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95호]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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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도시 이야기] 쿠바 아바나ㆍ코히마르

장소보다 사람들의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곳

정여울  작가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저자  

▲ 아바나에서 헤밍웨이가 모히토를 즐겨 마셨다는 카페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 앞 거리 풍경. photo 이승원
체 게바라, 어니스트 헤밍웨이, 피델 카스트로, 그리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쿠바를 직접 가보지 않고도 쿠바를 저절로 떠올리게 하는 뜨거운 상징들은 정말 많다. 어쩌면 ‘쿠바의 현재’보다도 ‘쿠바의 과거’야말로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싶은 여행의 이상향이었는지도 모른다. 쿠바의 현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쿠바의 과거에 대해서는 귀동냥이 참 많았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뿐 아니라 쿠바의 다양한 음악들을 틈날 때마다 찾아 듣곤 했고, ‘체 게바라 평전’이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거나 관람했으며, 헤밍웨이의 작품들과 카스트로 평전 등등도 집에 잔뜩 쌓여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도 ‘쿠바’ 이야기가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며 ‘언제 한 번 그 머나먼 아바나나 트리니다드로 떠나볼까’ 궁리하곤 했다.
   
   그런데 쿠바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쿠바에 며칠만 있으려고 했는데 한 달, 또는 그 이상을 눌러앉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쿠바에 그토록 매혹된 것은 쿠바의 과거 때문이 아니었다. 쿠바의 과거를 꿈꾸며 여행했던 사람들도 쿠바의 현재에 매혹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쉴드’를 치는 법이 거의 없는 쿠바 사람들의 순수함, 보는 사람을 첫눈에 무장해제시키는 그들의 꾸밈없는 미소, 그리고 뜻밖에 맛있고 가격 부담도 없는 음식 인심 등등. 이 모든 ‘쿠바의 현재’가 여전히 여행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쿠바는 내 오랜 꿈이었다. 그런데도 수많은 핑계를 만들어내며 쿠바행을 미루었다. 너무 멀어서, 시간이 없어서, 스페인어를 몰라서. 그 모두가 핑계임을 알면서도, 나는 제일 좋은 것을 맨 나중으로 미루는 어리석음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 마흔의 문턱에 덜컥 다가서고 말았다. 마침내 모든 것을 자꾸 미루기만 하는 내가 참 밉고, 싫고, 원망스러워질 때가 오고 만 것이다. 그때 비로소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만 쿠바로 떠나자고. 아바나의 뒷골목과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태어난 장소 코히마르와 체 게바라의 혁명의 꿈을 만나러 가자고. 그렇게 결심하자마자, 미친 듯이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출발하기도 전에, 마침내 꿈이 이루어진 느낌이었으니까.
   
   
   의사보다 택시기사 월급이 많은 나라
   
   가는 길은 정말이지 멀고 험난했다. 나는 멕시코시티를 거쳐갔기 때문에 더욱 험난했다. 인천공항에서 밴쿠버까지 거의 10시간, 밴쿠버에서 멕시코시티까지도 11시간이 넘게 걸렸다. 나흘간의 멕시코시티와 칸쿤 여행을 마치고 칸쿤에서 아바나공항까지 또 3시간30분이 걸렸다. 인천에서 미국 애틀랜타공항을 경유하여 아바나로 바로 가면 22시간 정도가 걸린다. 어떻게 가도 미국이나 캐나다를 거쳐야 하므로 최소한 22시간이 넘게 걸린다. 아바나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예약해 둔 올드카 택시를 탔다. 올드카는 아바나의 명물이다. 연식이 50~60년은 넘은 그 옛날의 명차들은 분홍색, 하늘색, 보라색, 온갖 과감한 빛깔들로 옷을 갈아입었다.
   
