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은 지난해 출범 직후 100대 국정과제를 선정했다. 그중에 제1번이 적폐청산이다. 어느 정권이든 이처럼 건설보다 치죄(治罪)를 으뜸으로 삼는 것은 이례적이다. 당연히 그것의 목표는 사법적 정의를 뛰어넘는 역사적 정의다. 그 기준 역시 법을 뛰어넘어 도덕으로 치닫게 된다. 과연 이런 도덕적 치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이럴 때 한번 펼쳐보고 싶은 것이 바로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의 ‘역사철학강의(Vorlesungen u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다. 헤겔은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1822년부터 격년으로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역사철학을 강의했다. 이 책은 그가 죽은 뒤에 그의 강의노트를 바탕으로 그의 제자에 의해 편찬(1837)되었고 그의 아들에 의해 보완(1840)된 것이다.

역사학은 주로 개별적 사건을 중시한다. 반면 철학은 보편적 원리나 질서를 탐구한다. 따라서 역사철학이란 개별 사건이 명멸하는 역사 속에서 보편적 원칙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헤겔 역시 역사철학이 특정 사건이나 시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세계사 자체를 그 대상으로 삼는다”고 설파했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우연한 사건들의 무질서한 혼돈도 아니고 신의 신비로운 계획이 관철되는 섭리도 아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인간 자신이다. 따라서 역사는 결코 관조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우리에 의해 늘 새롭게 만들어지는 실천적 삶의 장이다. 이처럼 주체로서의 인간이라는 각성이 역사철학의 전제인 것이다.

이성과 열정 사이

헤겔은 역사철학의 이념이자 원리를 ‘역사 속의 이성’이라고 보았다. “철학이 역사를 향할 때 관여하는 유일한 사상은 단순한 이성의 사상, 즉 이성이 세계를 지배하고 따라서 세계역사도 이성적으로 진행한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그는 역사가 이성에 의해 이끌려 지속적으로 진보·발전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헤겔은 이성을 단순히 인간의 사유능력으로 국한해 보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하나의 실재(實在)로 끌어올렸다. 역사의 운동·발전 과정에서 현실로 드러나는 절대적인 실재를 상정하여, 그것을 이성 또는 정신이라고 불렀다. 이런 시각으로 프랑스혁명을 바라보면, 그 혁명은 이성을 억압해온 수많은 특권과 실정법에 대한 이성의 투쟁인 것이다.

이처럼 이성은 전체적이며 절대적이고 운동적인 실재다. 그는 그것이 유한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형태로서 현실을 역사로 파악하고자 했다. 이런 방법을 통해야 비로소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을 전체적·통일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성의 실재성이야말로 그의 관념론이나 역사철학의 핵심적 아이디어다.

여기서부터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는 명제가 도출된다. 세계는 이성과 현실이 일체가 되어 나타나는 것인 바, 필연적으로 그 자체 내에 모순을 산출하고 또한 그것을 극복하면서 발전한다. 따라서 종종 이 명제가 현실긍정주의로 매도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것은 오히려 현실을 끊임없이 허무는 변증법적 명제인 것이다.

역사가 이성 또는 정신에 의해 지배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헤겔은 “물질의 본질은 중력이고 정신의 본질은 자유다”라고 설파했다. 여기서 자유란, 어떤 정지된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자유를 위협하고 부정하는 것들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쟁취되고 의식적으로 자각된 자유다. 따라서 정신이 지배하는 역사는 당연히 정신의 본질인 자유가 확장되는 역사다.

그는 이런 자유의 확장을 구체적인 세계사 속에서 더듬어본다. 고대 동양사회에서는 군주 한 명만 자유롭고 그밖의 모든 사람은 부자유했다. 그리스시대와 로마시대에는 일부만 자유롭고 나머지 다수는 그러지 못했다. 반면 게르만 사회에 이르러 드디어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졌다. 게르만 사회란 중세 이후 서유럽 사회 전반을 가리킨다.

이런 견해는 유럽중심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성 또는 정신이 역사를 지배하고 그에 따라 역사는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보한다는 그의 생각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마르크스도 그의 관념론은 격렬하게 비난하면서도, 그의 역사철학의 틀을 자신의 역사이론에 고스란히 차용했다.

그런데 역사가 단순히 이성에 이끌려 진보한다면 그것은 한낱 기계적 결정론이나 도덕주의에 함몰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헤겔은 전면에 나서서 역사를 움직이는 주역은 인간이라고 보았다. 즉 역사 발전의 실천적 도구는 이성이 아니라 ‘욕구, 열정, 이해, 성격, 재능 등으로 일어나는 인간의 여러 행동들’이다. 그것들은 서로 투쟁하며 명멸하다가 사라진다.

반면 “이성은 전혀 침해받지 않고 손상되지 않은 채 배후에 남아 있다”. 달리 말해 이성은 자신이 역사 속으로 직접 뛰어들지 않고도 인간의 ‘열정’을 활용하여 ‘배후에서’ 자신의 목적을 차질 없이 실현한다. 이것이 바로 ‘이성의 간지(the List der Vernunft)’다. 이를 통해 헤겔은 기계적 결정론이나 도덕주의의 함정을 절묘하게 해소하고 역사를 생동감 넘치는 인간 드라마로 포착했다.

이처럼 역사는 인간의 ‘열정’으로 만들어지되, ‘이성의 간지’가 작용한다. 이때 간혹 남다른 열정과 통찰로 미래를 개척하는 ‘세계사적 개인’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는 고난을 당하고 좌절하기 일쑤다. 미래를 열기 위해 현재를 파괴함으로써 강렬한 저항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사적인 위인들은 영광을 구하지 않고 희생을 묵묵히 감수한다. 그 역시 궁극적으로는 이성의 실천적 도구일 뿐이다.

功도 過도 우리의 공동유산

오늘날 유물사관을 비롯해 기계적 결정론을 신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역사를 도덕적 잣대로 재단하려는 사람은 여전히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우리 현대사를 둘러싸고도 도덕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는 당장 눈에 보이는 시시비비를 초월해 움직인다. 심지어 선한 발단이 악한 결말로 이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역사는 인간의 ‘열정’으로 만들어지되, 그 배후의 이성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것이 헤겔의 주장이다.

‘역사철학강의’는 현대사 수렁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진지한 통찰을 제공한다. 헤겔은 역사 발전의 진정한 동력은 도덕이 아니라 불굴의 ‘열정’이라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우리 현대사 역시 선배들의 열정으로 이룩된 우리 모두의 공동유산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공(功)도 있고 과(過)도 있다. 그중에 어느 한쪽만 바라보면 역사는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아쉽게도 적폐론은 현대사를 대체로 과(過)로 보는 관점이다. 또한 너의 역사와 나의 역사를 가르는 관점이다. 보수든 진보든 과도한 도덕적 몰입은 오히려 국민적 열정을 냉각시킬 수 있다. 현대사의 공과(功過) 역시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공동유산 중 일부다. 그것들을 균형 있게 보듬어 안으며 국민적 열정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것이 위대한 지도자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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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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