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편집장레터
[2473호] 2017.09.04
관련 연재물

[편집장 편지] 아! 차베스

조성관  편집장 maple@chosun.com 

얼마 전 국제정치 전문가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러 가지 화제가 오갔는데, 한 사람이 “지금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꿀꿀이죽을 먹고 있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동안 베네수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설마 꿀꿀이죽이야 먹겠는가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더니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는 지금 국가 기능이 마비되어 국가 부도 일보 직전이다.
   
   남미의 베네수엘라는 6·25전쟁 때 한국에 물자를 지원했다. 그 이후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 우고 차베스(1954~2013)로 인해 베네수엘라는 한동안 국제 뉴스에 자주 오르내렸다. 차베스가 대통령직에 오른 게 1999년. 차베스는 이후 4선에 성공하며 2013년까지 14년간 장기집권했다. 그는 어떻게 14년간 지배했을까. 베네수엘라는 석유 매장량 세계 1위다. 차베스는 수출액의 80%에 달하는 오일달러를 이용해 무상교육·무상의료와 같은 산타클로스 복지를 펼쳐 빈민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차베스는 남미 사회주의 지도자를 자처하며 반미(反美)를 부르짖었다.
   
   차베스가 한국 언론에 집중 조명된 기간은 노무현 정부(2003~2008) 시절이다. 2006년 KBS 스페셜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차베스의 도전’이라는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KBS 스페셜은 차베스의 좌파 포퓰리즘과 반미주의를 한국이 배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당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이 차베스의 좌파 포퓰리즘이 결국 베네수엘라를 망가뜨려 수렁에 빠지게 할 것이라는 경고를 보낸 것과는 정반대였다. 이 프로그램은 일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어떤 네티즌은 자신의 블로그에 “우리에 비해 물질적 부가 떨어질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정신세계는 우리를 서서히 앞서 나갈 수 있다”라는 글을 올렸다. 좌파 인사들도 앞다투어 차베스를 찬양하는 글을 좌파 미디어에 기고했다. 노무현과 차베스를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하는 칼럼을 쓴 사람도 있었다. 차베스의 국가주의를 찬양하는 책들도 쏟아져 나왔다. ‘차베스, 미국과 맞짱 뜨다’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 ‘사회주의는 가능하다’…. 이런 책들에 대한 서평도 차베스 찬양 일색이다. 어떤 서평은 차베스를 가리켜 ‘앞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돈키호테 같은 사람으로 보겠지만, 그는 미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서 민중을 해방시키고 있는 위대한 혁명가이다’라고 썼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경쟁적으로 차베스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침을 튀겨가며 얘기했던 인사들은 지금 베네수엘라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누구도 “내가 잘못 판단했다”고 사과한 사람이 아직까지 없었다. 참으로 뻔뻔하다.
   
   ‘차베스 찬양’ 외에도 좌파 포퓰리즘이 사회혼란을 부추긴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봄의 이른바 ‘광우병 파동’이 대표적이다. MBC PD수첩은 미국산 쇠고기를 ‘광우병 쇠고기’로 왜곡·조작해 방송했다. 힘없이 픽픽 쓰러지는 미국 소를 시청한 주부들과 중고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TV와 인터넷은 이를 생중계하며 광화문 일대를 반미·반정부 해방구로 만들었다. 급기야 이런 분위기에 들뜬 여배우 김민선씨는 미니홈피에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넣겠다”는 ‘어록’을 남겼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 2기(期)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국가주의 포퓰리즘을 보면서 베네수엘라 국민이 떠올랐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윤영삼  ( 2017-09-04 )    수정   삭제 찬성 : 반대 :
필자가 직접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New York Times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Mob Justice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고 한다. 박 전대통령 탄핵과 같은 문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므로 본 글에서는 논하지 않으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Mob Justice에 대해 몇 자 적을까 한다. Mob는 폭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군중을 의미하며 별로 좋은 뉘앙스를 가진 단어는 아니다. Justice는 그냥 정의 또는 재판, 판결을 의미하므로 Mob Justice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군중 재판으로 번역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군중 재판이 최고의 법전으로 존재하는 듯 하다. 사법부에 종사하는 법률가들 마저 무죄 추정의 원칙이나 법정 증거주의를 따지기 보다는 군중이 어떻게 생각하고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듯하다. 지난 해 최순실이라는 인물이 국정농단을 하였다 하여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지만, 촛불의 의미와 가치는 불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민주 사회의 시민 의식에 있는 것이지, 민중이 요구하는 것은 무조건 옳고 모두 다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있는 지도력이란 민중이 요구하는 것이 옳지 않을 때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왜 안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말했듯이 민중은 당연히 개나 돼지가 아니지만 항상 옳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눈에 보이는 것을 모두 사달라고 하는 어린이에게 그 부모가 매번 그 요구를 들어 준다면 그 아이는 제대로 된 아이로 자라지 못한다. 아이는 우리 부모는 때를 쓰니까 다 들어주는구나 생각하고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고 말 것이다.
지금 우리가 딱 그 짝이다. 과거 통진당의 이석기씨나 민주노총의 한상균씨를 석방하라는 요구, 적법하게 선임된 방송사 사장을 물러나라고 외치는 요구, 귀족 노조들의 무리한 요구, 이러한 것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Mob Justice 의 심리, 즉 무엇이든 많은 이들이 우르르 몰려서 요구하면 관철된다는 왜곡된 집단 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부분은 이 정부가 어찌되었던 촛불 시위 위에서 탄생한 정권이므로 군중의 구미 맞추기에 급급해 하는 포퓰리즘 정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가 그래도 한가지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싶은 것은 책임이 주어지면 더 잘하는 스타일이 있다. 여러모로 위기에 처해있는 대한민국을 이끌 막중한 책임감을 지고 있는 이 정권 사람들은 지금 나라를 다스리는 높은 위치에 올라 있으므로 그들이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볼지도. 아니 그렇지 못하면 나라를 제대로 이끌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사회도 Mob Justice에 의지하거나 그것을 신봉해서는 안될 것이다.
맨위로

2475호

2475호 표지

지난호보기 정기구독
유료안내 잡지구매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찾기
호르반
미래에셋
CGV-시인의사랑
삼성전자 갤럭시 s8
조선토크 브로슈어 보기

주간조선 영상 more

이어령의 창조이력서 연재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