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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감을 하며
[2523호] 2018.09.03

베트남의 승자들

정장열  편집장 

한국과 베트남이 맞붙은 아시안게임 축구 4강전을 보는 맛이 쏠쏠했습니다. 베트남서 영웅이 되어버린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 실력을 진짜 얼마나 키웠는지 궁금했고, 손흥민 선수가 군 입대 면제의 관문을 넘을지 못 넘을지도 궁금해 내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이리저리 공을 차는 것을 한참 지켜보려니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 Y가 생각나더군요.
   
   Y는 1980년대 대학을 함께 다닌 친구입니다. 같은 대학은 아니었지만 꽤 자주 어울렸습니다. Y는 강원도에서 서울로 유학 와서 아버님이 보내주시는 돈으로 신촌의 한 대학을 꾸역꾸역 다녔습니다. 투사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당히 시대에 분노하고, 적당히 놀던 친구였습니다. 강의실보다는 술집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익숙하던 시절, 그 친구와 신촌의 돼지갈비집에서 손목시계와 학생증을 맡겨놓고 대낮부터 호기를 부리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Y는 대학 성적이 신통치 못해서 남들이 대기업에 취직할 때 중견 의류기업에 간신히 취직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업이 Y가 입사하자마자 정식 문호도 열리기 전 베트남행 첫차를 탔습니다. 인건비가 싼 베트남에 공장을 차리려고 한국 기업들 중 거의 1순위로 베트남 진출을 시도한 겁니다. 평소 “가진 것은 촌놈 배짱밖에 없다”던 신입사원 Y도 호기롭게 베트남행을 택했습니다.
   
   이후 Y의 인생은 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은 사람의 힘이었던 것 같은데, 사람 보는 눈이 남다름을 자부하던 Y는 함께 일하던 베트남 사람들의 성실함과 총명함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1년도 안 돼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쓰고 나와 바로 현지에서 자신의 사업체를 차렸습니다. 무모하다면 무모한 일이었을 텐데, 이 무모한 길에 한국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베트남인 경리 아줌마가 동행했습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Y는 베트남에서 큰 부를 일궜습니다. 그가 소유한 업체는 1000명 가까운 현지 직원을 두고 ‘후부’ ‘나이키’ 등 유명 브랜드의 옷들을 만듭니다. 그의 첫 파트너였던 베트남 아줌마는 어떻게 됐을까요. 수년 전 베트남 출장 때 Y를 만났더니 거의 할머니가 된 아줌마를 소개해주면서 “지금도 내 옆방을 지키고 있다”며 고마워하더군요. 그때 Y는 “이 아주머니가 변심을 하면 나는 알거지가 된다”는 말도 했습니다. 베트남의 법 때문에 자신의 모든 재산이 이 아줌마 명의로 돼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제 눈에는 여전히 무모해 보였지만 Y는 “믿던 사람한테 배신당하면 내가 잘못한 것 아니겠느냐”며 통 큰 믿음을 보이더군요. 베트남에서 성공한 Y는 거리낌없이 베트남을 제2의 조국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Y는 1980년대 말 한국 경제가 한창 성장할 때 고국에서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베트남으로 튕겨갔습니다. 그게 전화위복이 될 줄은 당연히 본인도 몰랐을 겁니다. 베트남으로 향하는 ‘Y들’은 요즘에도 넘쳐납니다. 일자리가 부족한 한국을 떠나 베트남에서 기회를 잡고자 많은 젊은이들이 베트남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에는 베트남어 학원들이 난데없이 호황이라는 기사도 나오더군요. 베트남이 모두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인생은 역시 도전이라는 말도 Y를 보면 과히 틀리지 않은 듯합니다. 독자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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