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43호] 201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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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맛, 음식 名家 이야기] 개성집

애호박·숙주 꽉 찬 만두 감칠맛이 입안 가득

정수정  음식칼럼니스트 criscook@hanmail.net 

▲ 조랭이떡을 넣은 떡만둣국.
김이 훌훌 나는 가래떡 뭉치에 말간 식용유 한 국자를 붓는다. 뜨거운 떡에 델까, 하얀 목장갑에 비닐장갑을 덧끼고 가래떡을 힘껏 주무르면 어느덧 둥그렇게 한 덩이가 된다. 이 떡을 손가락 굵기로 길쭉하게 비빈 다음 대나무 칼로 허리가 잘록한 조랭이떡을 일일이 썰어낸다.
   
   개성 음식을 제대로 내는 소문난 한식 명가, ‘개성집’ 주방의 오후 풍경이다. 만두와 동그랑땡도 마찬가지, 주인장 모자의 야문 솜씨와 정성이 모든 음식에 배어 있다. 손 많이 가는 음식을 직접 장만하느라 오후 쉬는 시간에도 이들은 쉴 틈이 없다.
   
   1·4후퇴 때 황해도 개성에서 월남한 김영희씨(작고)는 1967년 서울 용신동(구 용두동)에 개성집 문을 열었다. 워낙 빼어난 음식 맛으로 유명세를 탄 이 집은 고려대 장학회로도 유명하다. 개성집을 자주 찾았던 고려대학교 교수들의 제안으로 1994년부터 장학금을 기부하기 시작, 대를 이어 매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개성집은 서울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과 제기동역 사이 용두시장 안쪽 골목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 찾기가 쉽지 않다. 10여년 전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무성한 이곳의 개성집은 중간에 한 번 손을 보긴 했지만 반백 년 긴 세월의 흔적을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문을 열면 특이하게도 주방 곁을 먼저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다. 이로 인해 식당으로 들어가다 보면 조랭이떡을 펼쳐놓은 채반부터 펄펄 끓는 육수 등 맛있는 눈요기와 구수한 냄새에 군침이 먼저 돈다.
   
   메뉴는 다양한 개성 음식이 즐비한데, 특히 만두와 개성조랭이떡국, 오이소박이물김치, 동그랑땡, 개성순대, 양곰탕 등이 유명하다. 이맘때쯤에는 조랭이떡에 개성만두를 넣고 뜨끈하게 끓인 떡만둣국이 제격이다. 떡만둣국은 무병장수를 뜻하는 하얀 떡과 복을 상징하는 만두를 함께 담은 새해 음식으로 장수와 풍요를 기원했던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다.
   
   이 집 떡만둣국의 국물은 뼈를 푹 고아내 우유처럼 뽀얀 빛깔이 난다. 진국이지만 전혀 기름지거나 느끼하지 않고, 떡의 쌀전분이 살짝 녹아 아주 부드러우면서 담담한 맛이 일품이다. 따끈한 국물과 함께 떠먹는 조랭이떡은 부드러우면서도 탱글탱글, 쫀득한 식감이 즐겁다. 만두는 애호박을 넣어 동그랗게 빚은 개성식이다. 속이 꽉 찬 만두를 한입 베어 물면 부드럽고 담백한 풍미와 순한 감칠맛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최고의 만두라고 자신 있게 엄지 척! 만두 인기가 너무 좋아 포장을 원하는 손님이 많지만 상에 낼 수량도 빠듯해 개성집에 직접 가야만 먹을 수 있다.
   
   안주로 잘 나가는 동그랑땡은 손바닥만 하게 큼직하다. 달걀 옷 안에 두툼한 고기가 가득한데,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고 고소한 육즙이 살아 있다. 쪽파를 넣어 담근 오이소박이물김치는 따로 주문해야 맛볼 수 있는 이 집 별미 반찬. 아삭한 오이와 시원한 국물 맛이 좋아 오래전부터 인기다. 이밖에 다른 음식들도 전체적으로 맛이 부드럽고 순한 편이며 재료 고유의 풍미를 잘 살리고 있다.
   
