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환절기가 되면 제가 유심히 지켜보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옷차림이 얼마나 빨리 바뀌느냐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가을 문턱 어쩌구 얘기만 나와도 바로 가을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날씨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냥 반팔 차림을 고수합니다. 저는 날씨 변화에 둔감한 쪽입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도 꽤 쌀쌀했지만 여름 내내 입던 반팔 셔츠를 그냥 입고 나왔습니다.

변화에 느리고 둔감하다는 점에서 저는 보수적일 수 있습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느리고 변화에 앞장서는 것은 거의 젬병입니다. 좀 한심한 얘기지만, 대학 다닐 때 공산권 국가들의 인민복이 좋아 보인 적도 있었습니다.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면 옷을 고르는 고민이나 수고를 하지 않고 더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쓸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보수와 진보의 구분을 넘어 전체주의적 사고를 하는 인간입니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자유와 개성을 속박하고 속박받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모든 나라에서 보수와 진보는 온갖 사안들을 두고 서로 툭탁거리지만 그 구분은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실제 그렇게 접근하는 흥미로운 분석들이 더러 있습니다. 카투사로 군 복무를 할 때 막사에서 미군이 보던 플레이보이지의 기사를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 ‘야한’ 잡지에 난데없이 일상에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조사 결과가 실렸습니다. 예컨대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보수,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진보 같은 것들입니다. 잠잘 때 잠옷을 걸치면 보수, 벗고 자는 걸 좋아하면 진보라는 조사 결과도 있었습니다.

보수와 진보는 진짜 취향의 문제일까요. 고양이와 개의 구분은 꽤 유용한 듯싶습니다. 2012년 미국 대선 결과를 두고도 비슷한 조사 결과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애완동물 소유와 인구통계 자료집(US Pet Ownership & Demographics Sourcebook)’이라는 조사인데 실제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별로 어떤 후보한테 표를 던졌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여기서도 결과는 ‘개=보수, 고양이=진보’였습니다. 개를 키우는 가정이 많은 상위 10개 주 중 9개 주가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에게 표를 더 많이 던졌습니다. 대선 당시 롬니 후보가 애완견 시머스를 차 지붕 캐리어에 매달고 12시간이나 달렸다는 사실이 밝혀져 학대 논란이 벌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반면 뉴욕, 로드아일랜드, 미네소타주처럼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10개 주 중 상위 9개 주는 민주당 오바마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합니다. 이는 고양이를 대입시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버몬트, 메인, 오리건, 워싱턴 등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주들에서는 개를 키우는 사람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았다는 겁니다.

저는 개를 키우고 변화에 늦게 반응하긴 하지만 변화 자체를 거부하진 않습니다. 날씨가 바뀌면 옷을 바꿔 입듯이 변화를 따릅니다. 오히려 변하지 않고 고여 있는 것을 싫어하는 쪽입니다. 북한이, 김정은이 변한다고들 난리입니다. 저 같은 느림보는 진짜 북한이 변하는지 이것저것을 따져본 후에 판단을 내리려고 합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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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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