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지마기념관의 상징인 ‘이오지마 성조기’ 조각. 6명의 해병대원이 성조기를 땅에 꽂고 있다.
이오지마기념관의 상징인 ‘이오지마 성조기’ 조각. 6명의 해병대원이 성조기를 땅에 꽂고 있다.

미국 워싱턴 가을 풍경 중 하나로 ‘아너플라이트(Honor Flight)’를 빼놓을 수 없다. ‘영광의 비행’쯤으로 풀이되는 용어로 퇴역군인 워싱턴 무료 초청행사를 의미한다. 미국 전역에 흩어진 퇴역군인을 워싱턴에 초청해 전쟁 관련 기념물들을 돌아보고, 행사와 파티에 참가하는 이벤트다. 2005년 한 퇴역군인이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6만명 정도가 ‘아너플라이트’에 참가했다. 고령자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워싱턴을 거닐다 보면 이 행사 참가자들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여성이 거의 없는, 휠체어를 탄 남성이 뒤섞인 시니어 그룹이 천천히 움직인다. 수십 년 전 현역 당시 속했던 부대 이름을 새긴 모자나 깃발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아너플라이트 일행임을 알아챈 미국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박수와 미소로 환영한다. 워싱턴의 봄이 포토맥 강변의 벚꽃축제로 유명하다면 가을의 워싱턴은 아너플라이트로 수놓은 듯하다.

워싱턴과 주변에 흩어진 10여개 전쟁기념관은 아너플라이트의 필수 코스다. 제1·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 베트남전을 비롯한 각종 전쟁의 기념관들이 주요 방문처다. 알링턴국립묘지는 아너플라이트의 하이라이트 코스이다. 자신과 함께 싸웠던 전우의 묘지를 찾아 그날의 기억들을 되살리면서 명복을 빈다.

이오지마(硫黃島)기념관은 필자가 주목한 올해 아너플라이트 방문지 중 하나다. 보통 아너플라이트 참가자는 알링턴국립묘지에 들르기 직전 이 기념관을 찾는다. 이오지마기념관의 공식명칭은 ‘해병전쟁기념관(Marine Corps War Memorial)’. 알링턴국립묘지 바로 오른쪽에 있다.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은 국립묘지 왼쪽에 들어서 있다. 워싱턴 포토맥강 건너 서쪽 버지니아주에 국방부와 알링턴국립묘지, 이오지마기념관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워싱턴의 가을은 퇴역 군인들 초청 행사가 수놓는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밥 쇼(왼쪽)와 2차 대전 참전용사인 하워드 커네치씨가 지난 5월 28일 텍사스 선시티에서 열린 베테랑데이 행사 때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워싱턴의 가을은 퇴역 군인들 초청 행사가 수놓는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밥 쇼(왼쪽)와 2차 대전 참전용사인 하워드 커네치씨가 지난 5월 28일 텍사스 선시티에서 열린 베테랑데이 행사 때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미군 6800명, 일본군 1만8000명 숨져

이오지마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전사자를 낸 전투로 기록돼 있다. 유황도란 이름 그대로, 화산지대에 불과한 일본의 작은 섬 하나를 탈환하기 위해 대살육전이 벌어진 곳이다. 해병대를 중심으로 약 11만명의 미군이 투입돼 일본군과 일대일 각개전투를 치렀다. 참고로 한국전의 방향을 바꾼 인천상륙작전의 경우 미국·한국을 포함한 유엔군 전부를 합쳐 4만명이 참가했다.

무려 5주 동안이나 계속된 이오지마 탈환 작전에서 미군 사망자는 6821명, 부상자는 2만명에 달했다. 방어에 나선 일본군의 경우는 떼죽음 그 자체였다. 일본군 전체 병력 2만1000여명 가운데 1만8000여명이 숨졌다. 나머지 대부분도 행방불명으로 처리됐다. 지금까지도 유해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최종적으로 살아남아 포로가 된 일본군은 216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99%가 전사한 셈이다.

