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여러 번 잡다한 읽을거리를 눈으로 더듬습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심심하면 뉴스를 검색하고, 뭐 재미있는 얘깃거리라도 없는지 SNS도 자주 뒤집니다. 주로 모바일폰으로 읽는데 습관인지 의무감인지 눈으로만 건성건성 보는 때가 많습니다.

마감날 아침, 화장실에서 모바일폰을 뒤적거리다가 오랜만에 머리와 마음이 움직이는 글을 접했습니다. ‘안녕? 선생님. 와줘서 나는 행복했어요. 좀만 거기 있어요. 좀만 여기 있다 갈게요. 곧 만나요. 선생님 안녕!’

이날 부고 기사가 난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황현산 교수의 페이스북에 김민정 시인이 남긴 추모글이랍니다. 가벼운 시인의 어투가 일단 눈길을 머물게 했습니다. ‘이게 뭐지?’ 잠시 낯섦을 느끼다가 시인이 이승과 저승을 장난치듯 쉽게 넘나들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 ‘아무것도 아닌 듯함’으로 인해 ‘여기’의 애틋함이 ‘거기’로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와줘서 나는 행복했어요.’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돌아가신 황 교수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누구한테선가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내가 이런 말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얼마나 있던가?’

황 교수는 생전에 쓴 글을 가끔 읽었지만 제가 잘 모르는 분입니다. 우리글을 맛깔스럽게 쓰고 엄격하고 정확한 번역을 중시한 학자였다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부고 기사를 보니 시인을 발굴하는 눈도 남달랐다더군요. 무엇보다 황 교수는 부러워할 만한 인생을 살았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김민정 시인 말고도 그의 페이스북에는 많은 추모글들이 올라오고 있다고 하네요. 다들 이승에서 그를 만나 행복했던 사람들일 겁니다.

이승에서의 바람직한 삶을 가르치고 저승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것은 시인이나 학자가 아니라 사실 종교의 몫입니다. 하지만 우리 종교는 이승의 일로 너무 바빠 저승까지 얘기할 겨를이 없어 보입니다. 마감 날, 기독교계는 한 대형교회의 세습 문제로 시끌벅적하고, 불교계는 조계종 총무원장 진퇴 문제로 어수선합니다. 이번주 김대현 기자가 쓴 조계종 사태 커버스토리를 읽어보십시오. 어수선한 조계종의 현주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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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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