면서도 미적인 감각을 충족시켜주는 인테리어야말로 미니멀리즘의 기본 정신일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진정한 미니멀리즘은 핀란드 사람들의 가구 물려주기나 그릇 물려주기 문화처럼 최소한 3대에 걸쳐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
   
   헬싱키를 대표하는 건축물로는 템펠리아우키오교회(Temppeliaukio Church)가 있다. 1969년 건축가 티모(Timo)와 투오모 수오말라이넨(Tuomo Suomalainen) 건축가 형제가 거대한 암반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만들어낸 교회이다. 워낙 웅장하면서도 장엄한 느낌으로 방문객을 압도하는 곳이지만 막상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정겨우면서도 아늑한 분위기가 금세 ‘이곳에 오래오래 앉아 있고 싶다’는 느낌을 주었다. 최대한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둥근 창을 천장과 외벽 사이에 커다랗게 만들었고, 천연 그대로의 질감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천연 암석의 벽면이 목재가구들과 어우러져 자연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방문했던 7월 말은 오케스트라 공연 리허설이 한창 진행되고 있어, 나는 라흐마니노프의 제2번 교향곡을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리허설은 완전히 무료로 공개되고 있었고, 연주자와 지휘자는 방문자를 전혀 개의치 않고 연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게다가 템펠리아우키오교회의 장중하면서도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천연 암반으로 이루어진 벽과 목재가구들 사이로 울려퍼지는 오케스트라의 음율은 천상의 멜로디처럼 영롱하게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단지 리허설만 봤는데도 벅찬 감동이 밀려와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연을 무료로, 게다가 거의 풀타임으로 관람할 수 있다니. 게다가 천편일률적인 검은 옷차림이 아닌 캐주얼한 옷차림의 연주자들을 바라보며 음악을 들으니, 더욱 자연스럽고 친근한 느낌이 들어 편안했다.
   
   
▲ (위) 시벨리우스공원 모뉴먼트. (아래) 암벽 교회 안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템펠리아우키오교회, 시벨리우스공원
   
   나의 헬싱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시벨리우스공원이었다. 음악가의 삶을 기념하는 공원이 그토록 아름다우면서도 세련되게 조성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나는 도착하기 전부터 인터넷 사진을 무수히 찾아보며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상태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지만, 시벨리우스공원은 내 상상과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광각렌즈에도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다채롭고도 광활한 풍경이 곳곳에서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들었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이어폰으로 들으며 황홀경에 빠진 나는 이미 잔뜩 감동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소담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하이드파크처럼 거대하진 않지만, 그 안에 동식물들의 가짓수가 워낙 많아 이 시벨리우스공원만으로도 하나의 오롯한 생태계를 구성하는 느낌을 주었다. 오리와 백조들이 여기저기서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으며 자기네들끼리 신나게 물장구를 치거나 일광욕을 하고 있었고, 침엽수림들이 빽빽하게 하늘 위로 치솟은 울창한 숲 곳곳에는 아담한 벤치가 놓여 있어 사람들이 마음놓고 오후의 햇살과 하늘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시벨리우스공원의 하이라이트는 시벨리우스의 초대형 동상과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을 닮은 눈부신 조형물이다. 시벨리우스의 비장하면서도 화려한 선율을 ‘시각화’하면 바로 이런 조형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라 힐투넨(Eila Hiltunen)의 1967년 작품인 이 시벨리우스 모뉴먼트는 마치 지상의 현실과 천상의 멜로디를 이어주는 꿈의 사다리처럼 보였다. 그는 아름다운 음악을 아름다운 미술작품으로 멋지게 ‘번역’해내고 있는 듯 보였다. 전체적으로는 파이프오르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과 각도에 따라 매우 자유롭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
   
   내 눈에 비친 시벨리우스 모뉴먼트는 ‘하늘에 걸린 악보’처럼 보였다. 지극히 내성적이고 무대공포증이 심했던 시벨리우스가 단지 특정한 관객이 아닌 저 하늘로 쏘아 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그려낸 악보처럼 보인 것이다. 시벨리우스 개인의 재능도 물론 중요했지만,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예술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의 혜택을 톡톡히 받아 더욱 안정적으로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음악가가 되고 싶은 그의 꿈에 반대하는 가족들 때문에 자신의 꿈과는 달리 헬싱키 법대에 입학하여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심각한 무대공포증 때문에 속앓이를 하던 시벨리우스였지만, 1897년부터는 국가에서 그에게 종신연금을 지급하여 그는 무려 92세까지 돈 걱정 없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위) 헬싱키 거리를 지나가는 전차. (아래) 시벨리우스공원 앞 호수 풍경.

   살아 보면 더 좋을 도시 top10
   
   시벨리우스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호숫가를 천천히 걸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짧게 방문할 곳이 아닌데, 헬싱키는 오래 머물면서 ‘살아봐야 제맛’인 도시가 아닐까. 온몸이 둥글둥글, 귀엽고도 정감이 넘치는 무민 캐릭터처럼 한없이 느긋하고, 누구도 공격하지 않고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는 핀란드 사람들처럼 살아 보고 싶었다. 아쉽게 리허설만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공연 전체를 천천히 관람하고도 싶고, 헬싱키 문화의 진수로 소문나 있는 ‘칼리오(Kallio)’ 거리도 하염없이 걷고 싶었다.
   
   일정 때문에 짧게 방문하고 나면 어김없이 ‘다음에 이곳에 꼭 다시 와야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내 마음속의 ‘살아보면 더 좋을 도시 top10’ 리스트 안에 헬싱키도 기쁜 마음으로 기입해 넣었다.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인터뷰를 통해 ‘셰어하우스’를 하며 거리낌 없이 ‘낯선 이방인’을 자신의 삶 깊숙한 곳으로 초대할 수 있는 핀란드 사람들. 가구를 물려받는 것으로도 모자라, 길가에 버려진 가구를 멀쩡하고 어여쁘게 개조하여 가구비 하나 안 들이고 새집 인테리어를 하는 사람들. 넓은 집에 욕심을 내어 부동산에 집착하지 않고 지금 있는 집을 최대한 효율적이고 아름답게 꾸며 기나긴 겨울 동안에는 ‘내가 직접 꾸민 인테리어 디자인’의 묘미를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
   
   재봉사 어머니와 용접공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진짜 서민의 딸 타르야 할로넨이 대통령이 된 나라, 핀란드. 이곳에서 누구도 도태시키거나 낙오시키지 않고, 한 명 한 명을 소중한 인재로 키워내는 핀란드식 교육 혁명의 내밀한 실상도 속속들이 알아보고 싶다.
   
   언젠가 다시 헬싱키로 떠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풍족해서 아름다운 도시가 아닌, 척박함 속에서도 최고의 아름다움과 격조 높은 문화적 향기를 뿜어내는 헬싱키 사람들의 ‘다정한 이웃’이자 ‘속 깊은 친구’가 되어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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