   내가 탄 올드카를 운전해준 택시기사의 이름은 줄리어스 시저다. 스페인어로 발음하면 줄리오 세자르. 그는 아바나의 택시운전사다. 그리고 훌륭한 의사이기도 하다. 왜 의사로 일하지 않고 택시 운전을 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쿠바에서는 의사 수입보다 관광객들의 택시운전사 수입이 낫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의료 복지를 자랑하는 쿠바 의료계의 서글픈 현실이 아닐까 싶다. 그가 운전하는 선홍빛 올드카를 타고 아바나를 질주하는 여행자는 그저 감사하고 행복했다. 의사이자 택시운전사이자 아바나를 사랑하는 훌륭한 시민이기도 한 그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아바나의 모든 것이 낡았다. 거리의 자동차도, 벽돌도, 보도블록도, 간판들도, 하나같이 낡았다. 특히 아바나의 벽들은 하나같이 오래되어, 긁힘과 부서짐의 흔적이 선연하다. 그런데 촌스럽지도, 궁벽스럽지도 않다. 아바나 사람들이 이 오래된 벽을 여전히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일까. 아바나에서는 세월의 흉터조차 눈부시다. 쿠바 사람들은 새것에 집착하거나 신제품에 열광할 기회가 차단되어 있기에 ‘오래된 것들과 새롭게 함께하는 법’을 찾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아바나에서는 새로운 것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유행에 신속하게 따라가는 우리의 삶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물건과 공간에 대한 더 깊고 오래 가는 애착이 느껴진다. 오래된 벽은 오래된 그대로, 낡은 자동차는 낡은 그대로, 서로의 찬란한 파트너가 되어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체 게바라, 그리고 피델 카스트로. 쿠바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는 세 사람의 얼굴이다. 이들은 엽서로, 티셔츠로, 포스터로, 열쇠고리와 냉장고자석으로, 심지어 건물의 로고가 되어 살아 있다. 아바나의 오래된 골목길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마음속에 아직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별’의 아스라한 빛을 끝까지 믿고 따라간 사람들이 아닐까. 게바라에겐 혁명이, 카스트로에겐 조국이, 그리고 헤밍웨이에겐 문학이 바로 그 보이지 않는 마음속 별빛이 아니었을까. 때로는 시대의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마음속에는 존재하는 별들의 발자취를 따라, 나는 끝없이 방랑하고 있는 여행자였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공연장을 찾아 음악을 들으며, 나는 훨씬 더 젊어지고, 훨씬 더 엔터테인먼트의 요소가 강해진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화려한 쇼보다 세상을 떠난 이브라힘 페레르를 비롯한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원년 멤버들의 노래가 더욱 그리워졌다. 내 마음속의 보이지 않는 별, 당신 마음속의 보이지 않는 별은 무엇일지 가만히 헤아려 보는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헤밍웨이가 아바나에서 즐겨 마셨다는 모히토로 유명한 카페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로 갔다. 카페 앞에서 사람들은 참 열심히도 셔터를 눌러댄다. 나도 덩달아 신들린 듯 셔터를 눌러대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다. 누가 이렇게 노래를 구슬프고 가녀리게 부르는가 했더니, 거리의 버스커였다. 그는 전혀 사교적이지가 않았다. 거리의 버스커들은 여행자들이 칭찬의 의미로 모자나 박스에 돈을 넣어주면 ‘고맙다’는 눈인사를 보내곤 한다. 그들은 청중과 교감하는 법을 거리의 혹독한 체험을 통해 온몸으로 알아낸 사람들이다.
   
   그런데 헤밍웨이가 모히토를 자주 마시러 왔다는 이 카페 앞의 버스커는 청중과 절대로 교감하는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대리석상같이 단단한 눈빛으로 오직 노래만 혼신의 힘을 다해 불렀다. 그래서 더욱 처연하고 애처롭게 들렸을까. 그의 영롱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그에게 인사하고 지폐를 전해주고 돌아서려는 순간, 그가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그의 목소리가 아름답다고 칭찬을 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청중과 교감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눈빛’으로는 청중과 교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자 나는 왠지 부끄러워졌다. ‘내가 감동했음을 당신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 너무 이기적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불현듯 그의 노래를 더 오래 듣고 싶어졌다. 그와 눈빛으로 교감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노래를 그냥 ‘걸어가며’ ‘스쳐가며’ 듣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서 듣고 있다는 것을, 그도 마음의 눈으로 느껴주기를 바라며.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도 아름답다는 것을 그도 깨닫기를 바라며 나는 그 자리에 오래오래 서 있었다.
   
   
01 헤밍웨이의 집이 있는 코히마르. 쿠바의 기념품을 가는 가게.
02 올드카와 낡은 벽이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03 코히마르의 성과 바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곳이다.
04 코히마르에서 만난 사랑스러운 소녀 클라우디아.
05 아바나의 골목길 풍경. photo 이승원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가 태어난 곳
   
   아바나 여행을 마친 후 나는 코히마르로 갔다. 버스를 타고 1시간20분 정도의 거리였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구상한 곳, 소설 속 바다사나이 산티아고 노인의 모델이 된 인물을 만난 곳. 그곳이 바로 쿠바의 코히마르다. 코히마르 사람들은 쿠바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노인과 바다’를 비롯하여 명작을 쏟아내던 헤밍웨이가 쿠바를 떠나 미국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자신들의 고기잡이배에서 쓰던 닻을 녹여 헤밍웨이의 동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가난한 어부들이 자신의 소중한 닻을 십시일반으로 기꺼이 녹여 만든 헤밍웨이의 동상은 이제 코히마르를 지켜주는 장승처럼 굳건히 서서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끝없이 인생의 절벽 아래로 떠밀리면서도 “실패할 수는 있어도, 결코 무릎 꿇을 수는 없다”고 믿었던 산티아고 노인의 속삭임이 아직 귓가에 쟁쟁하다.
   
