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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호] 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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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드]시진핑의 황제行과 후춘화의 부활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ㆍ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ㆍ홍콩 특파원 

▲ 지난해 3월 18일 제19차 공산당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 참석한 후춘화 중국 광둥성 서기. 이번 전인대에서 부총리로 임명됐다. photo 뉴시스
후춘화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주석을 지내 이른바 후진타오를 리더로 하는 ‘투안파이(團派)’의 대표자였다. 후춘화가 이번에 부총리로 발탁된 것은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55세라는 젊은 나이를 감안하면 2022년의 제20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수장인 당 총서기로 선출될 가능성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시진핑은 과연 황제의 권좌에 앉은 것일까. 제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를 통해 장기집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일까. 이번 전인대에서 이뤄진 여러 가지 결정들의 배경을 짚어 보면 적지 않은 의문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폐막 이틀 전인 3월 19일에 발표된 4명의 부총리 인선 결과가 주목된다. 이를 보면 시진핑이 편안하게 황제의 권좌에 앉은 게 과연 맞느냐는 의문을 던져준다. 이날 발표된 4명의 부총리는 발표 순서대로 한정(韓正·64), 쑨춘란(孫春蘭·68), 후춘화(胡春華·55), 류허(劉鶴·66)였다. 이 가운데 한정은 이미 지난해 10월의 제19차 당대회에서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 1명으로 발표된 상하이(上海) 세력의 대변자다. 쑨춘란은 지난 19차 당대회에서 정치국원으로 발탁해두었던 여성세력의 대표자이고, 류허 역시 지난 당대회에서 정치국원으로 발탁해두었다가 이번에 부총리로 임명함으로써 총리 리커창(李克强)의 경제 지휘권을 무력화시킬 히든카드로 평가된 인물이다. 앞으로 류허는 당의 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을 맡아 경제 전반에 대해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인물이다.
   
   문제는 전임 광둥(廣東)성 당위원회 서기에서 부총리로 임명된 후춘화다. 그는 지난해 당대회에서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의 한 명으로 발표되어 5년 뒤 2022년 가을의 제20차 당대회에서 당총서기로 선출될 것으로 점쳐지던 인물이다. 2012년 제18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胡錦濤·76) 당총서기가 시진핑에게 당정군의 지휘권을 넘겨주면서 ‘당신의 후계자는 후춘화’라고 귀띔을 해두었다던 인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후진타오가 격대지정(隔代指定)을 해두었던 미래의 황태자라 할 수 있다.
   
   후춘화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주석을 지내 이른바 후진타오를 리더로 하는 ‘투안파이(團派)’의 대표자였다. 시진핑은 지난해 가을 당대회에서 격대지정의 대상이었던 후춘화를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에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써 중국 안팎을 놀라게 했다. 시진핑 스스로 장쩌민(江澤民·92)이 후진타오에게 격대지정을 귀띔함으로써 당정군의 최고지휘권을 물려받은 처지이면서도 후진타오와 맺은 격대지정의 정치적 약속은 지키지 않은 셈이다. 그런 후춘화가 이번에 부총리로 발탁된 것은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55세라는 젊은 나이를 감안하면 2022년의 제20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수장인 당 총서기로 선출될 가능성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당대회를 앞두고 충칭(重慶)시 당서기 자리를 박탈당하고 반(反)부패 드라이브의 희생자가 된 쑨정차이(孫政才·55)의 자리에는 제일 가난한 성(省)으로 평가되는 구이저우(貴州)성 당 서기로 있던 천민얼(陳敏尒·58)이 들어앉았다. 천민얼은 저장(浙江)성 당 기관지 절강일보 사장 출신으로, 시진핑이 저장성 당 서기 경력을 쌓고 있을 때 시진핑의 연설문을 담당하던 인물이다. 천민얼은 당대회 직전까지도 ‘시진핑의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중앙위원에서 두 단계를 뛰어올라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후춘화가 이번에 부총리로 임명됨으로써 시진핑이 미래의 황태자로 점찍어 두었던 것으로 관측되던 천민얼은 당 총서기 경쟁에서 후춘화에게 밀린 것으로 평가된다.
   
   후춘화는 지난해 당대회 이후 시진핑의 해외방문을 수행해왔다. 그래서 5년후의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할지 모른다고 평가된 딩쉐샹(丁薛祥·56) 정치국원 겸 당 서기처 서기, 중앙판공청 주임과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선점한 것으로 판단된다. 후춘화·천민얼·딩쉐샹 세 인물은 연령으로 따져 2022년의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된 뒤 2027년의 21차 당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선출될 나이대에 속한다. 세 명 모두 잠재적 당권자로 간주될 수 있다.
   
   세 명 중 후춘화가 가장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는 관측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다. 후춘화가 지방 성들 가운데 경제력이 가장 막강한 광둥성 당 서기 자리를 내놓고, 이른바 부빈(扶貧·빈민문제 해결) 담당 부총리에 임명된 것이 과연 천민얼과 딩쉐샹을 제치고 당 총서기 후계자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시진핑이 후춘화를 다음 당 총서기 경쟁 후보군에서 빼내지 않은 것이 혹시 장쩌민·후진타오를 위시한 전임자 그룹의 압력 때문은 아닌가 하는 추측도 많다.
   
