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7017. 5월 20일 새로 문을 여는 서울역 고가공원의 이름이다. 이미 서울시내 지하철역 승강장 게시판마다 ‘서울로 7017’ 홍보물이 나붙어 있다. 주간조선 2456호는 ‘거대한 아파트 베란다 같은 597억짜리 공원’이라는 제목으로 뉴욕 하이라인(High Line)파크와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SNS상에서 높은 호응을 얻었다.

노후 고가도로는 철거하는 게 맞다. 그게 도시재생 개념과도 일치한다. 청계고가도로가 철거되고 청계천을 복원해 지금 서울시민이 청계천을 거닐며 얼마나 큰 기쁨과 휴식을 얻고 있나. 아현고가도로와 서대문고가도로가 철거되어 그 주변이 새롭게 태어났음을 우리는 수시로 확인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노후 서울역 고가도로를 철거하지 않고 뉴욕 하이라인파크처럼 만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면 한번 기대해 보자’는 마음이었다. 외국의 좋은 것은 당연히 배워와야 한다. 뉴욕은 현대예술의 수도다. 과천현대미술관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을 벤치마킹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597억원을 썼다는데 인간의 향기는커녕 관료주의 냄새만 진동한다.

서울로7017을 보면서 자꾸만 떠오르는 게 서울시청 청사다. 서울시청 청사는 2013년 건축가들이 선정한 광복 이후 최악의 건축물 1위에 뽑혔다. 누구라도 그렇게 평할 것이다. 국가상징도로에 있는 공공 건축물은 철학의 집적체다. 장소성, 합(合)목적성, 시대성 3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서울시청 청사는 장소성과 합목적성에서 낙제점을 받는다. 덕수궁과 연결되는 국가 상징도로의 중심축에 있다는 장소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주변 환경과 어울려야 한다는 ‘어번 컨텍스트(urban context)’에도 맞지 않다. 청사는 기본적으로 사무용 건물이라는 목적성에 전혀 부합하지 못한다. 박물관에 온 것 같다. 서울시청 청사 설계자라는 불명예를 안은 건축가는 유걸씨. 당시 서울시장 오세훈씨는 몇 가지 설계안 중에서 유씨의 설계안을 선택했다. 도대체 그는 왜 그랬을까. 주변환경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생각을 정녕 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런 건축물은 바다가 가까운 송도신도시에나 가야 그런 대로 어울릴지 모른다.

더군다나 오씨는 당시 ‘디자인 서울’을 시정의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을 때다. 그렇게 입만 열면 디자인을 강조한 사람이 하필이면 최악의 디자인을 골랐을까. 도대체 뭐에 씌었길래 그런 선택을 했을까. 누가 봐도 아닌데. 무슨 철학으로? 잘못 지어진 공공 건축물은 도시 전체의 격(格)을 떨어뜨린다.

서울로7017과 서울시청을 보면서 최고 결정권자의 철학과 지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철학은 인문적 지성에서 싹튼다. 디자인은 개념을 선(線)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개념은 철학에서 부화된다. 박원순 시장이 서울역고가도로 공원화를 추진하면서 전문가들에게 어떤 철학과 개념을 제시했는지 궁금하다.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개막되었다. 문 대통령은 어떤 국정철학을 가지고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 것인가. 그를 찍지 않은 60%의 국민은 그의 철학과 역사관을 우려한다. 6·25 피란민의 아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누가 뭐래도 성공한 나라다. 부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에 긍정의 건축물을 하나 지어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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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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