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오후 휴대폰이 미친 듯이 부르르 떨며 이상한 경고음을 냈다. 무슨 일인가 들여다보니 ‘대통령의 문자 메시지’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자를 보낸 줄 알았다면 농담이고, 사실은 며칠 전부터 얘기가 나왔던 ‘대통령 경보(Presidentail Alert)’였다.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대통령 이름으로 경고 메시지를 발송한 것이다. 천재지변이나 테러 같은 국가비상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에 2억2500만대의 휴대폰이 있는데 그중 75%가 이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주로 트위터를 통해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는 트럼프는 어쩌면 국민들에게 직접 문자를 보내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중시한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미국의 주류 언론들을 ‘가짜뉴스’라고 비난하면서, 국민들이 언론이 아닌 자신에게 직접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워싱턴에서 백악관과 국무부의 브리핑은 매일 있는 행사였다. 국내외의 주요 사안에 대해서 미국 정부의 입장을 들을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 트럼프 행정부도 초기엔 전례를 따라 거의 매일 브리핑을 진행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브리핑 횟수가 줄기 시작하더니 백악관의 경우 9월엔 한 번 했을 뿐이다. 국무부도 일주일에 두어 번 할 뿐이다.

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의 존재감도 확연히 줄었다. 그간 미국의 거의 모든 뉴스 채널들은 백악관 브리핑을 생중계했다. 대변인과 기자들의 설전은 늘 날것으로 국민들에게 전달됐다. 때로 대변인과 기자들의 설전이 격화되고, 그 장면이 반복 재생되거나 희화화되는 일도 잦았다.

어떤 의미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대변인이 필요 없는 정부이다. 대변인은 대통령이 현안에 대해 일일이 입장을 밝히기 어렵기 때문에 ‘대신 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직접 다 설명하고 있으니 대변인의 역할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그래도 트럼프가 한 말이 논란이 됐을 때 대변인이 추가 설명을 하는 역할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일도 줄었다. 어차피 그 부분도 트럼프가 직접 하고 있다. 트위터를 통해서도 하고, 행사장에 오가면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한다.

지난 9월 말 뉴욕에서 유엔총회가 열렸던 시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오랜만에 기자회견을 했다. 6월 싱가포르에서 미·북 정상회담 직후 했던 기자회견 판박이였다. 당시 회담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 다들 실망한 분위기였는데, 트럼프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마치 한판 공연을 하듯 기자회견을 했다. 뉴욕에서도 그랬다. 대통령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미친 듯이 손을 드는 기자들을 보면서 너무나 흐뭇해했다.

최근 웨스트버지니아에서 했던 유세는 대중의 관심이 쏟아질 때 기운이 뻗쳐오르는 트럼프 유세의 절정을 보는 것 같았다. 트럼프가 북한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했던 그 현장이다. 트럼프의 연기 같은 연설에 지지자들의 박수와 웃음이 터진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대통령답지 않다고 하겠지”라고 하더니, “대통령답게 하는 것은 쉽다”면서 종이를 들고 읽는 시늉을 했다. 써준 대로 읽는 척하면 대통령다운 것이냐는 반문이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트럼프 한 사람에 의해 관리되고, 때로는 즉흥적으로 결정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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