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자유세계와 공산세계 간의 가장 큰 이슈가 무엇인지 정말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모르는 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베를린에 한번 와보라고 합시다. 세상에는 공산주의가 미래의 흐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도 베를린에 와보라고 합시다. 유럽이나 다른 곳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손잡고 일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도 베를린으로 데려옵시다. 공산주의는 나쁜 제도지만 경제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라고 말하는 이들도 일부 있는 모양인데, 그들도 베를린에 한번 와보라고 합시다. 자유란 어려운 것이고 민주주의는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높은 담을 쌓아 사람들을 가두고, 그들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적은 없습니다.… 서베를린은 18년 동안이나 포위되어 있었으면서도 여전히 활력과 힘, 희망과 결의를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구상 어느 곳에도 이런 도시는 없습니다. 베를린장벽은 공산체제의 실패를 가장 생생하고 명백하게 세계 앞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것이, 누가 어디서 한 연설인지를. 1963년 6월 26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서(西)베를린 시청 발코니에서 한 연설이다. “Ich bin ein Berliner(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로 널리 알려진 베를린 연설! 지난 10월 독일 베를린을 여행하면서 일부러 이곳을 찾아갔다. 당시 서베를린 시청은 미국 지역인 쇠네베르크구에 있었다. 현재 이곳은 쇠네베르크 구청사 건물로 쓰인다. 20세기 역사는 케네디 대통령이 서베를린 시청 발코니에서 예언한 대로 전개되었다. 베를린 시당국은 이 역사적인 장소를 여러 형태로 기억하고 있었다. 먼저 구청사 앞 광장을 ‘존 F 케네디 광장’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발코니와 연결된 방을 ‘존 F 케네디 방’으로 이름지었다. 방안에는 6월 26일 그날을 상기시키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그날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의 반향(反響)이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왜 그런가. 연설이 명문(名文)이기 때문이다. 번역된 연설문을 읽어도 명문의 맛을 느낄 수 있지만 한영(韓英) 대역(對譯)으로 읽으면 명문의 묘미가 배가된다. 희뿌옇던 머릿속이 말갛게 개이는 듯한 느낌이랄까. 두통이 날 때마다 진림(陳琳)의 글을 읽으면 머리가 맑아졌다는 조조(曹操)가 된 기분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연설은 왜 명문인가. 엄정한 사실에 기반해 깊이 생각한 것을 알기 쉽게 썼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연설문은 어려운 단어가 거의 없다. 고등학교 2학년생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레토릭도 별로 없다. 그런데 힘이 느껴지고 울림이 있다. 왜 그런가. 연설문에 진실을 담았기 때문이다. 거짓이 아닌 진실을 평이한 언어로 간결하게 표현했기에 읽을수록 빨려든다.

트럼프의 연설문과 대비되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이다. 현충일 추념사, 광복절 경축사, 유엔 연설문 3개를 되새겨 보자. 현충일 추념사에서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은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 광복절 경축사는 또 어떤가. 세계가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성공사(史)는 무참히 편집됐다. 유엔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자신이 ‘피란민’임을 강조했지만 정작 무엇으로부터의 피란인지를 빼먹었다.

케네디의 베를린 연설이 지금 읽어도 가슴이 뛰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웅변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역사를 바꾼 명연설로 기록될 것이다. 진실을 외면한 연설문은 결코 감동을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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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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