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82호]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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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맛, 음식 名家 이야기] 원조 삼거리부대찌개

쑥갓과 부대찌개가 만나면…

정수정  음식칼럼니스트 criscook@hanmail.net 

▲ 단일메뉴 부대찌개
1980년대 한창 청춘일 때 직장 동료들과 가장 자주 먹던 음식이 부대찌개였다. 여럿이 둘러앉아 빨간 부대찌개를 나누던 그 시절의 풍경을 떠올릴 때마다 군침이 절로 고인다. 겨울의 문턱을 넘고 있는 요즘 같은 때면, 추억의 부대찌개집으로 발길이 향하곤 한다. 햄과 소시지, 그리고 김치와 고춧가루! 동서양이 만난 퓨전음식의 최고 걸작이자 우리 음식문화 속에 깊숙이 뿌리내린 부대찌개의 익숙한 온기를 마주하고 싶은 것이다.
   
   부대찌개의 ‘부대’란 말 그대로 군부대를 뜻한다. 6·25전쟁 직후 모두가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도 미군기지만큼은 본국에서 보내온 음식들로 넘쳐났다. 그들이 즐기던 통조림 햄, 소시지 등 낯선 재료들이 부대 밖으로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우리 입맛에 맞는 조리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얼큰한 찌개 문화에 익숙한 우리들은 부대에서 나온 고기와 소시지에 김치와 고춧가루 양념을 섞어 보글보글 끓여냈다. 일명 ‘부대찌개’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대’란 이름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어 ‘명물찌개’란 이름을 붙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대찌개’라고 부르면서 점점 입소문을 탔고 유명세를 더해갔다.
   
   의정부, 문산, 동두천 등 미군 부대가 많았던 지역에서 번창하던 부대찌개가 전국적으로 널리 퍼진 것은 1980년대 중반. 국내 육가공 산업이 발달해 국산 햄과 소시지의 질이 좋아지면서부터다. 이전의 국내산 햄과 소시지에는 밀가루나 전분이 많이 들어가 국에 넣으면 텁텁한 맛이 나서 업주들이 꺼릴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부터는 대규모 부대찌개 프랜차이즈가 영업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라면 사리를 부대찌개에 넣어 먹는 문화가 본격화되자 1990년대 중반부터 아예 부대찌개 전용 라면 사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군인들의 도시인 경기도 파주시 문산에 부대찌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9년 ‘원조 삼거리식당’에서부터다. 창업주 김옥순씨가 문산읍 선유1리 문산 삼거리에 테이블 몇 개 안 되는 작은 식당을 차리고 처음 부대찌개를 끓여 팔기 시작했다. 손맛 좋고 인정이 넘치던 김씨의 작은 식당은 입소문을 타고 금세 유명해졌다. 수십 년 전 이곳을 드나들었던 오래된 단골들이 그 어느 곳보다 눈물 나도록 맛있게 먹었다는 부대찌개의 맛은 정확한 레시피로 창업주의 아들, 며느리들에게 이어졌다. 23년 전 김옥순씨가 작고한 뒤 사이좋게 형제가 가게를 대물림받은 것.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원조 삼거리식당’ 바로 옆 칸에 ‘원조 삼거리부대찌개’라는 간판이 나란히 걸렸다. 기존의 식당이 좁아 불편했는데, 마침 바로 옆에 상가가 나와 매입했다고 한다. 식당이 둘로 나뉘어 있고 간판도 달라 혼동하기 십상이지만 알고 보면 한 집이다. 36년 전 시집오자마자 식당에 나와 시어머니를 돕던 둘째 며느리 양선숙(61)씨와 박동철(61)씨 부부, 역시 동갑내기인 첫째 아들 박영철·양창순(63)씨 부부가 날마다 번갈아가며 빈틈없이 카운터를 보고 있다.
   
   
▲ 대표 양선숙씨

   7가지 햄·소시지에 이천 고춧가루
   
   메뉴는 오로지 부대찌개 한 가지. 반찬은 알맞게 익은 김치와 직접 담근 짠지 두 가지가 전부다. 단출하지만 사실 이 반찬마저 먹을 틈이 거의 없다. 부대찌개 자체가 워낙 푸짐하기 때문이다. 이 집 부대찌개는 찌개 위를 가득 덮은 쑥갓이 트레이드마크다. 국물이 보글보글 끓어 쑥갓 숨이 죽은 뒤 국자로 슬슬 저어 보면 아래에 햄과 소시지가 그득하다. 다진 고깃덩이들도 듬뿍 들어 있다.
   
