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일치였을까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가 작성한 ‘개헌 보고서’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반영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것도 ‘사형제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간접 고용 금지’ 등 민감한 사안들이었습니다. 463쪽에 달하는 ‘개헌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행 헌법을 무시하는 듯한 내용은 물론이고, ‘시장질서’보다 ‘정부개입’을 강조하는 내용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자유민주 삭제한 개헌 특위 자문위원들은 누구?’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모여 ‘개헌 보고서’를 작성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총 6개 분과별로 나눠진 개헌 특위 자문위원들은 49명이었습니다. 그 명단에는 눈에 띄는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특히 기본권 및 총강분과에는 10명 중 시민단체 출신이 무려 4명에 달했습니다. 경제 재정 분과에는 참여연대 위원도 있더군요. 그러다 보니 ‘개헌 보고서’의 내용을 둘러싼 논란은 지금까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특히 헌법 전문에 나온 ‘자유민주’라는 표현을 ‘평등한 민주사회’로 바꾼 대목을 두고 전문가들은 갑론을박을 벌였습니다.

겨우 ‘자유’란 단어 한 개만 삭제한 건데, 왜 그렇게 논란이냐고 묻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북한의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과거 동독의 국호도 ‘독일민주주의공화국’이었습니다. 두 국가 모두 국호에 민주주의는 들어가 있습니다. 다만 ‘자유’라는 표현은 없죠. 또 다른 예로 단어 하나 차이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엄연히 다릅니다. 사회민주주의는 복지국가를 표방하고 무상의료와 사회정의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고실업과 빈곤해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 경제는 무려 10년에 가까운 침체기 뒤에 최근에야 성장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높은 실업률로 얼마 전까지도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프랑스도 위기 탈출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물론 ‘개헌보고서’는 어디까지나 보고서일 뿐, 실제 개헌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헌법은 국가의 정체성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개헌은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개헌을 두고 목소리를 높인 한 교수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국가 정체성 변경은 무능력, 부패와 같은 정부 실패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꾸려는 시도가 헌법 개정이라는 명목으로 부상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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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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