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8일 북·중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은 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주석. ⓒphoto 뉴시스
지난 3월 28일 북·중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은 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주석. ⓒphoto 뉴시스

지난 4월 1일 연길(延吉)공항에 내린 한국인들은 요란한 중국 공군 전투기와 전폭기 훈련 굉음에 놀라야 했다. 2~4대로 편대를 이룬 중국 공군 최신예기들은 해가 질 무렵까지 훈련을 계속했다. 훈련에는 삼각날개와 이중 삼각날개를 장착한 4~5종의 전투기와 전폭기들이 참가한 것으로 목격됐다. 말로만 듣던 ‘젠(殲)-10’과 ‘젠-20’ 계열의 최신예기들 같았다. 전투기와 전폭기들은 연길공항 공군용 활주로에서 이륙해 여러 가지로 고도를 바꿔가며 편대비행을 하는 모습을 과시했는데 전투기들은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로운 굉음을, 전폭기들은 낮으면서도 묵직한 굉음을 냈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 북동쪽 끝에 위치한 연길공항에서 중국 공군 최신예기들이 해가 질 무렵까지 많은 수의 소티(sorty·출격 횟수를 세는 단위)를 소화해가며 작전훈련을 하는 모습이 목격됐다는 기록은 이전에는 없었다. 이날은 때마침 한반도 남쪽 상공 일원에서 한국군과 미군의 합동 야외 기동 군사훈련인 독수리훈련(Foal Eagle)이 시작된 날이었다. 올해의 독수리훈련에는 E3 조기경보통제기와 B100 지휘통제기, 특수부대 수송용 MC130J 등 미 공군의 특수전기들이 대거 참여했다. 오는 4월 27일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말~6월 초로 예정된 트럼프·김정은 회담을 앞두고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특수전기가 대거 날아왔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한반도 제공권 맞대응 의지

이날 연길공항에서 이뤄진 중국 공군 최신예기들의 작전훈련은 지난 3월 25~28일 김정은의 베이징 방문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북·중 정상회담 직후에 목격된 광경이어서 서울~연길 직항 여객기를 타고 공항에 내린 한국인들의 가슴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6·25전쟁에 참전한 원인을 놓고 “미 공군기들이 압록강을 넘어 중국 영토에 폭탄을 투하하는 등 전쟁의 불길이 중국 영토로 넘어와…”라는 구실을 대던 중국군이 미 공군력에 제압당해 쩔쩔매던 1950년대의 모습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것으로 보였다.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돕는다”는 뜻을 가진 ‘항미원조(抗美援朝)’ 구호를 외치며 1950년 10월 25일 압록강 하류 단둥(丹東) 일원에서 얼어붙은 강을 줄지어 건너던 중국군의 모습은 지나간 낡은 것이 될 것이며, 일단 유사시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연길공항을 비롯한 북·중 접경지대에 전진 배치된 중국 공군 최신예기들이 한반도 상공 제공권을 놓고 맞대응 작전을 펼칠 것이라고 과시하는 듯했다.

지난 3월 28일 이루어진 북·중 정상회담은 2월 9일부터 2주간 개최된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남북한과 미국 3자가 펼치던 비핵화 회담 드라이브에 중국이 끼어든 ‘한 수’로 평가된다. 중국은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3자 구도를 남북한과 미·중 간의 4자 구도로 만들어놓았다. 지난 6년간의 소원했던 흐름을 깨고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불러 ‘트럼프급’의 대접을 한 시진핑의 계산은 무엇이었을까. 한반도 비핵화 문제 해결에 중국이 소외되는 이른바 ‘차이나 패싱’이 현실화될까봐 전전긍긍하던 차에 “베이징을 방문하겠다”는 김정은의 연락을 구조의 신호로 받아들였을까.

북한 측이 공개한 김정은 중국 방문 동영상을 보면 시진핑은 이번 김정은 방문 기간 동안 과거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보여줬던 ‘칙사 대접’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과 북한의 접경도시 단둥역 일대를 차단막으로 가리고, 김정은 특별열차가 달리는 단둥~베이징 구간에 거의 전봇대 2개마다 한 명씩 인민해방군 병사를 배치한 특별경호를 제공했다. 회담 직후에는 김정은보다 키가 더 큰 도자기병을 비롯한 선물을 한 방 가득 준비해서 선사했다.

3월 28일의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은 김정은의 이번 방문이 “특수한 시기”에 이뤄졌다고 말했고, 김정은은 “조선반도의 급속한 정세 변화를 중국 측에 통보해주는 것이 ‘정의상으로나 도의상’ 마땅하다”고 표현했다. 회담 말미에 시진핑은 “앞으로의 북·중 관계가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요약했다. 첫째는 중·조 우호협력 관계의 회복이었고, 둘째는 두 나라 간 전략적 소통을 하는 것이 ‘법보(法寶)’이므로 중대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의견교환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셋째로 양국 협력의 방향은 평화발전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서로 “친척처럼 왕래하자”고도 했다.

