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8월 11일자 국제면은 이슬람국가(IS)가 중동에서 아시아로 이동해 세력을 확산하고 있다는 기사를 한 면으로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특히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IS 입대한 우즈베키스탄 소년들’이라는 제목의 사진이었다. 비록 두건으로 얼굴은 가렸지만 키, 몸집, 눈빛, 자세 등으로 어린아이라는 게 확연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섬광처럼 뇌리를 스친 단어가 있다. 세뇌(洗腦)! 세뇌당한 이들은 ‘소년 병기’로 돌멩이처럼 던져질 것이다. 동시에 수년 전 자진해서 시리아를 통해 IS에 입단한 한국 청년이 연상되기도 했다.

지난 8월 13일 오후 서울 독립문 근처에서 이상한 현수막이 서너 개 붙어 있는 게 보였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캐리커처가 인쇄된 현수막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전쟁 연습 중단하라! No 사드’ 현수막만 보면 세계가 주시하는 한반도 전쟁 위기의 원인 제공자는 미국이다. 북한의 ‘ㅂ’ 자도 보이지 않았다.

8월 9일 평양 시민들이 평양 김일성광장에 모여 미국에 대해 군사적 보복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평양 시민들이 들고나온 푯말에는 이런 구호들이 보였다. ‘미국에 핵불벼락을’ ‘섬멸적 보복타격’…. 평양은 특별한 신분인 사람만 거주하는 지역이다. 그런데도 평양 시민들의 표정은 그늘지고 꾀죄죄하고 찌들어 있었다. 북한 주민 1900만명은 주체사상이라는 종교에 세뇌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실상 바깥세상과 차단되어 있으니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사는 게 그리 기이할 것은 없다.

평양 주민들의 표정과 함께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경북 성주에서 사드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인 통일선봉대 대학생들이다. 이들은 흰색 반바지에 청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있었다. 얼굴은 뽀얗게 살이 올라 있었고 구김살이 없이 해맑았다. 통일선봉대 대학생들은 북한의 핵과 ICBM 개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은 채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시작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눈에는 한반도 위기의 원인 제공자는 미국의 트럼프다. 인터넷으로 클릭만 하면 언제든지 국제정세를 알 수 있음에도 이들은 객관적 사실에 대해 눈을 감는다. 통일선봉대 소속 대학생들 역시 누군가에게 조직적으로 세뇌를 당했음이 틀림없어 보였다.

1996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종철씨는 오래전 자신의 주사파 활동을 고백하며 전향 선언을 한 적이 있다. 이종철씨에 따르면 대학 신입생 때인 1992년 7일간 계룡산에서 겨울 합숙훈련을 하며 매일 15시간씩 주체사상 학습 세뇌를 받았다. 이후 이씨는 20대를 주사파, 즉 김일성주의자로 대한민국에서 살았다.

1953년 휴전 협정이 조인되었을 때의 일이다. 북한에 포로로 억류되어 있던 미군 장교와 병사들 중 일부가 공산주의를 찬양하며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소련이 거짓을 진실로 믿게 만드는 치밀한 세뇌공작을 편 결과였다.

청와대 핵심에 대학 시절 과거 주사파 활동을 하던 이들이 10여명 들어가 있다. 이들이 스무 살 언저리 철부지 시절의 생각을 지금까지 할 거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6·25 피란민의 아들이다. 지난 6월 워싱턴 장진호기념비 연설에서 밝힌 것처럼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에 투철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사드배치와 같은 안보 이슈에 갈팡질팡하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제발, 대통령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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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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