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하고 공리가 주연한 영화 ‘5일의 마중’이 있다. 중국 대륙을 피로 물들인 문화대혁명(1966~1976)이 시대적 배경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어린 학생들을 선동해 벌인 극좌폭력정치운동이 문화대혁명이다. 주인공 펑안위(공리 분)의 남편 루옌스(진도명 분)는 상하이의 지식인. 우파분자로 몰린 루옌스는 홍위병(紅衛兵)을 피해 5년간 도피생활을 한다. 영화는 ‘짜오판 여우리(造反有理)’를 외치며 패거리로 몰려다니며 만행을 일삼는 홍위병들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광기 속에 자행된 집단폭력의 결과를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남편이 돌아왔는데도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 채 ‘매월 5일’만 되면 기차역으로 나가 남편을 마중하는 여인을.

체코 프라하는 20세기 41년간 공산치하에 놓여 있었다. 세계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낭만의 도시 프라하에서 공산체제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야산의 경사면에 조성된 페트진공원에 가면 공산체제를 실감케 하는 조형물이 있다. 작품의 제목은 ‘전체주의 폭정(暴政)’. 계단을 따라 여섯 명이 서 있다. 맨 앞사람은 신체가 멀쩡하다. 두 번째 사람부터 신체가 조금씩 훼손되어간다. 마지막 여섯 번째 사람은 아예 머리와 상체의 절반이 사라졌다. 공산체제를 경험한 적이 없는 나는 이 조각 작품 앞에서 전율했다. 어떤 텍스트가 공산체제의 본질을 이처럼 표현할 수 있을까. 텍스트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조형예술의 힘이었다.

문화대혁명보다 30여년 앞서 어린 학생들을 권력 찬탈의 수단으로 이용한 사람이 있다. 아돌프 히틀러다. 1933년 3월, 나치당은 총선거에서 다수당을 차지한다. 그 직후 히틀러는 연설을 통해 “나라의 정치적 의사와 국민 의사의 동질화가 완료되었다”고 선언했다. 히틀러는 독일 전 국민의 나치화를 목적으로 국민계몽선전부를 신설해 장관에 괴벨스를 임명한다. 괴벨스는 국민의 정신적 동원을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차곡차곡 진행해 나간다. 같은 해 9월에는 나치당 사조직 ‘히틀러 유겐트’를 조직한다. 10~18세 청소년들이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했다. 2년 뒤에는 아예 법을 바꿔 ‘히틀러 유겐트’ 가입을 의무화했다. 나치당은 어린 학생들에게 절대 복종을 요구했다. 히틀러 유겐트는 나치당의 선봉대가 되어 히틀러의 어록을 되뇌이며 독일 전역을 휘젓고 다니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중국의 홍위병이 마오쩌둥 어록을 들고 다니며 행패를 부린 것과 흡사하다.

국정 역사교과서 채택을 놓고 벌어진 최근의 상황은 과연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검정·국정 교과서 중 어느 교과서를 선택하느냐는 학교의 자율권에 속한다. 그런데도 좌파세력은 갖은 방법으로 학교장을 겁박해 국정 역사교과서 선택을 막았다. 어린 학생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따져볼 겨를도 없이 여기에 동조했다. 그 결과 전국 중·고등학교 5566곳 중 대한민국 편인 역사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한 곳만 남게 되었다.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지간이었던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전체주의다. 인간의 공적 영역을 통제하는 게 독재체제다. 전체주의는 인간의 사적 영역이나 정신을 통제한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나는 전체주의의 불길한 징조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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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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