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편집장레터
[2465호]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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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나이에 어울리는 것

조성관  편집장 maple@chosun.com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아무것도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로 인해 관심을 갖게 된 TV 광고가 있다. KIA자동차의 신차 스팅어 광고다. 자동차가 도로를 질주할 때 이 노래가 세 소절 나온다. ‘아무것도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는 에디트 피아프가 말년인 1961년 프랑스 파리 올랭피아극장에서 부른 노래다. 횡경막을 울리며 터져나오는 ‘r’ 발음이 압권인 노래다. ‘장밋빛 인생’과 ‘사랑의 찬가’는 다른 가수들도 리메이크했지만 이 노래는 오로지 피아프만이 부를 수 있다.
   
   이 광고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나에게 어울리는 것보다, 나이에 어울리는 것을 찾지 않는가.…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스타일 편)
   
   ‘언제부터 안정적인 삶이 나의 꿈이 되었는가?…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퍼포먼스 편)
   
   이 자동차 광고를 접할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나에게 어울리는 것보다, 나이에 어울리는 것을 찾지 않는가’. 먼저 운율(韻律)을 보자. 두운·요운·각운이 완벽하다. 카피는 한국 사회의 고질(痼疾)에 대해 여러 가지를 함축한다. 개성을 억압하는 교육 시스템이다. 사람은 이름과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타고난 재능도 다르다. 현행 입시교육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목표를 향해 몰려가도록 몰아세운다. 공부가 아닌 다른 분야의 재능을 타고난 학생에게 노력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다고 교사와 학부모가 최면을 건다. 이것은 입시교육에서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전부 똑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정녕 내면의 자아가 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카피가 진짜 강조하는 것은 ‘나이 문화’에 대한 비판이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갉아먹는 게 바로 ‘나이 문화’다. 우리들은 걸핏하면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이 나이에 내가~’ ‘나이가 몇인데 그래~’.`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한 영화 ‘인턴’에 왜 한국 관객이 열광했을까. 사람들이 바로 나이를 따지는 문화의 폐해를 깨닫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백남준이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으로 꽃피는 도정에는 결정적인 두 사람이 등장한다. 요셉 보이스와 존 케이지다. 20대 후반에 독일에서 두 사람을 만나 평생 동안 교유했다. 존 케이지는 20년 연상이고, 요셉 보이스는 12년 연상이다. 한국 같으면 이런 교유가 가능했을까. 냉정히 되돌아보자. 우리가 나이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게,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지 못한 게 얼마나 많은가.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다. 짧은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해봤느냐다.
   
   ‘언제부터 안정적인 삶이 나의 꿈이 되었는가?’ 이 카피도 가슴을 친다. 지금 수십만 명이 9급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이들이 새벽녘 노량진 골목길에서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은 바로 공무원이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 광고는 되묻는다. 안정적인 삶이 당신의 꿈이었냐고? 당신이 정녕 간절히 하고 싶어했던 일을 하고 있냐고? 문득, 궁금해졌다. 9급 공무원이 가슴을 뛰게 하는 직업일까, 한 번뿐인 인생에서.
   
   “Non, rien de rien(아니, 아무것도)… Car ma vie car mes joies(왜냐하면 내 삶이 내 기쁨이), Aujourd’hui ca commence avec toi(오늘 그대와 함께 시작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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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윤영삼  ( 2017-07-12 )    수정   삭제 찬성 : 반대 :
제 글 하나 소개합니다.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들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토론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일방 통행적인 문화는 팽배해 있다.
노사간의 갈등이 잘 풀리지 않는 것도 (알다시피, 한국사회의 경직된 노동시장은 선진국 진입의 최대 걸림돌임), 국회가 극히 비효율적인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사회 토론문화의 不在에 크게 기인한다.
그리고 필자는 그 근원적인 원인이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릴 적부터 토론에 대한 교육을 거의 받아보지 못하고 주입식 교육만 받은 데 크게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과거 학교수업 중에 서로 토론을 벌이는 수업을 해본 적이 있는가
토론 문화의 不在로부터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은,
1) 남의 말을 경청할 줄을 모른다. 즉, 다른 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무슨 의사를 전달하려 하는지)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2)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즉, 내 것과 다른 생각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다.
3)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발표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냥 시키는 대로 해’, 까라면 까’ 라는 막무가내적 언어들이 생겨났다.
사실, 우리 한국인은 유교적 가부장적 제도하에서 수천 년을 살아옴으로 인해 토론을 꺼리는 (두려워하는) 내재적인 습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에 토라도 달면 바로 호로 자식이 되고 나이 많은 사람의 말은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문화 속에서 자라왔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말싸움에 좀 밀리면 너 몇 살이야’ 라고 묻기도 한다. 이 전통은 그대로 이어져 직장에서도 상사와 좀 다른 생각이라도 말하게 되면 바로 찍힌다. 그러나 정작 공개적인 토론의 장이라도 열리게 되면 서로 눈치만 보고 선뜻 말하려 하지 않는다. 잘못 말 했다간 찍히니까.

민주주의 전통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의회 장면을 TV로 본 적이 있다.
우선 좌석 배치가 특이하다. 우리의 국회는 말발굽 식으로 좌석이 펼쳐져 있고 발언자가 앞에 나가서 발언을 하지만 영국의 좌석 배치는 둥그런 원형식이며 발언자는 중앙에 위치한다.
신기한 것은 발언자가 발언을 하는 중이라도 의원들은 동의 한다는 언어적 표시 또는 야유를 보낸다. (우리 국회처럼, 집어쳐! 내려와! 같은 말이 아님) 한편 발언자는 야유를 받아도 전혀 기죽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계속 펼치고 결국 표결로 안건을 마무리 한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 같으면 저렇게 야유를 받을 때 기죽지 않고 계속 자신의 주장을 잘 펼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저들이 저런 방식으로 토론하고 결론을 낼 수 있는 힘은 어릴 적부터 토론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자신의 주장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후회 없이 펼치고, 그런 다음 다수결 원칙에 의한 표결 결과에 당당히 승복하는 것이다. 왜 내 생각보다 더 나은 생각이 있을 수 있다는 근본적인 이해력과 겸손함 때문이다.
우리에겐 이 두 가지가 다 없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후회 없이 펼칠 수 있는 능력과 문화도 형성되어 있지 않고 상호 합의한 룰에 따른 최종 결정에 승복하는 문화도 형성되지 않았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정치 수준이 앞으로도 크게 나아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미래의 세대가 이러한 구태를 박살내 주기를 바라면서 그 첫걸음으로 초등교육 전 과정에 토론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전문 프로그램을 빨리 도입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서서히 해결해 나가는 원동력이요 출발점이 될 것 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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