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74호] 201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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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맛, 음식 名家 이야기] 한성칼국수

정수정  음식칼럼니스트 criscook@hanmail.net 

▲ 인기메뉴 수육
서울 강남, 도산공원 사거리에 보석처럼 아껴두고 싶은 오래된 음식명가가 있다. 이곳의 정갈하고 순한 음식은 몸에 따뜻한 기운을 주고, 맛깔스러운 안주는 술 한잔의 정겨움을 더하기에 충분하다.
   
   창업주는 서울 경기여고 출신의 인텔리 자매 정재선(작고)·정재실씨. 옥호는 1983년 창업 당시 자매의 맏언니 정재영씨(작고)가 운영하던 인사동의 한정식집 ‘한성’에서 따와 ‘한성칼국수’라고 지었다. 공교롭게 세 자매가 모두 일찍이 혼자되어 생활전선에 나섰는데, 재영씨가 인사동에서 한정식집으로 성공하자 둘째와 셋째도 언니를 벤치마킹해 음식점을 차린 것. 이들 자매는 의사 부친을 따라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개성과 서울의 맛이 묘하게 어우러진 음식으로 미식가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개업 당시 도산공원 사거리는 관세청과 두산건설 본사만 있을 뿐 일대가 거의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처음엔 두 곳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시작했지만 주변에 빌딩이 들어서면서 100석 남짓한 자리는 늘 만석이 되었다. 유명세가 더해지자 장안의 내로라하는 정재계 인사들의 발길이 잦았는데, 특히 정치인 김종필씨의 오랜 단골집으로 유명했다. 홀을 비롯해 크고 작은 룸이 6개 마련되어 있어서 식도락을 즐기는 연예인들도 찾는 명소다. 탤런트 고소영·장동건 부부, 이병헌·김민정 부부가 단골이고 영화배우 하정우와 정우성씨도 자주 들른다고. 이들은 이 집에서 가장 독립된 공간인 카운터 왼편의 조용한 룸을 선호한다.
   
   관세무역개발원 건물 지하의 한성칼국수는 간판의 ‘since 1983’이라는 문구처럼 입구부터 1980년대 분위기다.
   
   “단골손님들이 옛날 그대로를 원해서 시설만 일부 보완하면서 유지하고 있어요.”
   
   6년 전 대물림을 받은 재선씨의 맏아들 이종호(58)·김재연(55)씨 부부는 분위기는 물론 작고한 어머니의 손맛까지 그대로 이어받아 단골들의 사랑을 변함없이 받고 있다. “김치 양념부터 모든 소스를 제가 직접 만들어요.”
   
   며느리 김재연씨는 시어머니가 작고하기 전, 이 집만의 비법을 전수받았다. 요리를 즐겨하던 김재연씨가 음식 관리를 도맡으면서 예전보다 맛이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중앙 언론사 기자로 재직하다가 은퇴한 아들 종호씨는 가게 관리와 함께 카운터를 본다.
   
   메뉴는 수육과 제육을 비롯해 전, 낙지와 소라 데침이 있고 식사로 칼국수와 콩비지, 만두 등이 있다. 그중에 이 집의 얼굴은 역시 칼국수다. 고명으로 애호박나물만 달랑 올라가 있어 언뜻 보기에 너무 심플한 거 아닌가 싶지만 그것이 이 집 칼국수의 핵심이다. 국물을 한 술 뜨면 묵직하면서도 담백하고 고소한 쇠고기 국물 맛이 온몸으로 훈훈하게 퍼진다. 고추와 대파를 넉넉히 넣은 양념장을 조금 풀면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 오랜 단골들은 창업 때부터 변함없이 이어온 이 집 칼국수 맛이 신기할 정도라고 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칼국수를 처음 맛보는 사람들은 좀 심심하다 할 수도 있지만 한 그릇을 다 비워갈 즈음이면 중독성 있는 국물 맛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마치 밍밍한 평양냉면 맛에 눈뜨는 과정 같다고 할까!
   
