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태준(1904~?)이 ‘소련기행’을 발표한 게 1947년이다. 이태준은 1946년 북조선작가동맹의 일원으로 소련 전역을 70여일간 여행하고 돌아왔다. 그가 황해도 은율의 휘문고보 친구집 사랑방에서 수개월간 기식하며 써낸 책이 ‘소련기행’이다. 조선의 문장가 이태준이 그려낸 ‘사회주의 전범(典範) 국가’ 소련은 눈부신 낙원이었다. 소련은 당시 사회주의에 환상을 갖고 있던 피압박민족 지식인의 눈에 그렇게 비쳤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김일성에 의해 숙청되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20세기를 산 세계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말할 것도 없이 1·2 차 세계대전이다. 1·2차 세계대전 다음으로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다. 1929년 뉴욕 증권가 월스트리트에서 촉발된 대공황으로 하루아침에 거리는 실업자들로 넘쳐났다. 대공황의 해일(海溢)은 대서양 건너 유럽에까지 밀어닥쳤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대공황의 추이를 지켜봤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주의 몰락의 전조가 아닐까. 동시에 이들이 경이롭게 바라보기 시작한 나라가 소련이었다. 실업자가 없는 완전고용을 이루고 있다는 사회주의 낙원 소련을 향한 연모가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자생적 공산주의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특히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전해지는 소련의 이야기는 천상의 복음(福音)처럼 들렸다. 1930년대 일본으로 유학간 한국 청년의 일부가 좌익운동에 빠졌다.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작은 할아버지가 집안에서 가장 머리가 좋아 일본으로 유학을 보냈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글쎄 빨갱이가 되어서….” 이태준 같은 피압박민족 지식인이 소련에 환상을 가진 것은, 어찌 보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한 개인의 세계관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지리적 환경과 가정적 환경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대영제국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처칠은 처음부터 공산주의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러나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사르트르는 부성 결핍의 열등감을 기성을 거부하는 것으로 풀었고, 그 이념으로 공산주의를 선택했다.

20세기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환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기여한 두 사람이 작가 조지 오웰과 소련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다. 1956년 2월 흐루시초프는 연설을 통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스탈린의 대학살을 고발한다. 자유진영의 좌파 지식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조지 오웰이 옳았구나! 1990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세계의 좌익들은 비로소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났다. 1980년대 대학가에 김일성 주체사상이라는 괴질 바이러스를 퍼트렸던 김영환도 이때 미망(迷妄)에서 깨어났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혁명을 이끈 바츨라프 하벨이 갈파했다. “공산체제는 폭력과 거짓으로 유지된다.” 북한은 지구상에 전례가 없는 가장 괴기한 체제다. 말로는 사회주의 운운하지만 실상은 사회주의 근처에도 못 가는 괴물 같은 체제가 북한이다. 북한은 폭력과 거짓말의 일상화로 설명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형을 독살하고 고모부를 처형한 사람이 누구인가.

한국인은 지난 60년간 신물 나도록 ‘민족끼리’를 내세운 김씨 왕조의 거짓말에 속아왔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에게 충성맹세를 했던 주사파들 역시 거짓말에 능수능란하다. 천안함을 침몰시켜 장병 46명을 수장(水葬)시킨 자들의 입에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이 나온다. 한민족의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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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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