태평양 제공권 장악을 위해 벌인 전대미문의 이 전쟁은 2차 세계대전 기념관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된 기념 공간이 운영되면서 미국인들에게 각별히 기억되고 있다. 전쟁이 아닌, 작은 전투를 기억하는 특이한 기념관인 셈이다. 미군 역사상 이오지마가 갖는 의미가 어느 정도인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필자가 최근 이오지마기념관에 주목한 이유는 미·일 관계 때문이다. 필자 판단이지만, 현재 미국이 신뢰하는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 바로 일본이다. 유럽의 영국, 중동의 이스라엘에 버금가는 최정예 동맹국이 일본이다. 시간문제일 뿐 앞으로 미군이 파병되는 모든 전투에 일본군이 가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최근 남중국해를 비행한 미 공군 전략핵 폭격기 B52를 호위한 것도 일본 전투기다. 중국 영토에 대한 공습은 미군이 하지만, 중국의 대응공격에 대한 방어는 일본군이 맡는 식이다. 공격은 미국, 방어는 일본인 셈이다.

1930년대, 항일을 매개로 맺어졌던 중국 국민당, 공산당과 미국과의 관계가 180도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미·중 힘겨루기가 격화되면서 이오지마전투에서 총구를 겨눴던 원수의 나라들이 최우방으로 변해가고 있다. 미·일 합쳐 모두 2만5000여명이 숨진 이오지마. 아너플라이트 참가자들은 오늘의 미·일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까. 미·일 관계의 밀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과거 끔찍한 전투를 치렀던 노병들은 지금 이오지마를 어떤 의미로 되새기고 있을까.

최근 이른 아침 시간을 이용해 이오지마기념관을 찾았다. 이미 수차례 찾은 적이 있지만, 가을 방문은 처음이다. 이오지마기념관은 전쟁기념관인 동시에 해병대 퍼레이드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매년 여름 1주일에 한두 번씩 군악대를 앞세운 해병대 퍼레이드가 벌어진다. 해가 질 무렵에 이뤄지는 이벤트로, 뜨거운 워싱턴 여름의 볼거리 중 하나다. ‘그렌 밀러(Glenn Miller)’ 행진곡에 맞춘 해병대 열병식은 미국의 힘인 동시에 매력으로 와닿는다. 한 나라의 진짜 파워는 엄청난 힘이나 화난 얼굴, 협박성 발언과 무관하다. 박력 있는 음악과 더불어 퍼져나가는, 모두가 공유하는 굳은 결의와 마음자세가 파워의 진짜 요소다. 최첨단 무기나 특수병력만이 아닌, 군악대라는 소프트파워와 함께하는 미 해병 퍼레이드야말로 미국식 하드파워의 결정체다.

알링턴 국립묘지
알링턴 국립묘지

‘이오지마 성조기’ 조각에 담긴 것들

이오지마 기념물 바로 옆에는 1952년 네덜란드 정부가 보내온 친선의 종탑이 들어서 있다. 매 시간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오지마 기념물 바로 옆에는 1952년 네덜란드 정부가 보내온 친선의 종탑이 들어서 있다. 매 시간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오전에 들른 탓인지 예상외로 방문객이 드물다. 여름철에는 학생들과 지방에서 올라온 관광객으로 터져나가는 곳이다. 이오지마기념관은 워싱턴 내 다른 기념관과 달리 차분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큰 도로에서 벗어나 있고 국립묘지 바로 옆이기도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안정된 분위기가 떠다닌다. 대자연에서 느껴지는 신비한 파워라고나 할까.