   부대찌개를 맛있게 먹으려면 뚜껑을 덮고 한참 끓여야 한다. 소시지와 고기에서 국물이 진하게 우러나야 제맛이 나기 때문이다. 찌개 맛은 꽤 칼칼하고 매우면서 달지 않다. 프랜차이즈 부대찌개가 달아서 불편한 이들에게 딱이랄까! 소시지 향과 함께 고기가 진하게 녹아든 맛있는 국물에 자꾸 숟가락이 가고, 먹고 난 다음엔 입안에 텁텁하게 남는 것 없는 깔끔한 맛에 반하게 된다. 얼큰한 국물과 함께 다양한 햄과 소시지를 건져 먹다 보면 어느 새 밥 한 공기 뚝딱!
   
   부대찌개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면사리다. 소시지는 워낙 많이 들어 있어 추가하지 않아도 좋지만 부대찌개의 얼큰하고 진한 국물 맛이 배어든 쫄깃한 면발의 라면은 그대로 호로록 먹어도 좋고, 밥과 함께 즐겨도 환상이다.
   
   다른 집들도 그렇겠지만 삼거리부대찌개에서도 오래전부터 부대에서 흘러나온 재료는 쓰지 않는다. 법으로 금하고 있기 때문. 그렇다고 국내산 햄과 소시지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이 집은 예전의 맛을 그대로 지키기 위해 정식 수입 제품들을 사용한다. 창업주가 하던 그대로 7가지의 다양한 햄과 소시지에 넉넉한 양의 다진고기를 넣고 이 집만의 비법 양념장과 함께 잘 익은 김치와 대파, 쑥갓을 듬뿍 올려 느끼함을 잡아준다.
   
   칼칼한 맛을 내는 양념장은 간장, 마늘, 후춧가루 등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재료를 쓰는데, 핵심은 질 좋은 국내산 고춧가루를 사용한다는 것. 친척이 운영하는 이천의 방앗간에서 직접 빻은 것으로 조달받고 있다. 부대찌개에 들어가는 이 모든 재료는 정확하게 저울로 달아 일정한 양을 사용하기에 예나 지금이나 맛의 변화가 없다.
   
   경기 파주에서 나는 좋은 쌀로 지은 고소한 밥 한 공기가 1000원, 소시지와 고기가 그득한 부대찌개가 공깃밥 포함해서 1인분에 7000원이다. 재료값이 올라도 몇 년째 음식 가격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오랜 단골들 때문. 이 집은 특히 군인 단골들이 많다. “다른 지역으로 전출을 가도 우리 집 맛을 잊지 못하고 일부러 찾아오실 때 정말 뿌듯해요.”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이지만 특히 주말이면 어르신부터 젊은층까지 손님들 줄이 더욱 길어진다. 아무리 바빠도 오래된 직원들의 서비스는 친절하기 그지없다. 테이블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부족한 국물을 보충해주고 필요한 것들은 바로바로 가져다준다. 테이블은 낡았지만 반짝반짝 깔끔하고 각자 덜어 먹도록 비치한 스테인리스 김치통도 굉장히 정갈하다. 음식 맛만 좋다고 오랜 명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김치와 물만 넣어 끓일 수 있도록 만든 포장 제품도 인기다. 포장에는 꼼꼼한 설명서를 동봉해 누구나 쉽고 맛있게 이 집만의 부대찌개 맛을 낼 수 있다.
   
   2대 공동대표가 된 형제 부부는 현재 자신들의 자녀들 중 한 명씩에게 대물림 준비를 위한 수업 중이다. 오랜 비법 레시피부터 가게 운영법 등을 배우고 있는 자녀들에게 몇 년 후 3대 주인장의 자리를 내줄 계획이다. 50년 넘게 한 자리에서 형제가 의좋게 대를 이어가고 있는 삼거리부대찌개의 따뜻하고 진한 맛이 그렇게 또 이어지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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