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는 창간 50주년 기념호입니다. 1968년 10월 20일 선보인 주간조선 1호가 어느덧 2529호까지 쌓였습니다. 50년 전 선배들이 시작했던 ‘한 주의 과업’이 반세기 동안 이어지다 저와 후배들이 50주년 기념호를 제작하는 영광을 맞았습니다.

주간조선이 창간되던 때는 대한민국 경제가 막 도약하던 시기였습니다. 그해 4월 맨손으로 시작한 포항제철이 기적처럼 완공돼 쇳물을 뽑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해 말에는 정주영 회장이 현대자동차를 창업했고, 창간 이듬해 1월에는 삼성전자가 출범했습니다. 대한민국을 일으켜세우는 그런 용틀임 속에서 주간조선이 첫선을 보인 것입니다.

주간조선은 처음부터 ‘정론지’를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이른바 옐로주간지들이 판을 치던 상황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 셈입니다. 그런 주간조선의 창간정신은 처음부터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주간조선은 창간 17년 만인 1985년 6월 1일자로 7만부를 돌파했고, 두 해 뒤인 1987년 10월 창간 19주년 기념호(지령 969호)는 10만부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주간조선은 한때 발행부수 15만부를 기록하는 등 국내 시사주간지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주간조선은 지금과 같은 시사주간지의 틀을 만들어오는 데도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주간조선은 창간 이후 10년 동안 신문 형태의 타블로이드 판형을 이어오다가 1979년 1월 지령 519호부터 판형을 지금과 같은 4×6배판 책자 형태로 바꾸었습니다. 1982년 10월, 창간 14주년을 맞아 지령 712호부터는 증면과 가로쓰기 혁신을 단행했습니다. 종래 72쪽이었던 지면을 지금과 같은 100쪽으로 확대하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의 뉴스를 담는 본격적인 종합 시사주간지, 시사교양지를 표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주간조선의 약사와 성취는 단 몇 줄로 요약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헤아리기 힘든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주간조선에서만 29년째 일하고 있는 저로서는 주간조선 지면에 밴 그 땀방울을 누구보다 오랫동안 지켜봐왔습니다.

이번 창간기념호에 많은 읽을거리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어령 교수와의 인터뷰가 가장 가슴에 와닿습니다. 이 교수는 ‘주간조선 창간 50주년’의 의미를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냈습니다. “시간이란 최고의 재판관이에요. 최고의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지혜로운 재판관. 반세기 가까이 한 매체가 살아남았다는 건, 그때그때 시류에 떠밀리지 않는 커다란 닻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야. 앞을 내다보며 꾸준히 창간 당시의 초심을 이어왔다는 증거지요.”

저희로서는 과찬이지만 50년이라는 시간을 딛고 진짜 ‘지혜로운 재판관’이 되고자 다짐합니다. 시류에 떠밀리지 않는 우리의 커다란 닻이 무엇인지도 곰곰이 되새겨보고 있습니다.

저희는 창간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0월 22일 조촐한 축하 자리를 가집니다. 주간조선을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과 함께 ‘앞으로의 50년’을 다짐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모든 독자님들을 초청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아 이 지면을 빌려 주간조선의 다짐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독자님들, 주간조선의 ‘앞으로의 50년’도 지켜봐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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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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