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편지를 쓰는 게 가장 힘이 든다.

언제부턴가 나는 새해를 맞으면서 ‘나이를 먹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내 나이 푸르를 때 새해가 시작되는 것을 나이의 축적으로만 받아들였었다. 그래서 새해는 언제나 나이를 먹는다는 부담으로만 다가왔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게 싫어 떡국도 뜨는 둥 마는 둥했다.

새해를 맞으며 홀가분해진 까닭은 내가 죽음을 생각하고 나서부터다. 죽음에 대한 의식이 새해의 의미를 바꿔놓았다. 내 인생에 한 번 더 1년, 52주, 365일이 주어졌구나. 작년에 눈을 감은 사람들이 그토록 간절히 염원했던 일 년이 내게 주어졌다! 이보다 더한 생의 환희(歡喜)와 축복이 있을 수 있을까.

지난해 세상과 갑작스러운 작별을 한 사람들 중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지금 그들의 영혼은 회한에 잠겨 있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날 줄 알았더라면….’ 그러니 지금 새로 맞는 일 년은 그냥 찾아온 것이 아니다. 수많은 불운을 피해 기적적으로 주어진 선물이다.

그 일 년 동안 나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산속 오솔길을 산책하며 더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다. 그러면 작년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글을 쓸 수도 있다.

나는 특정 종교를 갖고 있진 않지만 늘 죽음을 인식하고 산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사람의 불행은 대체로 가진 게 적어서도, 지위가 낮아서도 아니다. 죽음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숱하게 그런 사례들을 목격한다. 자기는 마치 결코 죽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겁없이 산다.

정신문명의 선진국 도시에 가면 공동묘지가 도심 한복판에 떡하니 있다. 뉴욕 맨해튼 월가(街)에도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작은 공동묘지가 있다. 우리나라는 공동묘지를 산속 깊숙한 곳에 둔다. 이게 정신문명의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다.

연말에 점심을 함께한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조금 살아 보니 성공이란 별 게 아니더라. 사회생활 하면서, 가족과 조직과 주변 사람에게 심려 끼치지 않고 가장으로서 자기 역할을 무사히 마치고 나오는 게 성공 아니냐. 사실 이게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초년부터 잘나간다는 사람들 보면 상당수가 한결같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랄프 에머슨(1803~1882)이라는 미국 시인이 떠올랐다. 나는 최근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를 접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경솔한 친구의 배신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이들에게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 정원을 가꾸든/ 사회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으므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성공은 아주 가까운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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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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