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晩秋)에 꺼내보고 싶은 고전적 역사서가 있다. 바로 네덜란드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1872~1945)의 ‘중세의 가을’(Herfsttij der Middeleeuwen·1919)이다. 흔히 가을은 온갖 곡식이 무르익는 풍요의 절정기이자, 동시에 생명이 사그라드는 쇠락기로 인식된다. 이런 이중적 이미지를 통해 ‘중세의 가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얼추 상상해볼 수 있다.

“중세는 암흑 시대다.” 이것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들어온 말이다. 겨우 중세 말에 이르러서야 르네상스의 희미한 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그나마 중세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다. 이런 부정적 통념은 지금도 별로 바뀌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하위징아는 이미 100년 전에 중세에는 중세다운 독자적인 문화가 풍성하게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 문화가 한껏 농익어 화려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중세의 끝자락인 14~15세기였다는 것이다.

하위징아의 주 연구 대상은 부르고뉴공국(1361~1482)의 문화였다. 이 공국은 오늘날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은 물론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에 걸쳐 존재했다. 본래 이 일대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오랫동안 독립적인 역사를 이어왔다. 특히 부르고뉴공국은 120년 동안 상당히 독자적으로 발전하다가, 결국에는 프랑스왕국에 복속되었다. 이 공국의 북부지방에 형성된 독특한 정체성이 바로 오늘날 네덜란드 탄생의 기반이 되었다.

‘중세의 가을’은 다양한 기록, 증언, 문학, 회화 등을 통해 중세인의 삶의 모습을 다방면에서 다채롭게 재구성한다. 이런 문화사적 서술방식은 정치경제사 중심의 전통적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그리하여 출간 당시부터 그의 방법론은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금도 읽기가 여전히 만만치 않다. 하지만 어렵사리 읽고 나면 저자가 의도한 바가 머릿속에 선명한 이미지로 각인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세상이 지금보다 500년 더 젊었을 때 모든 사건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선명한 윤곽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의 인상적인 첫 구절이다. 당시에는 기쁨과 슬픔, 고귀함과 비루함, 가난함과 부유함 등이 뒤엉켜 있었지만, 서로 간에는 확실한 경계선이 존재했다. 그런 모든 차이는 ‘잔인할 정도로’ 겉으로 드러내야 했다. 무엇보다 신분, 지위, 소속 등은 의복으로 구분되었다. 심지어 문둥병자는 옷에 방울을 달고 딸랑거리며 다녀야 했다. 반면 귀족들은 빚을 내서라도 격식에 맞춰 성대하게 치장해야 했다.

이처럼 극단적 요소들의 혼재와 구별은 중세인들의 감정을 강렬하게 자극했다. 그들은 한편으론 동정과 참회와 탄식에 잠기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분노와 선망과 탐욕으로 이글거렸다. 그리하여 엄청난 인파가 유명한 설교자를 따르며 회개의 눈물을 뿌리는가 하면, 그 소용돌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다시금 세속적 쾌락이 꿈틀거리곤 했다. 이로 말미암아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이 흐릿해진 나머지, 삶은 마치 동화나 놀이처럼 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어느 시대든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동경한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현실을 부정하고 내세에 기대를 걸기도 한다. 종교적 몰입이 대표적이다. 또는 현실을 개선하여 완전하게 만들려는 열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근대적 합리주의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14~15세기 중세인들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현실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복잡미묘했다.

그들은 현실의 극단적 요소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세상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리하여 세상의 비참함과 비루함에 절망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탐닉했다. 그들은 현실을 부정하지도 못했고 또한 현실을 완전하게 개선할 의욕도 없었다. 이로 인해 암울한 현실과 화려한 환상 사이의 간극이 점점 벌어졌다.

이런 간극을 메우기 위해 그들의 삶은 엄격하게 형식화된 규율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름다움을 고상하게 꾸며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 ‘과장된’ 형식을 만들어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사람들은 삶을 화려한 색깔로 채색하고 빛나는 환상의 꿈나라에 살면서… 현실의 가혹함을 망각하려고 했다.”

그런 삶의 형식은 궁정에서 극단적으로 발전되었다. 의복은 실용성과 관계없이 우스꽝스러울 만큼 화려하고 웅장했다. 식사 과정은 마치 장엄하고 엄숙한 연극처럼 꾸며졌다. 또한 사회적 관계도 정교한 형식과 장황한 공손함으로 치장되었다. 이처럼 과장되게 규율화된 형식은 한 치의 위반도 용납하지 않았다. 사소한 위반이 실제로 분노, 복수, 전쟁 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형식이 최소한의 형태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이 이른바 에티켓이다.

암울한 현실과 찬란한 환상 사이

그러한 중세적 현실 속에서 영웅적 이상으로 삶을 연극이나 놀이처럼 아름답게 꾸민 것이 바로 기사도 문화였다. 기사들은 극단적으로 형식화된 궁중연애나 무예대결 등을 통해 용기, 고상함, 헌신 등의 가치를 숭고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그런 고상한 생활방식은 당시 사람들에게 매혹적이었다. 심지어 서민들도 ‘능력이 닿는 대로’ 최대한 그런 형식을 흉내 내려고 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후대에 그런 열망을 소설 형식으로 풍자한 것이다.

흔히 이런 삶의 형식은 한낱 공허한 환상으로 폄하되기 일쑤다. 그것이 바로 중세에 대한 전통적인 폄훼의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위징아는 역사에서 인구 수나 통계치가 중요한 것만큼 아름다운 꿈이나 고상한 삶의 환상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인위적이고 진부하게 보일지라도 기사도 문화 역시 실제로는 정치·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중세의 가을’에 따르면 14~15세기야말로 중세문화가 최고의 형식을 갖춘 장엄한 시기다. 당시 중세인들은 암울한 현실과 찬란한 환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들은 기사도 문화를 비롯해 삶의 ‘과장된’ 형식을 통해 그 간격을 메우려고 발버둥쳤다. 그것은 그 시대 나름의 진지한 생활방식이자, 생존전략이었다. 물론 그런 미봉책으로 시대의 몰락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위징아는 저녁 노을이 물든 벌판을 산책하다가 ‘중세의 가을’을 착상했다. 저녁 노을이 하루 중에 가장 화려하듯이, 역사도 끝자락에서 보여주는 농익은 모습에 그 시대의 진수를 가장 잘 드러내게 된다. 이런 통찰에 근거하여 그는 중세의 가을을 구석구석 느긋하게 둘러보았다. 그의 따뜻한 시선을 통해 중세는 역사 속에 당당하게 복권되었다.

우리는 공연히 조급증에 휩싸여 산다. 가을이 되면 서둘러 겨울로 눈길을 돌리기 일쑤다. 가을뿐만이 아니다. 허둥지둥 서두르는 바람에 제대로 맛보지 못하는 것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하위징아는 중세 가을의 다채로운 풍경들을 펼쳐보이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느 틈엔가 우리도 느긋한 ‘가을’ 감상자가 되고 만다.

르네상스를 거치며 우리는 무엇이든 바꾸고 개선할 수 있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런 열망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순조롭게 실현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다시금 환상은 화려해져도 현실이 암울해지는 불길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저절로 ‘근대의 가을’을 떠올려 본다. 가을이 중세의 전유물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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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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