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96호] 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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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맛, 음식 名家 이야기] 민속찻집(끝)

쌉싸름 십전대보탕 보약이 따로 없다

글·사진 정수정  음식칼럼니스트  

▲ 대표메뉴 십전대보탕
긴 겨울도 이제 이별이다. 춘삼월 꽃놀이를 앞두고 바람이 시샘하는 환절기. 계절의 변화에 몸이 부대낄 즈음이면 서울 남대문 ‘민속찻집’의 보약 같은 한방차 생각이 간절해진다.
   
   서울 남대문시장 알파문구 맞은편 갈치조림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30년 전통의 민속찻집이 나온다. 손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통찻집이라는 작은 간판을 걸어둔 바로 그 집이다.
   
   비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갈치조림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선 가운데 자리 잡은 이곳은 세련된 카페에선 느낄 수 없는 푸근함과 정겨움이 가득하다. 테이블 몇 개 놓인 작고 소박한 공간이 좁은 계단으로 3층까지 이어진다. 요즘처럼 커피가 대세인 시절에 전통찻집 인기가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점심시간마다 3층까지 손님이 꽉꽉 들어차고,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테이크아웃으로 들고 나간다. 남대문시장의 소문난 음식인 갈치조림이나 닭곰탕, 꼬리곰탕을 먹은 이들이 코스처럼 이 집으로 우르르 줄을 잇는 것이다.
   
   메뉴는 십전대보탕·대추차·수정과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부분의 손님들은 십전대보탕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십전대보탕은 ‘동의보감’에서 ‘허약하고 피로해서 기와 혈이 모두 약해진 것을 치료하고 음과 양을 조화롭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 한방 보약이다. 얼핏 쓴맛이 떠오르지만, 이 집의 십전대보탕은 쓰지 않고 가볍고 은은하게 즐길 수 있는 차로 유명하다. 그래서 한약이라면 손사래를 치는 이들도 이 집에선 식후 디저트로 십전대보탕을 기꺼이 즐기게 된다.
   
   십전대보탕은 가게 입구 주방에서 늘 따듯하게 끓이고 있다가 주문을 하면 도자기잔에 가득 붓고 대추와 호두, 잣 등 꾸미를 듬뿍 올려 바로바로 내준다. 1000원을 더 내면 ‘특’을 주문할 수 있는데, 꾸미가 두 배로 들어가 거의 시리얼 수준이다. 특유의 한방 향이 폴폴 나는 십전대보탕! 한 모금 마시면 약재 특유의 맛이 부드럽고 달큰하게 어우러지면서 화사한 생강 향이 살짝 감돈다. 꾸미로 풍족하게 띄워준 대추와 호두, 잣 등도 달콤하고 고소하게 씹혀 입안이 즐겁다. 정성 어린 보약을 마신 기분이랄까! 이 한 잔에 온몸이 훈훈해지고 부대끼던 몸이 씻은 듯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디저트와 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이 집의 십전대보탕은 김영순(80)씨의 솜씨로 만들어졌다. 남대문시장에서 좌판을 하던 김씨는 30년 전 조그만 전통찻집을 인수했는데, 여러 가지로 미흡한 점이 많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김씨는 한방차 잘한다는 사람을 여럿 찾아다니며 맛의 비결을 배우고 나름대로 연구를 해서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었다. 차로 마시기 좋게 정성껏 달인 십전대보탕 한 잔을 2000원에 내놓았다. 공간이 워낙 비좁아 대우그룹과 신한은행의 임원실 등 남대문시장 주변 회사와 상가에 배달을 주로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남다른 솜씨를 지닌 김씨의 십전대보탕은 입소문 날개를 달았다. 개업한 지 꼬박 10년 후, 김씨는 사람들이 직접 와서 차를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넓혀 인근으로 이전했다. 김씨의 넉넉한 인정과 푸근함은 남대문시장의 수많은 손님들을 단골로 사로잡았다. 지금의 자리로 온 것은 약 12년 전. 당시 5000원이었던 십전대보탕의 가격을 여태 올리지 않고 있다.
   
