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생 로랑, 가브리엘 샤넬, 윈스턴 처칠, 구스타프 클림트,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브 생 로랑을 제외한 네 사람은 모두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를 살았다. 패션디자이너로, 정치가로, 화가로, 그리고 정신분석학자로 불멸(不滅)의 업적을 남긴 다섯 사람. 산 시간도 공간도 다르지만 다섯 사람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이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반려동물을 애지중지했다는 사실이다. 프로이트와 처칠과 샤넬과 로랑은 개를 사랑했고, 클림트는 고양이를 끼고 살았다. 2008년에 타계한 로랑이 좋아한 반려견은 프렌치불도그였다. 이 개는 천운을 타고났는지 주인과 친하게 지낸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오브제가 되어 한 점의 ‘팝아트’로 남는 영광을 누렸다.

지상파든 종편이든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을 보면 으레 반려동물이 등장한다. ‘삼시세끼’ ‘신혼일기’ ‘나혼자 산다’…. 이들은 예상치 못한 이야깃거리로 프로그램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삼시세끼(Ⅲ)’의 득량도 편에서는 고양이 두 마리가 등장해 갖은 애교를 선보임으로써 결과적으로 반려묘(猫)에 대한 대중의 수요를 자극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개가 꼭 지가 사람인 줄 안다.” 침대에 올라와서 주인 옆에서 자고, 주인과 똑같이 옆에서 코를 골고….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던 개가 죽으면 매년 제사상을 올리는 이야기는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이 지점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왜 개는 동물이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사람처럼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일까. 도대체 개들은 왜 그러나?

인류 역사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야생동물 길들이기의 역사였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가장 먼저 길들이기에 성공한 동물이 늑대(개)였다. 고고학자들은 여러 가지 고고학적 증거에 의거해 3만4000년 전쯤부터 인간과 늑대가 공존해왔다고 추정한다. 그 2만년 뒤에 인간은 돼지를 길들였다. 이어 고양이, 말, 낙타 순이다.

왜 야생의 늑대는 인간 곁으로 왔을까. 바로 불 때문이다. 인간이 불을 사용한 흔적 중 가장 오래된 게 140만년 전 아프리카 케냐였다. 아시아에서는 베이징원인(猿人)이 발견된 저우커우뎬(周口店) 동굴로 70만~20만년 전이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추위에 살아남는 게 최대 숙제였다. 인간은 불을 사용해 추위를 피하고 사냥한 고기를 익혀 먹으면서 생존수명을 늘려갔다.

늑대 일부가 동굴에 사는 인간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따스한 온기에 이끌려 공존을 선택했다. 개는 인간의 사냥에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인간이 먹을 게 없을 때는 식량이 되었다. 2000년 전 실크로드 원정에도 대상(隊商)들은 말, 낙타와 함께 개를 동반했다. 개들은 오랜 세월 인간에게 노동력을 제공했다. 개는 이렇게 3만4000년 동안 식량·반려·노동력의 대상으로 존재해왔다.

그에 비하면 고양이가 인간에 길들여진 것은 불과 9500년 전.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손이 성할 날이 없다. ‘뜬금없이’ 주인의 손을 할퀴기 때문이다. 길들인 시간이 짧아서일까? 주간조선 2444호 ‘애견유치원생 콩이의 하루’를 읽고 반려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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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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