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토박이들은 모른다. 아니, 죽었다 깨나도 알 수가 없다.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은 고향을 떠나온 사람의 그 복잡한 심사를 헤아릴 수가 없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사연은 제각각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부모형제의 배웅을 받으며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입 하나를 줄이겠다고 비둘기열차를 타고 무작정 상경한 사람도 있고, 눈물을 훔치며 야반도주하듯 고향을 등진 사람도 있다.

어떤 사연으로 고향을 떠났듯 그들은 보란듯이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한다. 타향살이가 서러울수록 금의환향(錦衣還鄕)에 대한 열망이 강렬해진다. 서울과 고향의 거리가 멀수록, 서울에 이르는 그 길이 거칠고 험할수록 그에 정비례해 목표에 대한 의지도 금강석처럼 단단해진다. 출세하기 전까지는 절대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노라. 깊은 밤 베갯잇을 적시며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세계프로골프(PGA)를 제패한 최경주와 양용은이 각각 진도와 제주도 출신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섬의 끝은 바다,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

서울 사람에게는 부산 사람이나 인천 사람이나 모두 똑같은 촌놈일 뿐이다. 서울 ‘깍쟁이’들에게 소외감을 느낄수록 지방 출신들은 동향인에게서 위로를 찾고 연대감을 느낀다. 고향을 한 번도 떠나 보지 않은 사람은 고향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모차르트는 스물다섯에 고향 잘츠부르크를 떠나 음악의 수도 빈으로 왔고, 모딜리아니는 스무 살에 고향 리보르노를 떠나 예술의 수도 파리로 왔고, 도스토옙스키는 열여섯 살에 고향 모스크바를 떠나 백야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왔다. 음악가로, 화가로, 작가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품고. 그런데 금의환향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세 사람은 끝내 고향 땅을 다시 밟아 보지 못한 채 타향에서 눈을 감았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다고 해서 고향을 잊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가보고 싶지만 가지 못할 뿐이다. 사랑했던 연인은 세월과 함께 잊혀지지만 고향은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혀지는 대상이 아니다. 우연히 향어(鄕語)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친밀감을 느끼는 까닭은 무얼까?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의 산과 들과 내는 사람의 성품과 얼굴에 보이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향어에는 고향 땅에 축적된 세월과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인 정지용이 왜 고향을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고 노래했을까.

대처에서 파랑새를 찾아헤매다 늙어버린 청년의 육신을 고향은 언제나 말 없이 품고 토닥여준다. 고급 호텔에서 아무리 비싼 음식을 먹어도 어릴 적 개울에서 동무들과 끓여 먹던 어죽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어죽은 고향의 맛이기 때문이다. 한번 고향은 영원한 고향이다. 부모님이 안 계셔도 갈 수밖에 없는 곳이다.

1920년 1월 24일 파리의 한 병원. 가난과 병마에 찌든 불행한 천재화가 모딜리아니가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서른여섯 모딜리아니가 입술을 떨며 간신히 내뱉은 말은 고향이었다.

“이탈리아, 그리운 이탈리아.”

곧 설이다. 귀향(歸鄕)의 물결이 회유하는 연어처럼 이향(離鄕)의 경로를 따라 뭍에서 물에서 이어질 것이다. 고향은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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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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