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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1호]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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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하며]복날 상념

정장열  편집장 

저는 ‘개를 끊은 지’ 정확히 9년이 됐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 호야의 나이와 같습니다.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호야를 집에 데려온 날부터 개고기에 대한 욕구가 싹 사라졌습니다.
   
   마감날이 마침 말복입니다. 동물단체 회원들이 말복날 개장수에 맞서 개 지키기에 나섰다는 ‘복날 기사’들을 보면서 집에 두고 온 호야를 생각합니다. 며칠 전 호야의 귀가 안 좋아져 동네 동물병원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귀를 살펴보던 의사가 호야 옆구리에 튀어나온 살덩어리를 움켜쥐더니 “암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악성종양이 여기저기로 전이됐으면 사람처럼 수술을 하든지,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개도 나이 들면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새삼스러운 사실과 집에 예상치 못했던 암환자가 생길 수 있다는 걱정에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일단 암 진단은 뒤로 미루고 돌아왔지만 그 이후 머리 한쪽이 무겁습니다.
   
   그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가족들에게 호야의 암 얘기를 꺼냈다가 낭패를 봤습니다. 분위기가 확 가라앉길래 ‘모든 문제는 해결하려고 있다’는 어줍잖은 생각에 “악성종양이 전이됐으면 안락사시키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개가 들을지 모른다”며 다시는 안락사 얘기를 꺼내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딸은 눈물이 글썽해 저를 노려보더군요. 어릴 때는 호야 돌봄이를 자처하다가 이제 ‘나몰랑’인 아들놈은 처연한 표정으로 밥만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개라고 심각한 얘기를 쉽게 꺼냈다가 정말 X 같은 인간이 될 뻔했습니다.
   
   요 며칠 출근 전 새벽같이 일어나 호야 귀에 약을 넣어주고 가루약을 먹인 후 함께 산책을 나섰습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 온전히 호야의 시간입니다. 냄새를 맡고, 배설로 영역 표시를 하면서 가고 싶은 데로 가게 놔둡니다. 전에 ‘사인펠트’라는 미국 코미디 시트콤에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을 우주에서 외계인이 내려다봤다면 분명 주인인 개가 하인인 사람을 끌고 다니는 줄 알았을 것’이라는 농이 나옵니다. 딱 그 모양입니다. 저는 호야가 ‘이제 지겹다’면서 집에 가자는 신호를 보내기만 기다립니다.
   
   이번주 유영호 작가가 쓴 ‘갈라파고스 일기’를 보셨는지요? 그곳에서는 사람과 동물이 서로 무심한 듯 공존하는 세계가 펼쳐집니다. 이구아나 등 애초부터 그 땅의 주인들에게 인간은 그저 같이 살아가는 존재일 뿐입니다. 호야와 공존의 시간이 앞당겨질까봐 또 걱정되는군요.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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