아마도 링컨기념관과 미 의회 건물로 이어지는 워싱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위치에 위치해 있다는 점도 그런 신비한 분위기를 불러오는 요인일 듯하다. 고대 그리스의 신성(神聖) 영역인 아크로폴리스가 그러하듯, 이오지마기념관은 국립묘지와 더불어 워싱턴 시내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언덕 위 기념관이다. 주차를 하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오지마 전투 상징물이 눈에 띈다. 전 세계 모두가 기억하는 ‘이오지마 성조기(Rising the Flag on Iwo Jima)’다. AP통신 사진사 출신으로 해병대 영상기록을 담당하던 조 로젠탈(Joe Rosenthal)이 1945년 2월 23일 찍은 사진을 기초로 한 기념물이다. 해발 160m에 불과한 이오지마 최고봉 수리바치산(摺鉢山)을 미 해병대가 점령한 직후의 모습이다.

주변에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지만 ‘이오지마 성조기’는 이오지마기념관을 장식하는 유일한 기념물이다. 따라서 ‘이오지마기념관=이오지마 성조기’다. 조형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봤다. 6명의 해병대원이 힘을 합쳐 성조기를 땅에 세우고 있다. 모두가 서로 경쟁을 하듯 온 힘을 깃봉에 실어넣는다. 자세히 보면 그냥 세우는 것이 아니라, 땅속으로 쑤셔박아 넣는 모습이다. 총알이 오가는 사선을 넘는 전투 중이라 삽으로 땅에 구멍을 낼 틈도 없었을 듯하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미국이 가진 가공한 파워를 절감하게 만드는 이미지다. 베트남전쟁 당시 베트콩 한 명 사살하는 데 평균 10만발의 총알을 퍼부은 나라가 미국이다. 최근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대응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땅에 쑤셔넣는 완력을 보면서, 무식하고도 원시적인 대응이라 비난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피할 틈 하나 없는 초강력 파워다. 문이 안 열릴 경우 아예 미사일을 동원해 잿더미로 만드는 식이다.

이오지마 성조기 속의 해병대원 6명은 미국 역사가 기억하는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6명에 관한 얘기는 책은 물론 영화를 비롯한 영상물로도 만들어져 미국인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오지마 성조기의 주인공 6명 중 3명은 이 사진을 찍은 직후 사망했다. 각각 19세, 20세, 25세의 나이로 일본 패잔병과의 전투에 투입돼 싸우던 중 전사했다.

이오지마는 6명의 영웅담만이 아니라 미 해병의 역사와 전통의 의미를 알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1954년 11월 세워진 ‘이오지마 성조기’는 8각형 받침대가 떠받친 조형물이다. 추정컨대 8각형은 기독교 사상에서 온 듯하다. 8각형은 신의 축복과 은혜에 기초한 완벽함을 의미한다. 신이 세상을 완성하고 쉰 다음 날이자, 만물의 영장 인간이 첫발을 내디딘 시간이 천지창조 시작 8일째다. 따라서 교회본당 제단과 천장은 반드시 8각형으로 이뤄져 있다. 미 해병대의 역사와 전통은 8각형 받침대에 새겨진 문구와 상징물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크게 볼 때 동쪽과 서쪽의 두 개 구도다. 먼저 동쪽 벽면을 보자. 독수리 문양의 해병 상징물과 함께, 해병 첫 전사자를 낸 독립전쟁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기억을 되새기고 있다. ‘1775년 11월 10일 이래,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해병대원을 기리면서….’ 서쪽 벽면은 월계관을 배경으로 한 문장이 새겨져 있다. ‘평범하지 않은 용맹성이야말로 가장 평범한 미덕이다(Uncommon Valor Was A Common Virtue).’

