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대학 시절 탐독한 책입니다.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썼지요. 제목만 봐도 아직 가슴 한편이 아립니다. 신자유주의 논쟁, 한·일월드컵, 연평해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2000년대에 옹이처럼 박혀 있는 사건과 추억이 떠올라서일지 모릅니다. 가만히 살아가고 있기에 죄를 짓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시절 느낀 부담스러운 무력감이 생각나서일 수도 있습니다.

‘팟캐스트 내전’을 취재하며 문득 대학 시절이 떠오른 건, 몇몇 진행자들의 안타까운 현실 인식관 때문입니다. ‘사방에 적이다. 우리의 문 대통령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식으로 위기 경보를 상시적으로 울려대더군요. ‘기계적 중립도 유죄’라는 식의, 아마 전쟁 시에나 유효한 사고를 10·20대 청년들에게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별 많은 경험을 해본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기자의 자리에서 지켜본 세상살이는 달리는 기차가 아니었습니다. 정해진 레일 따윈 못 본 듯합니다. 불친절한 지도의 희미한 등고선을 짚어가며 때론 왼쪽으로, 가끔은 오른쪽으로, 장애물을 만나면 뒤로 돌아가기도 해야 하는 지리한 마라톤과 같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살한 대통령과, 두 명의 구속된 대통령의 뒤를 이어 집권했습니다. 대통령을 진정 생각한다면 ‘진문’이니 ‘극문’을 넘어 ‘러닝메이트’가 되어줘야 하는 건 아닐까요. 바람의 방향도 알려주고, 바로 옆 장애물을 경고해주며, 흐트러진 자세도 지적해주는 그런 동료 말입니다. 한 정권이라도 성공적으로 완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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