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은 독립일이 아니라 광복절이다. 이렇게 된 것은 온전히 우리 힘으로 극일(克日)을 하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은 지금도 여전히 오만방자하다. 특히 위안부, 독도 등을 둘러싸고 얼토당토않은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일제히 그들의 ‘망언(妄言)’을 규탄하며 분통을 터뜨린다.

하지만 그들은 태연자약하게 다반사로 ‘망언’을 되풀이한다. 우리에게는 ‘망령된 말’이 그들에게는 ‘할 만한 말’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러니까 나쁜 놈들이지.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도 모르는 금수(禽獸)들. 독일을 보라고.” 우리는 매번 이렇게 ‘의연하게’ 마음을 가다듬곤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분노·훈계·체념이 우리의 독특한 대응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잘못된 상대가 도무지 변하지 않는 것은 골치 아픈 문제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어느덧 우리 자신도 전혀 변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적어도 망언을 둘러싸고 우리는 그런 타성적 양식에 사뭇 익숙해졌다. 어느덧 그것이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정신적 바탕이 되고 있다. 나아가 역사적 실체로 점점 굳어져 가고 있다.

이런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 문득 눈길이 가는 것이 바로 루쉰(魯迅·1881~1936)의 ‘아Q정전(阿Q正傳)’이다. 이 소설은 1921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주간 또는 격주간으로 신문에 연재되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논쟁은 주로 아Q의 인물적 성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더구나 이 소설의 탁월한 심리 묘사는 그런 논쟁을 더욱 가열시켰다.

루쉰은 20대 초에 일본으로 건너가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어느 날 환등기(幻燈機)를 통해 동족들이 무력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군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는 중국인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환등기 사건’을 계기로 의학을 포기하고 문학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는 청진기 대신에 펜을 들고 민중을 일깨우겠다고 결심했다. 그 대표적인 결실이 ‘아Q정전’이다.

주인공 아Q는 어느 궁벽진 시골마을에 흘러들어와 홀로 비루하게 살아가는 날품팔이 사내다. 그는 정확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허망하게 죽었다. 그의 생전에 어느 누구도 그의 이름이나 본적이나 행적을 굳이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필요할 때 불러다가 일을 시키고 몇 푼 주면 그만이었다. 루쉰은 그냥 ‘아퀘이’라고만 불린 그를 편의상 ‘아Q’라고 명명했다.

아Q는 꽤 넓게 벗겨진 머리에 부스럼 흔적이 군데군데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대머리에 대해 놀리거나 심지어 빗대어 언급만 해도 성을 냈다. “상대가 어수룩해 보이면 몰아세워 욕을 퍼붓고 힘이 없어 보이면 덤벼들어 때렸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아Q가 질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그는 차차 방법을 바꾸어 대개 눈을 부릅뜨고 흘겨보기로 했다.”

아Q가 이 ‘눈 흘겨보기’를 채용한 후 마을의 건달패들은 더욱 재미있어 하며 그를 놀려댔다. 그러나 아Q는 그들에게 대적할 방도가 아무것도 없었다. 건달패들은 그를 조롱하고 구타까지 하고 유유하게 사라졌다. 아Q는 한참 동안 서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자식놈들에게 맞은 셈이다. 요즘 세상은 정말 꼴 같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니 곧 의기양양해졌다. 더구나 그는 그의 생각을 주변에 떠벌리고 다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아Q에게는 일종의 ‘정신승리법’이 있다고 수군거렸다. 건달패들은 또다시 그를 구타하면서 “이번에는 자식이 아비를 때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야. 네 입으로 (이렇게) 말해 봐”라고 윽박질렀다.

그러자 아Q는 한 술 더 떠서 “벌레를 때리는 거야. 됐지?”라고 대꾸했다. 가까스로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나자 ‘10초도 못 돼서’ 금세 의기양양해졌다. 이른바 ‘정신승리’를 거두고 나니 기분이 좋아져서 쏜살같이 술집으로 달려갔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다른 사람들과 한바탕 다투다가 그의 허름한 처소로 돌아와 벌렁 누워 코를 골았다.

어느 날 아Q는 마을의 대갓집에 날품팔이를 갔다. 무심결에 그 집 하녀를 희롱하다가 혼쭐이 났다. 그러자 어느 누구도 다시는 그에게 일감을 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마을을 떠나 성(城) 안으로 들어갔다. 몇 달 후 그는 진귀한 옷가지 등을 파는 방물장수로 마을에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이 장물로 드러나 그의 장사도 금방 끝장이 나고 말았다.

이때 마침 혁명이 일어났다. 혁명군이 성 안에 진입하고 마을에까지 그 물결이 밀려왔다. 사람들이 혁명을 두려워하자, 아Q는 자신도 혁명에 가담해 어깨를 으쓱거려 보고 싶었다. 그는 곧 ‘정신적’으로 혁명군이 되어 혼자 구호를 중얼거리며 돌아다녔다. 부잣집 자식들은 가입비를 내고 혁명군에 가담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만 들떴을 뿐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 한 무리의 혁명군이 들이닥쳐 마을 대갓집에 은닉되었던 성내 유력자의 재산을 약탈해갔다. 이 와중에 아Q는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되었다. 이 약탈사건을 뒷정리해야 하는 혁명군에 아Q는 더없이 만만한 희생양이었다. 형식적인 조사 끝에 조서에 서명을 하라고 아Q의 손에 붓이 들려졌다.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붓을 잡고 벌벌 떨었다. 시키는 대로 서명란에 겨우 동그라미를 쳤다. 그것도 일그러지게 그리고 말았다.

혁명군은 그를 수레에 싣고 성내 거리를 돌았다. 처음에 어안이 벙벙해하다가, 그는 차츰 일이 잘못되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날로 허망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가 살던 마을의 사람들은 그가 ‘나쁘다’고 생각했다. 아마 총살될 만한 짓을 했으리라고 여겼다. 성 안의 사람들도 그가 ‘나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유는 사뭇 달랐다. “총살은 목을 자르는 것만큼 볼 만하지 않아. 더구나 그렇게 시시한 사형수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야!”

아Q는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전형적인 무지렁이다. 그는 현실적으로 승리할 방도를 찾기보다 오히려 ‘정신승리법’에 기대어 그럭저럭 살다가 억울하게 죽고 말았다. 그의 우스꽝스럽고 허망한 삶은 당시 속수무책으로 외세의 침탈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대국의식에 젖어 태연한 척하는 중국(인)에 대한 통렬한 풍자였다.

아Q는 특정 개인인가, 민중 일반인가? 아Q에 형상화된 인물상이 그 시대에 적합한 것인가, 뒤떨어진 것인가? 이처럼 아Q의 인물적 성격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거웠다. 한편 우리(한국인)는 또다른 시각으로 아Q를 바라보게 된다. 그는 굳이 당시 중국인이어야 하는가? 솔직히 말해 그를 오늘날 우리로 이해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한·일 관계는 외면하고 무시해도 무방한 관계는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영 신통치가 않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물론 일본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우리도 타성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쪽바리’들은 별수 없어”라고 말하며 ‘정신승리’에 자족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과감하게 발상을 바꿀 때다. ‘망언’만 해도 ‘문제 발언’이라고 고쳐 불러보자. 그러면 저절로 “왜 저러지?”라고 묻게 된다. 즉 상대를 탐색하게 된다. 규탄이나 정신승리로는 결코 극일(克日)할 수 없다. 지일(知日)해야 극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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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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