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52호]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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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소울푸드] 배우 서갑숙의 쇠고기된장찌개

내 딸이 이어받은 그리운 어머니의 맛

서갑숙  배우  

길을 걷다 어느 집 담장 넘어 된장찌개 끓이는 냄새가 나면 나도 모르게 턱밑이 뻐근하고 콧등은 시큰해지며 걸음을 멈추게 된다. 아니면 물방울이나 땀방울처럼 동글동글한 것을 보아도 엄마가 끓여주던 쇠고기된장찌개가 먹고 싶다. 엄마가 그리울 때마다 기억을 더듬어 소고기를 넣은 된장찌개를 끓여 보지만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2학년 개학을 한 이틀 남겨둔 여름방학 끝 무렵이었다. 방학숙제의 하나로 문제집 한 권 풀어오기가 있었는데 엉터리로 답을 달았다가 엄마에게 들켜버렸다. 어디서 거짓말을 하냐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봐라” 하는 새까만 엄마의 눈동자가 파란 빛을 뿜는다. 엄마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솟더니 또그르르 굴러떨어졌다. 내 겨드랑이에서도 땀이 흐른다. 8월 한여름 저녁이었다. 방학 내내 동네 뒤 돌산을 놀이터 삼아 동네 머슴애들과 가위바위보 아카시아 잎 퉁겨 따기를 하며 놀았다. 편을 갈라 술래잡기 놀이를 하느라 여름내 온몸이 땀으로 젖어 뛰어다녔다.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엄마는 어떻게 아셨을까. 얄팍한 속임수로 숙제를 해보려 했던 내 자신이 창피했다.
   
   손들고 서 있으라는 벌을 내리고 엄마는 된장찌개를 끓이신다. 하얀 사발에 소고기 양지머리를 쑹덩쑹덩 썰어 집간장, 매실청, 다진 마늘, 들기름을 넣어 주물주물 재워 한쪽에 밀어 놓는다. 나무도마 위에 나박나박 무를 썰고 호박도 썰어 놓고 송송송 파를 썰어둔다. 달궈진 뚝배기에 재워 놓았던 고기를 넣고 볶는 소리가 치직치직 요란하다. 목젖이 당기면서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썰어둔 무를 넣고 옹골지게 더 볶는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나온 땀방울들이 엄마의 하얀 목덜미를 구르고 굴러 옷 속으로 숨는다. 도마에서 뚝배기 사이를 오가며 움직일 때마다 땀에 젖은 엄마 등은 속살에 적삼이 붙었다 떨어졌다 구름 무늬를 만든다. 팔이 아프다. 살짝 내려 볼까. 음식 하느라 돌아보지도 않지만 등에도 눈이 달린 엄마는 금방 알아챌 것이다. 노는 데 정신 팔려 미뤄둔 방학숙제를 개학이 다가오자 딱 한 번 엉터리로 했는데 그것도 알아내는 엄마이다. 슬슬 내려가려는 무거운 팔을 안간힘을 써서 고쳐 올린다.
   
   양념한 고기와 무가 어우러진 냄새 꽃이 화려하게 피어오른다. 엄마는 뚝배기에 물을 붓는다. 똥을 따낸 굵은 멸치 몇 마리를 넣는다. 노란 콩알이 보이는 햇된장을 한 숟가락 듬뿍 떠서 뚝배기에 투하한다. 뚝배기야 빨리 끓어라. 그래야 팔을 내리고 밥을 먹을 수 있다. 뚝배기가 보글보글 거품 노래를 부른다. 엄마표 쇠고기된장찌개가 노란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벽에 붙어 벌 받고 있는 내 손바닥을 간지럽힌다. 턱밑이 뻐근하다. 콧등이 찡하다. 배에서 청개구리가 운다. 팔도 아프고 배도 고프다. 흐르는 콧물을 훌쩍 들이켜고 고이는 침을 꿀꺽 삼킨다.
   
   “밥 묵고 밤을 새서라도 숙제 다시 다 단디이 하그라.”
   
   밥상 위에서 보글거리는 된장찌개가 반갑다. 입안 가득 찰 정도로 큼직한 소고기를 하 뜨거 호옥호옥 입바람을 불며 꼭꼭 씹는다.
   
   “아이, 맛있다. 엄마, 최고!”
   
   엄지를 척 들어올리는 나를 흘겨보며 엄마가 싱긋 웃는다. 고소하고 쫄깃한 쇠고기된장찌개의 맛은 설명하기 힘든,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 엄마만이 낼 수 있는 그런 맛이다. 먼 여행길에서도 뱃속에 사는 청개구리가 울면 너무도 간절했던 엄마표 된장찌개였다. 돌아와 엄마표 쇠고기된장찌개 한 뚝배기를 널름 비우면서 “엄마, 내 얼굴 많이 탔지?” 하면 “내 눈이 더 새까맣게 탔다” 하시던 엄마였다. 엄마가 세상을 달리 하실 때까지 우리는 오랫동안 같이 살았다. ‘살아서나 죽어서도 한집에 같이 살고 싶다’는 내 소원을 마지막 눈을 감으실 때 고개 끄덕여 들어주셨다. 화장을 한 뒤 엄마 뼛가루를 고온으로 녹여 동글동글하게 된 사리를 바다색처럼 새파란 유리항아리에 담아 집으로 모셨다. 걱정이 들거나 눈물이 날 때 엄마를 쳐다보면 엄마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어주신다. 돌아가시기 두 달 전 엄마는 내 딸들에게 된장찌개, 감주, 닭찜 등의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치셨다. 나한테 알려주지 않고 왜 손녀딸들에게 음식을 가르쳐주셨지? 속없이 말하는 나에게 딸들은 “엄마는 그걸 몰라? 우리가 엄마한테 된장찌개 끓여주라고 그러신 거지” 하며 놀린다. 유학을 가기 전날에도 큰딸은 된장찌개 한 냄비 가득 끓이고 작은딸은 외할머니식 감주를 한 솥 만들어놓고 멀리 프랑스로 떠났다. 한 눈에 하나씩 두 딸들을 내 두 눈 가득히 담아 들고 돌아와 혼자 냄비째 끌어안고 고소한 된장찌개를 먹었다. 콧등이 시큰해지고 시원하고 달콤한 감주를 마시며 눈물이 났다. 혼을 내시면서도 소고기 듬뿍 넣은 된장찌개를 끓여주시던 엄마도 생각나고 방금 막 떠난 딸들도 벌써 보고 싶어져 그립다.
   
   혼자 길을 가다가, 어느 집 담 모서리를 돌다가 된장찌개 냄새를 맡으면, 물방울이나 땀방울처럼 동그란 것을 보면 콧등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나는 이유. 내 가슴 깊은 곳을 쿡 찌르고, 콧등을 치고 턱밑이 짜르르해지는 그리움의 기억 때문일까. 방학이 되어 잠시 집에 돌아온 딸이 “엄마, 배고파. 외할머니표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 까만 눈으로 어리광이다. ‘그래 나도 어쩐지 오늘 외할머니가 무척 보고 싶다.’ 나는 얼른 몸을 일으켜 엄마의 땀 젖은 등을 떠올리며 소고기 양지머리를 쑹덩쑹덩 썬다.
   
   엄마가 하셨듯이 딸들이 내게 해줬듯이 나도 오늘 내 딸에게 먹일 쇠고기된장찌개를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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