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7월 1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은 2016년 대선 때부터 지금까지 워싱턴 정가를 시끄럽게 만드는 주제인데 아직 시원하게 밝혀진 건 없다. 그런 이유로 워싱턴에서 러시아를 바라보는 시선은 편치 않다. 예외가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다. 카리스마 강한 독재자 타입을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나 푸틴에 대해 호의적으로 얘기한다.

최근 러시아 정치인들을 만나고 온 미국 의원들은 분위기가 결코 미국에 호의적이지 않다며 트럼프에게 푸틴과의 만남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내가 하면 다르다’는 생각으로 무장한 트럼프는 늘 밝은 쪽만 본다. 만나서 좋은 관계를 맺으면 미·러도 좋고, 국제사회도 좋고, 다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이다.

트럼프가 김정은에 이어 푸틴까지도 배석자 없이 독대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하자 정치인과 전문가들의 걱정과 한숨으로 땅이 꺼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독재자 또는 권위주의적 지도자들과 정상회담을 계획할 때마다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트럼프가 미국으로선 용납하기 어려운 뭔가를 덜컥 내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칭찬에 약하다. 일본의 아베 총리를 필두로 전 세계 지도자들은 어떻게 해야 트럼프의 마음을 살 수 있는지 다 알고 있다. 북한 김정은까지도 트럼프가 역대 대통령과는 달리 통이 커서 큰일을 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답하듯 트럼프 역시 온갖 칭찬으로 김정은을 띄워줬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한다고 하면 전문가들은 물가에 아이 내놓은 것처럼 불안해 한다. 참모들이 몇 달에 걸쳐 코피 흘리며 다 준비한 후, 정상들은 만나서 최종 합의만 하던 전통적인 정상회담과는 다른 예측 불허의 트럼프식 회담이기 때문이다.

한때 미국에서 ‘8분, 초스피드 데이트’가 유행이었다. 사람들이 처음 만나 상대를 파악하는 데는 8분이면 족하다는 심리학 연구를 바탕으로 만든 단체 미팅이다. 수십 명이 모여서 ‘8분 만남’을 여러 번 시도하는 쪽이 한 사람을 두세 시간 만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단 한 번 짧은 시간 만남으로 사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첫 만남이 주는 정보는 의외로 풍부하다. 그래서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빨리 결론을 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독 자신의 ‘감’을 믿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인간관계의 ‘케미스트리’라고 본다. 첫 만남에서 상대와 맞는지를 아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휘어잡아 원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까지 생각하는 것 같다.

영국의 한 학자는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타입의 사람들이 정상회담에 특히 매료된다”고 했다. 트럼프는 지난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만남’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뒀다. 만나기만 하면 돌파구를 열 수 있을 것 같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가 뭔가 극적인 변화를 끌어낼 것 같다고 기대하기 시작했다.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온갖 회의론이 난무하는 요즘도 트럼프는 여전히 자신의 ‘감’과 그때의 ‘악수’를 믿고 있다. 트럼프식 케미스트리 외교가 정말 통할까. 이번엔 푸틴이 답을 해줄 것이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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