   면발은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칼국수 면을 직접 뽑았지만 대량으로 만드는 데 한계가 있어 국수공장에서 손칼국수와 가까운 맛으로 특별히 맞춰온다. 칼국수의 고명은 애호박을 채썰어 데친 다음 물기를 꼭 짜고 갖은 양념을 넣어 나물처럼 무친다. 이때 담백한 국물 맛을 살릴 수 있도록 기름을 최소화하는 섬세한 정성을 들인다.
   
   
▲ 2대 대표 이종호씨와 아내 김재연씨.

   “언제나 변함없다고 인정받고 싶어”
   
   칼국수 맛은 김치 맛! 예나 지금이나 적당하게 익은 이 집 김치는 담백한 칼국수와 정말 잘 어울린다. 부추김치, 배추김치, 물김치 세 가지를 제공하는데, 그중에 특히 부추김치가 최고다.
   
   모듬전도 알차다. 자그마한 접시에 소담하게 담은 새우전, 대구전, 굴전, 호박전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집에서 정성 들여 부친 것처럼 맛있다. 서해산 굴 서너 알씩을 부친 굴전, 두툼한 새우살이 탱글탱글하게 씹히는 새우전도 별미다. 도톰하게 썬 애호박전은 아삭한 식감이 일품이다. 순 국산 녹두를 갈아 부친 빈대떡도 찾는 이들이 많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주당들이 모여 전과 빈대떡에 술 한잔 기울이는 풍경이 흔하다.
   
   칼국수 국물은 사골에 국내산 육우 양지 부위를 넉넉히 넣어 우려낸다. 양지는 알맞게 익으면 건져서 기름기를 제거하고 도톰하게 썰어 수육으로 내고 사골은 진국이 되도록 푹 고아서 기름기를 완전히 걷어내고 소금으로만 간해 칼국수 국물로 사용한다.
   
   수육도 인기가 워낙 좋아서 쇠고기 양지를 자주 삶아내기에 칼국수 국물에 쇠고기의 구수한 풍미가 진하게 녹아있다. 쇠고기 수육은 알맞게 삶아 도톰하게 썰어 나오는데, 부들부들하면서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제육도 두툼하게 썰어내어 식감과 윤기가 아주 수준급! 어쩌면 잡내 하나 없이 이렇게 맛있게 삶았을까 싶다. 그런데 삶는 데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랜 세월의 노하우에 따른 불 조절이 관건이며 재고 없이 매일 여러 차례 삶는 것이 비결이라고.
   
   점심엔 칼국수로 식사하는 직장인이 많다면 저녁에는 수육, 제육, 모듬전, 낙지 데침 등을 곁들이는 단골들이 많다. 요리들을 먼저 먹고 칼국수는 식사로 반 그릇이면 충분하다.
   
   이 집 음식이 최고의 맛을 유지하는 비결은 안주인 재연씨의 정성 덕분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해 음식 재료를 구입하는 것부터 신경을 쓴다. 고기를 비롯한 거의 모든 재료는 개업 이래 같은 집에서 사오고 낙지와 생굴은 서산에서 직접 조달받는다. 오후 3~5시에는 쉬는 시간인데 이 시간에 만두도 직접 빚고 김치도 담근다. 특히 칼국수에 곁들여 먹는 부추김치는 매일 담가 이틀 정도 숙성시켜 내놓는다. 대개 부추김치는 멸치액젓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이 집에선 값이 비싸도 질 좋은 새우젓만 넣는다. “손님들이 맛있다고 할 때가 제일 흐뭇하죠.” 손님 중 70~80%가 단골들이다.
   
   “어릴 때 할아버지랑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면서 30년 넘게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예전에는 백발 성성한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점점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지금은 20~30대도 즐겨 찾는 젊은 식당이 되었다. 드물었던 여자 손님이 많아진 것도 달라진 점이다.
   
   앞으로 새로운 메뉴를 더 개발할 계획은 없다. 예전대로 꾸준히 해서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변함없다고 인정받는 것이 부부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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