   나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태어난 장소 코히마르에 갔다가, 클라우디아라는 사랑스러운 소녀를 만나 한참 동안 해변에서 뛰어놀았다. 클라우디아의 오빠와 언니까지 함께. 이 글의 독자들이 헤밍웨이의 흔적을 오롯이 간직한 코히마르에서 이 아이를 닮은 소녀를 만나면, 꼭 손을 흔들어주고 한동안 함께 놀아주었으면. 이 아이보다 조금 슬픈 눈망울을 가진 키 큰 아이를 만난다면, 아마도 클라우디아의 큰언니일 것이다. 클라우디아를 만나 해변에서 뛰놀던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꿈속에서 까르륵까르륵 웃는 나 자신의 미소를 보았다. 꿈속에서 나는 클라우디아의 키와 나이와 얼굴빛이 되어, 클라우디아와 함께 아기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우는 꿈은 수없이 꾸었지만, 내가 웃는 꿈은 처음이다.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쿠바는 내게 무의식 깊숙이 숨어 있었던 진짜 내 모습,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되찾아주었나 보다.
   
   체 게바라의 엽서들은 아직도 가장 인기 있는 쿠바 여행 기념품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체 게바라가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혁명을 향한 그의 열정뿐 아니라 넘치는 인간미 때문이기도 하다. 체 게바라의 ‘대장의 접시’라는 시가 있다.
   
   ‘식량이 부족해 배가 고플수록/ 분배에 더욱 세심해야 한다./ 오늘, /얼마 전에 들어온 취사병이/ 모든 대원들의 접시에/ 삶은 고깃덩어리 두 점과/ 감자 세 개씩을 담아 주었다./ 그런데,/ 내 접시에는 고맙게도/ 하나씩을 더 얹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취사병의 무기를 빼앗은 다음/ 캠프 밖으로 추방시켜 버렸다./ 그는,/ 단 한 사람의 호감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평등을 모독했으니.’ 이런 시를 쓰고,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삶을 평생 실천한 체 게바라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헤밍웨이의 집은 코히마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헤밍웨이의 서재를 보려면 줄을 쭉 늘어서서 한참 기다려야 할 정도다. 인간에게는 아무리 애를 써도 어찌해볼 수 없는 자기 안의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헤밍웨이를 통해 느끼게 된다. 헤밍웨이의 방을 보면 전형적인 마초적 남성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헤밍웨이의 방에는 여기저기 동물을 박제해놓은 장식품, 투우를 묘사한 사진과 그림, 사냥용 총기와 신발, 옷들이 보인다. 남성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헤밍웨이의 집을 관찰하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가 아끼던 가구와 물건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것에 감탄한다.
   
   하지만 그가 지닌 뜻밖의 보드랍고 연약한 측면들도 있다. 바로 헤밍웨이가 키우던 강아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커다랗게 새겨서 무덤을 만들어놓은 뒤뜰의 모습이 그랬다. 헤밍웨이가 즐겨 탔던 커다란 보트, 그가 ‘노인과 바다’를 구상하면서 머나먼 바다를 하염없이 내다보며 썼던 망원경이 있는 방도 있다. ‘노인과 바다’에서처럼 청새치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다 쏟아내는 집요하고도 남성적인 집착이 헤밍웨이의 아니무스(무의식의 남성성)라면, ‘깨끗하고 밝은 곳’에서 혹시나 카페에서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봐 카페 문을 쉽사리 닫지 못하는 웨이터의 여리고도 촉촉한 마음이 헤밍웨이의 아니마(무의식의 여성성)가 아닐까.
   
▲ (좌) 체 게바라의 엽서는 지금도 가장 인기 있는 쿠바 기념품이다. (우) 아바나의 한낮,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photo 이승원

   헤밍웨이의 단편 ‘깨끗하고 밝은 곳’(김욱동 옮김·민음사)에서 나이든 웨이터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늦게까지 카페에 남고 싶어.” “잠들고 싶어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밤에 불빛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말이야.” “젊음도 자신감도 아주 아름다운 것이긴 하지만 그것들만의 문제는 아니야. 매일 밤 가게를 닫을 때마다 어쩐지 망설이게 돼. 카페가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말이지.” 한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교묘한 양면성이다. 하나의 잣대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미묘한 어긋남, 극단적인 두 본성의 짜릿한 공존 같은 것들. 그것이 헤밍웨이의 매력이다.
   
   다른 장소들은 장소들의 아름다움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쿠바는 장소보다 사람이 더 기억에 남는다. 집에 가기 싫어서 하루 종일 길가를 서성이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한참 동안 뛰놀기도 했고, 만삭의 임산부가 스카프를 팔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기는 언제 나오냐, 이름은 뭐냐”고 물어보며 마치 우리 동네 이웃사촌을 대하듯 오지랖을 숨기지 못하게 만든 곳도 쿠바의 신비로운 힘이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른다. 내가 ‘친해지고 싶다’는 표정을 먼저 보내면, 경계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먼저 마음을 열어주는 그 사람들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눈빛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쿠바에서 나는 느꼈다.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와 가까이 있음을. 세상이 나를 향해 아주 가깝게 손짓하는 것이, 내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사람들의 따스한 미소가 좋았다. 기억 속의 체 게바라만큼이나, 책 속의 헤밍웨이만큼이나, 내 그리움과 그곳의 현실을 조금씩 일치시키는 여행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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