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조셉 윤 당시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 대표가 워싱턴에서 열린 한국 관련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면서 자신이 “북한으로 먹고산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여러분도 다 마찬가지 아니냐”고 해서 청중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 자리에 있던 한국 전문가, 외교관, 특파원, 학자, 인권운동가 등이 하는 업무 중 주요 부분이 북한과 관련돼 있으니 과장이 아니었다.

워싱턴에서 ‘북한’은 하나의 산업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이 지구상에서 가장 먹고살기 힘든 나라 중 하나인 북한이 워싱턴에서 수많은 사람을 먹여살리고 있는 셈이다. 워싱턴 싱크탱크엔 한국 전문가가 수십 명 있는데, 이들은 한반도에서 나오는 뉴스에 기자보다 더 민감하고 민첩하다.

‘한국 전문가’ 간판을 건 전문가들의 배경은 다양하다. 먼저 학자들을 보면 처음부터 한국 연구로 출발한 사람들도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 연구자들이 ‘북한’ 간판을 추가로 걸고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북한을 이해하려면 군사 전문가도 필요하고, 핵 전문가도 필요하다. 경제학자도 당연히 중요하고 인권운동가의 시각도 북한 정권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자료와 관점을 제공한다.

미 행정부에서 일하며 북한과 협상을 해봤거나 북한 관련 정책을 만들었던 전직 관리들도 중요한 한반도 전문가 그룹의 일원이다. 여기에 위성자료를 활용해 북한의 핵개발 동향을 추적하는 기관도 있고, 빅데이터를 이용해 북한 선박의 불법거래 등을 찾아내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결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한 후 워싱턴에서 북한 관련 회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전문가들이 모여 일주일에 몇 번씩 비슷한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 회의를 다녀봐야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확인할 뿐인데도 이런 집단적 사고를 통해 어떤 사안을 다양한 시각으로 검토해보는 건 중요하다. 정책결정자나 언론인들에겐 광범위한 시각을 흡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나 역시 워싱턴에서 ‘북한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북한과 관련돼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생각, 북한에 대한 정책의 변화를 추적하는 일이다.

워싱턴의 북한 산업은 불확실성이 클 때 역설적으로 번창한다.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군사옵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전쟁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치솟았을 때 워싱턴 북한 산업계도 급박하게 돌아갔다.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이 밥도 못 먹고 인터뷰에 응해야 했을 정도로 북한 분석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지난 1월 북한이 유화적 태도로 돌아선 이후엔 이 급작스러운 변화를 해석하느라 또 엄청난 토론이 벌어졌다. 하지만 미·북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돼 북핵위기가 진정한 해결국면에 들어선다면 워싱턴 북한 산업의 호황도 언젠가는 막을 내릴 것이다. 한국도 태국이나 네덜란드처럼 워싱턴에서 수시로 회의를 하면서 들여다보아야 할 국제정치적 이슈가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런데 지난 5월 16일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기 연기하며 미·북 정상회담도 재고하겠다는 식으로 나왔다. “그래, 이게 북한이지” 싶어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워싱턴에서 북한 산업이 더 이상 필요 없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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