   국가 부주석으로 임명된 왕치산(王岐山·69) 문제도 간단치 않다. 왕치산은 지난해 가을 당 총서기로 재선출된 뒤 이번 전인대에서 국가주석으로 재선임된 시진핑과 함께 국가 부주석으로 선임됐다. 그는 현재 당직이 없기는 하지만 지난 3월 11일 통과된 개헌안에 따라 시진핑 국가주석과 함께 3연임도 가능한 법적 조건을 획득했다. 이로써 중국 안팎의 관찰자들은 그를 사실상 8번째(실제 정치국 상무위원은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시진핑 다음의 두 번째 실권자 지위를 확보한 것으로 진단했다. 그러나 많은 차이나워처들의 그런 진단에는 논리적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 국무원의 역대 국가 부주석은 리셴녠(李先念) 국가주석(1983~1988) 당시의 소수민족 출신 우란푸(烏蘭夫) 이후 양상쿤(楊尙昆) 주석(1988~1993) 당시의 왕전(王震), 장쩌민(江澤民) 주석(1993~1998) 당시의 룽이런(榮毅仁), 후진타오 주석(2003~2008) 당시의 쩡칭훙(曾慶紅) 등으로 이어져왔다. 이들 국가부주석들은 각각 실권이 없는 국가주석 아래서 소수민족 안정, 군부 안정, 해외투자 지휘, 주석 감시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설립자인 마오쩌둥(毛澤東) 역시 1954년에서 1959년까지 주더(朱德), 류사오치(劉少奇) 등의 부주석들과 함께 국가주석직을 수행했으나 “다른 바쁜 일이 많다”면서 국가주석직을 내려놓는 바람에 부주석들도 이렇다 할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왕치산을 정치 전면에 부각시켜 미국과의 외교를 총지휘하게 하고, 경제 전반을 감독하게 하기 위해 부주석으로 선출했다는 논리에는 결함이 많아 보인다. 차라리 시진핑이 함께 반부패 운동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공을 인정해서 그를 버리지 않았다는 해석이 현실적으로 보인다.
   
   시진핑은 왕치산을 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남겨 두기를 바랐지만 이는 당의 연경화(年輕化)를 촉구한 덩샤오핑의 ‘칠상팔하(七上八下)’ 원칙에 막혀 실패로 귀결됐다. 이후에도 왕치산은 중국공산당 내에 이렇다 할 지위가 없다는 점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때문에 앞으로 대미(對美)외교와 경제를 부드럽게 장악할 수 있는지 잘 지켜봐야 할 것이다.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3연임 초과 금지 조항 삭제와 함께 신설된 국가감찰위원회 주임으로 임명된 양샤오두(楊曉渡·65)에게도 문제가 있다. 당원과 정부 조직원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반부패 운동을 주관할 핵심 기구의 책임자는 적어도 왕치산급의 거물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비교적 연로한 나이의 정치국원으로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부서기를 맡고 있던 양샤오두를 감찰위원회의 주임으로 임명함으로써 중국 안팎의 관찰자들에게 많은 화제를 뿌렸다. 시진핑의 고민은 분명해 보인다. 양샤오두를 자신의 재임 이후에도 반부패 운동을 강화하는 데 더없는 적임자라고 생각했으나 만약 당 밖의 국가감찰위원회가 강력한 반부패운동을 지휘할 경우 정치국원이자 당내의 기율검사위원회 주임인 자오러지(趙樂濟)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우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고민 끝에 당의 부서기급을 국가감찰위원회 주임 자리에 앉혀 당의 행정부에 대한 지휘감독 체제를 보다 분명하게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이번 인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시진핑의 당초 구상과는 달라진 것이다. 국가감찰위원회의 힘과 당 기율검사위원회의 힘이 충돌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조정이 불가피해지자 국가감찰위원회 서기에 당 기율검사위원회 부주임을 앉히는 다소 본말이 전도된 인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시진핑으로서는 이번 전인대 기간 ‘시진핑 신시기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그리고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지도노선 뒤쪽에 자신의 이름과 함께 명기하는 커다란 소득을 거두었다. 그러나 국가주석 3연임 금지 조항이 개헌을 통해 삭제된 것이 과연 시진핑에게 장기집권의 길을 열어줬는지는 의문이다. 국가주석이 별다른 실권이 없는 의전적인 지위라는 점에서 황제 등극은 논리상 허점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해두지 않을 수 없다. 시진핑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 장기집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려면 무엇보다도 당규약 38조의 당직 종신임기 금지 조항을 삭제하거나 개정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이는 중국공산당의 역사를 보더라도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왕치산을 국가부주석에 앉혔다고는 하나 그것이 칠상팔하 원칙을 무너뜨렸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지난 당대회에서 후춘화를 정치국원에 주저앉힘으로써 격대지정의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해석이 나왔지만 이번에 후춘화를 부총리에 선임한 것을 보면 격대지정의 원칙 파괴에 장쩌민, 후진타오 등 원로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2차대전 당시 히틀러의 독일이 군사력을 키워가는 과정을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한 영국의 책임 때문에 전쟁이 빚어졌다고 지적한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Mearsheimer) 교수는 지난 3월 20일 한국고등교육재단 강연에서 시진핑의 장기집권 기도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건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으로, 앞으로 미국의 중국에 대한 억제(contain)가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그렇게 될 경우 중국은 많은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했다. 시진핑과 푸틴이 장기집권이라는 형태로 미국적 가치인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할 경우 미국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시진핑이 황제의 권좌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도 평탄하지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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