   “우리 집 음식은 손님마다 호불호가 있어요. 슴슴하고 자연스러운 맛을 좋아하는 분들이 주로 오시지요.”
   
   김씨의 외며느리인 문현진(65)씨는 24년 전부터 시어머니를 돕다가 10년 전에 대물림을 받아 변함없는 음식 맛을 이어오고 있다. 고왔던 손이 거칠어지고 몸이 고달플 때도 있지만 음식 맛을 알아주는 단골 덕분에 기운이 난다. 9년 전부터는 아들 박일찬(41)씨가 가게에 나와 함께 꾸려가기에 더욱 든든한 마음이다. 이들 모자는 딱히 주방장을 두지 않고 음식을 직접 만든다. 손이 많이 가는 개성 음식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을 구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주방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두면 가업의 전통을 제대로 이어가기가 어렵다는 생각이다.
   
   아들 일찬씨는 만두피, 조랭이떡 등 힘이 많이 필요한 음식을 도맡아 하고 어머니 문씨는 만두소부터 반찬, 양념 등 모든 음식 맛을 주관하고 있다. 문씨는 인공조미료 대신 좋은 재료와 정성이라는 양념으로 맛을 낸다. 특히 떡만둣국은 시간의 마법을 더해 최고의 맛을 낸다.
   
▲ 대표 문현진씨와 아들 박일찬씨

   “육수는 한꺼번에 넉넉히, 여러 날 정성껏 고아야 맛나요.”
   
   문씨는 뽀얗게 우러난 국물이 항상 비치될 수 있도록 큰 들통에 늘 육수를 끓이고 있다. 떡국과 떡만둣국의 기본이 되는 육수는 국물이 진하게 우러나는 마구리갈비에 설낏, 우둔 등 고기를 넉넉히 넣고 푹 고아 감칠맛이 좋다.
   
   조랭이떡과 만두는 모두 손이 많이 가기에 하루씩 번갈아가며 만든다. 애써 만든 조랭이떡의 쫀득한 식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하루 정도 꾸덕하게 말리는 시간을 들이고 만두도 이틀간 냉동했다가 하루이틀 냉장실에서 녹이는 숙성의 시간을 가진다. 얼었다 녹는 과정에서 만두피가 더욱 부드러워지면서 만두 맛이 좋아진다고.
   
   만두피도 직접 만드는데, 일절 전분을 넣지 않고 오직 밀가루와 물만으로 반죽한다. 이 역시 오랜 경험의 노하우가 필요하기에 아무에게나 맡길 수가 없다. 기온과 습도에 따라 같은 양의 물을 넣어도 어느 땐 반죽이 되고 어떤 날엔 질게 되기 때문이다. 만두소는 개성식으로 채 썰어 절인 애호박과 삶은 숙주를 넉넉히 넣는 것이 특징이다. 겨울철에 애호박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도 고집스레 제 양을 꼭 지켜 넣는다.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동그랑땡은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반씩 섞고 갖은 양념에 매운 청양고추 다진 것을 넣어 누린내를 없앤다. 고루 주물러 찰지게 반죽한 다음 알맞은 크기로 떼어 손바닥에 스무 번씩 쳐서 납작하게 눌러준다. 달걀물을 입혀 부칠 때도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센불로 겉을 지진 다음 은은한 불로 속까지 익혀낸다. 오이소박이는 아삭한 식감을 살리기 위해 뜨거운 소금물에 절이고 따듯한 데서 딱 하루만 익혀 상에 낸다.
   
   모든 음식에 정성이 가득하기에 단품 하나하나가 다 맛있다. 그래서 여럿이 함께 오는 손님들은 오이소박이물김치, 북어찜, 개성순대, 파전, 동그랑땡, 만두, 떡국 등 이 집의 다양한 맛을 순서대로 즐길 수 있는 ‘4인 기본상’을 많이 찾는다.
   
   요즘 문씨는 생각이 많다. 동네가 재개발되면 주차하기 쉬운 외곽으로 나가고 싶지만 근교에 만만한 곳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홍어며 북어찜, 양무침 등 다양한 메뉴를 준비하는 것도 힘에 부친다. 아들에게 대물림을 할 때는 메뉴 가짓수를 대폭 줄여서 고생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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