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도 실제보다 더 실감 날 수는 없다. 거장이 만든 영화라 할지라도 픽션은 픽션이다. 설령 그 픽션이 실화를 바탕으로 극화(劇化)했다고 해도 말이다.

지난 11월 22일 유엔군 사령부가 공개한 JSA 귀순병사의 동영상이 그랬다. 폐쇄회로(CCTV)와 적외선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은 말 그대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러닝타임은 2분도 안 되지만. 거의 열 번도 더 돌려 봤을 것이다. 적외선카메라에 찍힌, 쓰러진 북한 군인 오청성 병사 모습에서는 어떤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오 병사의 복부에서 나온 회충 무더기가 오버랩되어 가슴이 미어졌다. 그런데 이 영상을 자꾸 돌려 보다 보니 어떤 게 보이기 시작했다.

핸들을 잡은 오 병사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 생각해 보라. 11월 13일의 결행(決行)이 그날 아침 눈을 뜨면서 즉흥적으로 이뤄졌을까. 그럴 리는 만무하다. 오 병사는 얼마나 많은 밤을 혼자서 끙끙댔을 것인가. 결심은 했지만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게 맞는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과연 공동경비구역(JSA)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 것인가. 만에 하나 실패한다면….

오 병사는 24년의 인생을 걸었다. 오 병사가 잡은 운전대에 힘이 들어갔다. 액셀을 밟고 있는 군홧발도 떨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운전대를 잡은 오 병사는 알 수가 없다. 자신이 긴장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차체는 운전자의 심리상태를 그대로 반영했다. 군용 지프는 불안하게 질주했다. 추격해오는 차량이 없었지만 마치 쫓기는 듯 초조했다. 미세하지만 흔들림이 감지되었다. 예컨대 제주도 해안도로를 똑같은 속도로 달리는 렌터카를 떠올려 보자. 드론을 띄워 그 자동차의 드라이브를 찍는다면 오 병사의 지프와는 느낌이 전혀 다를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이 동영상을 통해 군사분계선 북쪽에 ‘72시간 다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다리에 접근하면서 차량은 더 크게 흔들렸다. 중앙선도 몇 번씩 침범했다. ‘72시간 다리’ 직전 마지막 경비초소. 인공기 두 개가 펄럭거리는 경비초소에 들어서며 오 병사는 속도를 줄였다. 초소 건물에 당도하기 전까지 누구도 오 병사의 탈주 계획을 탐지하지 못했다. 그랬다면 오 병사는 경비초소를 통과할 수 없었다. 차량은 건물에 가려 잠깐 동안 시야에서 사라졌다.

2~3초 후 차량이 초소를 빠져나가 20~30m 지나고 있을 때 인민군 초병이 차도 한복판으로 허겁지겁 뛰쳐나왔다. 이제야 사태를 파악한 것이다. 엉거주춤한 자세가 초병의 당황을 보여준다. 초소로 들어가 공동경비구역의 경비병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때부터 군용 지프는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자유냐, 죽음이냐. 오 병사는 차선을 무시한 채 도로 한가운데로 가속기 페달을 밟았다. 목덜미에 달라붙은 죽음의 공포가 가속(加速)으로 나타났다. 거친 호흡이 느껴졌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공동경비구역에서 자동차 앞바퀴가 배수구에 빠지는 것도 몰랐을까. 뒤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죽음이냐, 자유냐.

‘빠삐용’ ‘대탈주’ ‘쇼생크탈출’. 오랫동안 즐겨 본 탈주영화 목록이다. 최근 여기에 하나가 추가되었다. 독일 영화 ‘터널(Der Tunnel)’이다. 베를린장벽이 세워진 1961년 베를린이 배경이다. 영화는 장벽 밑으로 터널을 뚫어 동베를린의 가족을 서베를린으로 탈출시킨 실화를 다뤘다. 158분짜리 영화를 한 번도 졸지 않고 봤다.

그런데 JSA 귀순병사 영상이 ‘터널’보다 몇 배 더 가슴을 졸였다. 자유를 향한 필사(必死)의 탈출이, 자유에 안기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눈물겨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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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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