   2년 전 김씨는 민속찻집 바로 옆에 갈치조림집을 창업했다. 김씨의 전통차 레시피는 개업 때부터 함께해온 며느리 김재숙(59)씨가 대물림해 이어가고 있다.
   
   “매일 아침 일찍 가게에 나와 십전대보탕 달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해요. 어머니의 비법 그대로 만들고 있죠.”
   
   원래 십전대보탕에 들어가는 약재는 당귀, 천궁, 작약, 계피, 황기, 진피, 갈근, 인삼, 백출, 숙지황, 감초로 모두 열 가지. 하지만 인삼은 체질에 따라 가려야 하는 특성이 있어서 재료에서 뺐다. 그리고 생강을 더한 것이 이 집 십전대보탕의 특징. 약재는 경동시장의 단골 한약재상에서 가져와 깨끗이 손질해서 사용한다. 한방차는 너무 진하거나 연하지 않게 농도를 잘 조절해 우려내는 것이 관건이다. 보통 한약을 달일 때는 재탕까지 하지만 이 집은 총 삼탕으로 차를 우려낸다.
   
   “약물이 강하게 우러난 첫물과 약하게 우러난 끝물은 합해서 쓰고 알맞게 우러난 두 번째 물은 그대로 쓰지요.”
   
   전날 달였던 약재도 버리지 않고 물을 넉넉히 붓고 1시간 정도 끓여 십전대보탕을 우려내는 물로 알뜰하게 활용한다.
   
   생강은 향을 살리기 위해 맨 마지막에 넣는데 하루 쓸 약물을 반으로 나누어 반은 전날 생강을 넣어 세 시간 정도 끓여 두고, 반은 다음날 일찍 생강을 넣고 끓여 합한다. 생강의 맛과 향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다.
   
   
   주 고객층 20~40대
   
   폭풍 같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손님이 좀 뜸한 시간에도 재숙씨의 바지런한 손길은 멈추지 않는다. 꾸미로 쓰이는 호두의 속껍질을 손으로 벗겨내고 전날 씻어서 체에 밭쳐 보들보들해진 대추도 씨를 빼고 곱게 채 썰어 둔다. 십전대보탕에 들이는 정성이 참 대단하다.
   
   대추차도 직접 달인다. 독이 들어 있다는 대추씨는 오래 우리면 행여 좋지 않을까 싶어 일일이 씨를 제거한다. 대추살만 압력솥에 푹 쪄서 고운체에 여러 번 밭친 다음 약한 불에서 3시간 동안 공들여 졸여서 만들기에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기가 막힌다. 여름에 인기 있는 오미자차나 수정과도 모두 이런 정성으로 직접 만든다.
   
   주 고객 연령층은 20~40대. 전통차라고 연세 지긋한 분들이 많이 올 거라는 예상을 뒤집고 인근 직장의 젊은 아가씨들이 꽤 많이 찾는다. 회사가 이전해도 근처에 올 때마다 들르는 단골들이 많다. 자녀가 남대문시장에 가면 꼭 드셔 보시라고 권해서 왔다는 어르신들도 종종 있다. 어디에 소개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본, 미국, 유럽 등 외국인 손님들도 많은 편이다. 가끔은 골목을 지나다가 십전대보탕의 향에 이끌려 들어오는 외국인들도 있다. 선교사와 함께 온 아프리카 사람들도 신기할 정도로 맛있게 즐겼다고 하니 이 집 십전대보탕이야말로 세계에 통하는 맛 아닐까!
   
   재숙씨는 그날그날 손님들이 마시고 난 찻잔을 자주 들여다본다. 찻잔이 싹 비워져 있으면 오늘 하루도 열심히 달였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지고, 남긴 차가 있으면 반성할 점을 찾아본다.
   
   “저희 집 차가 건강한 느낌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특히 맛있게 드셨다는 인사에 보람을 느끼죠.”
   
   차를 마시고 가는 손님들은 저마다 잘 마셨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오랜 단골이 나갈 때는 골목까지 따라나서기도 하는 주인장. 그녀의 다정한 모습이 우리네 엄마를 꼭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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