8각형 벽면의 윗부분은 미 해병이 지금까지 참전한 전쟁터와 참전시기를 기록해주고 있다. 1775년 독립전쟁을 시작으로 이후 전 세계에서 벌어진 거의 모든 전쟁에 참전했다. 제1·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 베트남전 같은 큰 전쟁만이 아니라 스페인(1898), 아이티(1915),산토도밍고(1916), 니카라과(1926), 도미니카(1965) 같은 곳에서의 전쟁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전쟁 기록은 원래 벽면 제일 꼭대기 윗줄 하나에서 출발했지만 점점 늘어나는 과정에서 두 개의 줄로 확장돼 새겨져 있다. 제일 마지막에 새겨진 전쟁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두 개의 전선이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과 2003년 이라크로, 전쟁발발 연도 뒤에 계속이란 의미의 이음표가 새겨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이다. ‘1945년 이오지마 오키나와(沖繩)’에 이어 ‘1950년’이란 숫자와 함께 한국전이 새겨져 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처럼 이음표가 없다. 벽면만 본다면, 휴전 상태의 진행형이 아니라 이미 끝난 전쟁에 해당한다. 종전선언조차 필요 없는 이미 끝난 전쟁이라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은 정반대다. 이미 관심사에서 멀어진, 잊힌 전쟁터가 한국이다. 좋게 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잊힌 전쟁의 나라 한국이 올해 다시 미국인 모두의 기억 속에 되살아났다는 점이다. 북핵 위협 때문이다.

한 시간 정도 천천히 돌아보는데 멀리서 휠체어에 탄 70대 백인 노인 두 명이 눈에 띈다. 자원봉사자인 듯한 청년 두 명의 도움으로 ‘이오지마 성조기’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대규모 아너플라이트 일행이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 온 퇴역군인인 듯하다. 나이로 볼 때 베트남전쟁 참전자일 듯하다. 이오지마를 둘러싼 미·일 양국 간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워낙 감회에 찬 모습으로 둘러보기에 그만뒀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주목하는 것이 미국인이다. 질문에 대한 답이 어떨지는 대략 예상된다.

일본인의 경우 이오지마기념관은 워싱턴에서 가장 멀리하고 싶어하는 공간이다. 워싱턴에 들른 일본인 친구들에게 이오지마기념관에 가자고 하면 대부분 부정적이다. 패전으로 인한 피해의식도 있지만 몰살을 당한 같은 일본인에 대한 예의라는 측면도 있을 듯하다. 밀월관계인 미·일이지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진주만 공격을 기억하고 있다”고 아베 총리에게 전했다고 한다. 미·일 관계가 깊어질수록 이오지마의 의미도 한층 더 강해진다는 의미다.

미 해병의 구호 ‘영원한 충성’

때마침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 ‘기묘한’ 뉴스 하나가 날아온다. 적(敵)도 없고, 공격은커녕 방어에 나설 화력조차 보기 힘든, 야간운동장 국군의날 행사다. 첫 느낌이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같다. 군이 아닌 연예인과 마주 서서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대통령의 모습도 보인다. 포스트모더니즘풍의 축제 분위기와 이벤트도 좋다. 그러나 그쪽 방향으로 아무리 앞서가는 미국이라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이다. 예컨대 미국에서 이오지마의 의미와 무용담은 일본과 관계가 좋다고, 반대로 나쁘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 국군의날 행사 열병식에서 한 청년이 대통령에게 ‘충성’ 구호를 외쳤다. 이오지마 조형물 아래 새겨져 있지만, 미 해병의 구호는 ‘영원한 충성(Semper Fidelis)’이다. 일회성이 아닌 ‘영원한 충성’이다. 국가가 존속하는 한 군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의미다. 상황에 맞춰 팔색조로 변하는, 정치적인 군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막장 대통령이라는 트럼프 같은 인물 100명도 미국을 무너뜨릴 수 없다. ‘영원한 충성’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이오지마는 일본을 누른 승리의 무대가 아닌, 해병이 맹세한 ‘영원한 충성’의 증명서다. ‘영원한 충성’의 결과, 전쟁터에서 숨져 바로 옆 국립묘지로 직행한다 해도 지켜질 약속이다. 이오지마기념관을 지금도 찾는 미국인 모두의 가슴에 새겨질 ‘영원한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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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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