지난해 11월 중국 북부전구 78집단군이 북·중 접경지역에서 훈련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11월 중국 북부전구 78집단군이 북·중 접경지역에서 훈련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평양의 중국군 무덤 68년 만에 수리

김정은·시진핑 회담 열흘 뒤인 지난 4월 6일 평양 주재 중국대사 리진쥔(李進軍)은 평양 근교에 있는 이른바 ‘인민지원군 열사 능원’에 나와 68년 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수리공사’를 시작하는 의식을 가졌다. 북한 측에서는 정무원 도시경영 담당 부상(副相) 최성철과 인민무력성, 외무성, 국가설계지도국, 평양시 인민위원회 간부들이 나왔다. 이 공동묘지에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중국군 1300여명이 묻혀 있다. 리진쥔 중국대사는 “중국과 조선 양국 최고 영도인들이 최근 중요한 합의를 이루고 지시를 내려 두 나라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나가기 위한 실제행동을 하라고 했다”며 “이 인민지원군 열사 능원을 수리하는 공사는 중국과 조선 간의 전통적인 우의를 새롭게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북한 측 최성철 부상은 “조선 인민들은 중국 인민지원군 전사들이 조선 인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고, 자신의 가슴을 열어 적의 총탄을 받아내며, 함께 손을 잡고 적의 탱크에 수류탄을 던져 조선의 대지에 승리의 함성을 외칠 수 있게 해준 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연설했다. 그러면서 “이번 수리공사로 중국 인민지원군 병사들은 ‘신가(新家·새집)에서 잠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또 쑹타오(宋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이끄는 예술단을 4월 11일 평양으로 보내 김정은·시진핑 회담 이후 개선된 북한과의 관계에 새로 칠을 하는 행동에 나섰다. 쑹타오 부장은 불과 5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시진핑 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지만 김정은은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하지만 쑹타오는 지난 3월 김정은의 베이징 방문 때 중·북 접경도시 단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김정은의 열차에 올라타 인사를 하고 베이징까지 모셔오는 칙사 역할을 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4월 11일 쑹타오가 인솔하는 중국 예술단이 평양을 방문해서 제31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한다고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의 역사적인 첫 중국 방문 시 조·중(북·중) 두 당, 두 나라 최고 영도자들께서 문화교류를 강화해나갈 데 대하여 합의한 이후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중국의 관록 있는 큰 규모의 예술단”이라고 표현했다.

이제 북한과 중국은 김정은의 베이징 방문으로 6년 만에 개선된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해 시진핑의 평양 방문이라는 문제만 남겨놓은 양상이다. 시진핑은 10년 전인 2008년 6월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국가부주석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서 김정일을 만난 일이 있다. 당시 시진핑의 평양 방문은 북한 정부 수립 60주년을 축하하는 의미와 함께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이 6자회담에 적극 참여하도록 권유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당시 김정일은 백화원 초대소에서 시진핑과 만나 양국 간의 전통적인 우의를 강조하는 말들을 했다.

시진핑은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국가부주석의 타이틀로 2009년 12월에는 서울을 방문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놀랍게도 시진핑 부주석을 만나주지 않아 많은 뒷말을 남겼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시 시진핑 부주석을 만나주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우리 외교부의 설명은 “청와대에 시진핑 부주석을 만나줄 것을 권했으나, 대통령으로부터 ‘특정국가 부주석까지 만나줄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거절의 의사가 되돌아왔다”는 것이었다.

한·중 관계는 1992년 수교 이후 2015년 중국 측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까지 23년간은 말 그대로 “더 좋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2015년 이후 최근까지는 한·중 관계가 낮은 그래프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반면 중국과 북한 관계는 1992년 한·중수교 이후 2010년까지 8년간은 어떤 유형의 고위급 교류도 이루어지지 않는 썰렁한 관계를 유지해오다 2010년 5월 3일 김정일이 베이징을 전격 방문함으로써 관계 회복이 잠시 이루어졌다가 2012년 김정은의 핵실험으로 다시 악화됐다. 이번 김정은의 베이징 방문은 이후 6년간의 북·중 냉기류를 다시 온난기류로 바꾸어놓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와 우리 외교당국은 남북한과 중국 관계를 단기적인 안목으로 대처하지 말고 보다 장기적이고 넓은 안목으로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고 준비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ㆍ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ㆍ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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