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면 발걸음이 잦아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장례식장입니다. 환절기, 특히 겨울의 길목에서 노인들이 죽음의 문턱을 오간다는 건 거의 통계적 진실 같습니다. 주위 사람들한테 다 물어봐도 요즘 부고장이 날아오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 최근 이틀에 한 번꼴로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장례식장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밤을 새워 고스톱을 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일까요. 문상객들 앞의 음식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익숙한 음식들을 앞에 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풍경은 붙박이 정물화 같습니다. 하지만 그 풍경 속을 오가는 대화는 항상 시류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장례식장은 누군가가 죽음으로써 산 자와 죽은 자가 잠깐 함께하는 공간입니다.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가 결국 산 자들의 이야기로 흐릅니다. 평소 같으면 꺼내기 힘들었던 내밀한 이야기들이 소문의 형태로 피어오르기도 합니다. 장례지도사 양수진씨는 얼마 전 펴낸 ‘이 별에서의 이별’이라는 자신의 에세이집에서 장례식장의 천태만상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아내를 입관하면서 상조회사 측에 “금니 여섯 개를 빼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한 남편부터, 암 투병으로 숨진 아내에게 다가가 짧은 키스와 함께 “정말 사랑했습니다”란 마지막 인사를 던지는 남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밑바닥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 장례식장이라는 겁니다.

제가 최근 장례식장에서 접한 대화들을 보면 지금 사람들의 큰 관심은 ‘건강’과 ‘경제’인 듯합니다. “먹고살기 힘들어질수록 몸이라도 건강해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사업을 하는 한 친구는 우울한 표정으로 “꼭 그렇지도 않다”고 했습니다. “먹고살 만해야 몸을 챙기는데 먹고살기 힘드니 몸도 망가진다”는 겁니다. 직원들을 내보내느라 요즘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이 친구는 “내년이 진짜 걱정”이라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습니다.

장사를 하는 또 다른 친구는 “젊은 친구들이 돈을 너무 안 쓴다”는 불평도 터뜨렸습니다. 5000원짜리 점심값도 아까워하는 젊은 친구들이 편의점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게 체질화됐다는 겁니다. 호기는 살아있던 자신의 젊은 시절과 달리 점점 의욕을 잃고 작아지는 젊은이들이 안쓰럽다고 했습니다. 이 친구는 “건강이 아니라 돈이 없어 담배를 끊는 젊은이들이 많다”며 취재해보라는 말도 하더군요.

“내년이 더 걱정”이라는 말은 곳곳에서 들렸습니다. 연일 언론을 장식하는 우울한 경제 관련 수치들이 사람들의 걱정을 키우고 있는 듯했습니다. 경제에 대한 걱정은 정부 경제팀에 대한 질타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경제팀을 도대체 언제 바꾸느냐” “바꾸기는 바꿀 것 같은데 도대체 누가 맡느냐”부터 “대통령이 경제에 대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까지 일사천리로 이어졌습니다. 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는 친구들 중에는 2년 전 촛불집회에 참가했다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 끝에 다들 12시 전에 부지런히 일어서는 것도 달라진 장례식장 풍경일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들이 더 걱정된다는 의미일까요. 장례식장을 나서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의 뒤가 추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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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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