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봄, 전북 부안의 위도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위도가 고향인 지인의 초청으로 친구 여러 명과 위도에서 1박2일을 지냈다. 위도는 가냘프면서도 아름다운 섬이다. 꼭, 소설 ‘빨간머리 앤’의 무대인 캐나다 동부 프린스 에드워드 섬(PEI) 같다고나 할까. 어느 곳 하나 눈길이 머물지 않는 곳이 없었다. 위도의 구석구석을 자동차로 돌아다니다 한 곳에서 잠시 숙연해졌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해 페리호 참사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탑이 있었다.

1993년 10월, 위도와 부안을 오가는 서해 페리호가 침몰해 승객 292명이 숨졌다. 선사(船社)가 돈벌이에 법과 규정을 무시한 채 무리한 운항을 하다 일어난 참사였다. 21년 후인 2014년 4월 세월호가 침몰했다. 서해 페리호나 세월호나 침몰 원인은 똑같았다. 다른 것은 딱 한 가지. 사망자들의 신분이었다. 세월호는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다수였고, 서해 페리호에는 여행객·낚시꾼·섬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후 서해 페리호는 레테의 강으로 떠내려갔지만 세월호는 정반대다. 세월호는 서서히 ‘정치’가 되었고 마침내 ‘종교’로 승격되었다. 세월호의 노란 리본은 反대한민국·反박근혜·反보수우파의 상징이 되었다. 똑같은 해난사고인데,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해난사고가 정치화된 적이 없다. 1993년은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첫해였고, 경쟁자였던 김대중은 정계 은퇴 후 영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2014년은 박근혜 정부 2년 차였다. 경쟁자였던 문재인 후보는 국내에 있었다.

세월호는 인양되었지만 대선정국에서 여전히 떠다니고 있다. 지난 4월 16일 경기도 안산에서 있은 세월호 3주기 추모식. 대선후보 문재인·안철수·유승민·심상정 4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만이 세월호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숫자로 보면 4 대 1이다.

이 장면은 두 가지 메시지를 보여준다. 하나는, 세월호가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후보는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닌다. 정치인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세월호 눈치를 본다. 특히 야당 정치인들에게 세월호는 ‘성역’이다. 다른 하나는 후보 4인은 탄핵 정국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사람들이라는 사실. 세월호는 3년째 광화문광장을 불법 점거하면서 수많은 괴담의 진원이 되었다. 세월호가 점령한 광화문광장은 탄핵정국에서 촛불시위의 중심이었다.

세월호 추모식에 가지 않은 홍 후보는 이렇게 일갈했다.

“세월호 사건은 정치권에서 얼마나 많이 울궈먹었냐. 더 이상 정치인들이 거기 얼쩡거리면서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안 했으면 한다.” 세월호의 정치화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이 말은 위축되어 있던 우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발언으로 몹시 기분이 상해 있던 우파들은 모처럼 홍 후보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기울어진 선거판에서 치러지는 대선 초반은 문재인·안철수 2강 양상이다.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은 문 후보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한다. 만일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취임식장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올까.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북핵과 미사일로 요동치는 국제관계의 격랑 속에서 한국호(號)를 구하는 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중요한 일이다.

키워드

#편집장 편지
조성관 편집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