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1월 30일~12월 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GDP 총액 규모로 1·2위 국가가 된 미국과 중국 사이에 이미 무역전쟁이 불붙고 있는 가운데 만나는 트럼프·시진핑의 ‘트시 미팅(特習會)’에서 과연 또 다른 불꽃이 튈 것인지, 돌연한 화해라는 극적 반전(反轉)이 이뤄질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베이징(北京)의 분위기는 극적 반전을 기대하는 편이지만 워싱턴의 분위기는 또 다른 불꽃이 튈 것이라는 예상이라고 한다. 현재 진행 중인 미·중 무역전쟁이 세계 패권을 놓고 대결하는 신냉전이 될 것인지, 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 미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할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증폭되는 가운데 미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연구센터 소장 마이클 필스버리(Michael Pillsbury)가 쓴 ‘백년의 마라톤(The Hundred Year Marathon)’이라는 책이 미국 안팎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의 관점에 따라 “미·중 관계는 앞으로 패권 전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예상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마이클 필스버리는 보수 성향의 허드슨연구소의 대표적인 중국전략 전문가로, 미 국방부 중국 전략 담당관을 지냈다.

필스버리의 ‘백년의 마라톤’은 손자병법(孫子兵法)의 36계 가운데 제1계인 ‘만천과해(瞞天過海)’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Deceive the heavens to cross the ocean.” 바로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넌다’는 뜻이다. 강한 적과 싸울 때의 손자병법 제1계는 기만전술로, 적의 눈을 피해 적이 모르는 가운데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계략이다. 필스버리의 ‘백년의 마라톤’은 미국이 그동안 중국의 만천과해 계략에 빠져 속아왔다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중국을 공부하는 많은 미국 학생들은 중국을 서양 제국주의 앞에서 무기력했던 피해자로 보는 시각을 갖도록 교육받아왔다. 1945년생인 나(필스버리)도 1967년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면서 국제정치학 교수들이 서양과 일본은 어떻게 중국을 잘못 상대해왔는지에 대해 반복해서 강조하는 강의를 들었다. 우리 세대는 무언가 중국에 대해 속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우리를 가르치는 많은 교과서들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다.”

“그런 시각은 우리에게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중국을 도와주어야 하며, 중국을 선의의 국가이며, 서양제국주의의 희생 국가로 단정하는 맹목적인 고정관념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런 시각은 미 행정부에서 중국을 담당하는 관리들의 일방적인 견해를 형성했으며, 미국의 중국 전문가들이 미 대통령과 미국 지도자들에게 제공하는 견해에 영향을 미쳤다.”

필스버리는 미국의 중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중국어조차도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한다. 중국어는 알파벳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어가 있을 뿐이며, 예를 들어 ‘ma’라는 발음을 가진 단어는 성조에 따라 4개의 서로 다른 뜻을 가진 단어로 변화한다는 것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ma’가 제1성으로 발음되면 ‘mother’라는 뜻을 가진 ‘ma(媽)’가 되고, 제2성으로 발음되면 ‘마비된다’는 뜻의 ‘ma(麻)’가 된다. 또 제3성으로 발음되면 ‘horse’라는 뜻의 ‘ma(馬)’가 되고, 제4성으로 발음되면 ‘욕한다’ ‘비난한다’는 뜻의 ‘ma(罵)’가 된다. 중국어가 미국인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언어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이해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스버리는 “중국어는 너무 복잡해서 마치 비밀 암호코드와 같으며 외국인들은 웬만큼 번역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오판을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필스버리는 1983년에 출판된 ‘덩샤오핑 문선(鄧小平文選)’에서 사용된 생략화법을 베이징을 방문하는 미 상원의원 대표단에 설명해주어야 했다고 한다. 또 1987년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는 주 총리가 사용하는 모호한 표현에 대해 설명하는 자료를 만들어야 했고, 2002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미 국방부를 방문했을 때 한 말은 거의 암호를 해독하듯 풀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1971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중국과의 화해정책을 펴며 이른바 ‘건설적인 개입(constructive engagement)’이라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에 대한 지원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건설적인 개입’ 정책은 학자들과 외교관, 대통령들과 정책 입안자들, 저널리스트의 생각을 지배한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필스버리 자신도 수십 년 동안 그런 생각으로 중국에 대한 정책을 입안했다고 고백했다. 그 과정에서 필스버리 자신을 포함한 미국의 중국 정책입안자들은 허약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중국을 민주적이고 평화를 추구하는 국가로 만들 것이라는 ‘일방적 생각(wishful thinking)’을 갖게 됐다고 했다.

필스버리는 자신을 포함한 미국의 중국 전문가와 연구자들의 그런 잘못된 선입견들은 5가지의 잘못된 견해를 갖도록 만들었다고 정리했다. 첫째 적극적인 개입이 미국과 중국의 협력관계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판단, 둘째 미국의 지원이 중국을 민주주의의 길로 안내할 것이라는 판단, 셋째 중국이 허약한 꽃송이라는 판단 등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넷째 중국은 미국과 같은 나라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일방적인 판단을 미국이 하게 됐고 마지막으로 다섯째가 중국 내 매파(강경파) 세력이 약하다는 터무니없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필스버리는 미국이 잘못된 생각과 판단으로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시작 이래 40년 동안 중국을 지원해왔는데, 그 결과 미국의 국내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치려는 중국의 정치적 개입 상황과 마주치게 됐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100년이 되는 2049년에는 중국이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패권국을 차지하는 전략”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필스버리는 결국 2049년에는 전 세계의 질서를 중국이 재편하는 판이 짜일지도 모르며,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중국의 계략은 손자병법 36계 가운데 30번째 계략인 ‘The guest becomes the owner(反客爲主·손님이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다)’ 계략이라고 진단했다. 필스버리는 “마오쩌둥에서 덩샤오핑을 거쳐 현 시진핑까지 100년간에 걸친 마라톤을 통해 중국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바로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패권국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지난 10월 4일 “미국은 앞으로 중국을 rebuild(재건축) 하겠다”고 경고한 것이 바로 필스버리의 ‘백년의 마라톤’의 영향이라는 것이 워싱턴 중국 전문가들의 견해라고 한다.

박승준 아시아 리스크 모니터 중국전략분석가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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