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경남 거제시는 고용노동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에 “최저임금을 업종별·단계별로 차등적용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거제는 세계 조선사 ‘빅3’ 중 2곳이 소재한 조선업 메카입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을 필두로 1·2·3차 중소협력업체가 수많은 내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극심한 조선업 불황에 고용을 유지하기 어려우니 최저임금을 사정에 맞게 차등화해 달라는 건의였습니다. 거제시가 이런 입장을 내놓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당장 발끈해 규탄성명을 내놓았습니다.

거제도와 진해만(灣)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는 STX조선해양이 있습니다. 한때 조선업 ‘빅4’로 불리던 STX 근로자들은 2016년 법정관리를 전후로 거리에 내몰렸습니다. 같은 해 부산과 진해에 걸쳐 있는 부산신항을 모항으로 하는 한진해운마저 파산신청하자 하역근로자들까지 거리에 나앉았습니다. 조선과 해운업 악화의 동시타격을 받은 곳은 진해가 유일합니다. 최저임금과 같은 경직적인 임금체계가 계속되면 거제가 진해처럼 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비난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16.4%로 17년 만에 최대 인상폭입니다. 장·차관, 청와대 실장·수석까지 총출동됐지만 좀처럼 비난 여론이 가라앉질 않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기자에게도 여파가 미치고 있습니다. 자동차 기름을 채우던 집 근처 주유소도 지난해 말 폐업했습니다. 저렴한 기름값에 노인 주유원이 직접 기름을 채워주던 곳입니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노인 주유원들이 어디로 갔을지 궁금합니다.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의 사례는 편의점, 치킨집, 주유소에 맞춰지고 있지만 심각한 것은 경직된 최저임금 체제 아래서 산업경쟁력 유지입니다. 중국과 같은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그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입니다. 일본 역시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철저히 차등적용하고 있습니다. 지역별 차등적용은 지방으로서는 일자리를 지키고 기업을 유치해 올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지금은 서울과 지방의 최저임금이 동일하니 굳이 지방에 공장을 세울 필요를 못 느낍니다.

대신 국내 대기업의 중국행(行)은 줄줄이 이어집니다. 삼성전자가 시안, 현대차가 충칭, SK하이닉스가 우시, LG디스플레이가 광저우에 생산라인을 세웠거나 확장을 준비 중입니다. 이들 지역은 최저임금이 제각각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초이스’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런 공장이 구미·울산·창원·여수·군산에 들어섰다면 엄청난 양질의 일자리가 생겼을 것입니다.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붙여놓는다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최저임금을 올려주겠다는 대통령의 선의(善意)가 지옥의 문을 열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키워드

#취재 뒷담화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