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정권을 향한 미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런 체감지수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훨씬 높다. 한반도 주변에 배치된 미군의 동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18일 SNS에 올린 글을 음미하게 한다. “북한은 매우 나쁘게 행동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을 수년 동안 가지고 놀았다.” 영어 원문은 이렇다. ‘North Korea is behaving very badly. They have been ‘playing’ the United States for years.’ 이 말을 풀어쓰면, 미국은 북한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에 분노하는데 동맹국인 한국 내부에서는 잔악무도한 북한정권을 편드는 경우를 자주 본다.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씨가 그런 경우다. 정씨는 지난 2월 김정남 독살과 관련해 ‘우리가 비난할 만한 처지가 아니다’라는 취지로 김정은 편을 들어 파문을 일으켰다. 정씨는 지난해 8월, 사드(THAAD) 배치와 관련해 역시 중국 측 입장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이 외에도 정씨의 국가관을 의심케 하는 발언은 수두룩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임동원씨도 비슷한 경우다. 육군 소장 출신인 임동원씨는 육사 교수 시절 생도들에게 ‘공산주의 비판’ ‘대공전략론’ 등을 가르쳤다.

정씨는 1945년 만주에서 태어나 전북 임실에서 자랐다. 경기고·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인 정씨는 1977년 통일부 전신인 국토통일원 공산권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 32살 나이에 공무원이 되었다. 이후 그는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일해연구소 연구위원·동북아연구소 수석연구위원·민족통일연구원 부원장 등을 거치며 공산권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고,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다. 20여년간 그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논문들을 발표했다. 그가 1982년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쓴 논문 ‘북한의 대남전략’은 지금 읽어봐도 버릴 말이 거의 없다. 논리도 탄탄하고 문장도 깔끔하다. 김일성이 ‘민주(民主)’라는 구호를 앞세워 어떻게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 해왔는지를 적시한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을 감염시킨 주사파 논리가 ‘북한의 대남전략’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차관으로 발탁되기 전까지 그의 이념을 의심할 만한 대목은 찾기 힘들다. 그러던 그가 김대중 정부에 몸담은 뒤로는 사람이 180도 달라졌다. 53년간 살아온 인생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북한 편들기를 노골화했다.

정씨의 변신을 두고 세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첫째는 원래의 본색(本色)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둘째는 일신의 영달을 위해 진영논리를 따른 기회주의자라는 시각이다. 마지막은 살아온 인생에 비춰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사람인데 북한을 다녀오고 나서 변했다는 시각이다. 북한을 다녀온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북한을 터무니없이 두둔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정세현·임동원씨의 경우는 북한을 다녀오고 나서 달라진 사람이라는 주장이다.

대한민국은 한·미동맹의 반석 위에 세워진 나라다. 대선이 한 달 남았다. 어느 쪽이 권력을 잡든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초강력 제재를 깨트리려는 불장난은 금물이다. 그것은 정권의 차원을 넘어 민족의 재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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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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