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날 날씨 뉴스를 보니 주말 한파가 화제입니다. 북극 한기가 남하해 영하 10도의 한파가 올겨울 처음으로 엄습한다고 난리입니다. 요즘 확실히 드는 생각은 나이가 들수록 추위가 점점 싫어진다는 겁니다. 영하 10도의 나이에 얇은 체육복만 입고 운동장을 뛰어다닌 어린 시절 기억이 또렷한데 그걸 엄두도 못 낼 나이가 됐습니다.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폭염과 한파가 서로 기싸움을 벌이듯 점점 기승을 부리다 보니까 더위와 추위 중 어느 쪽이 더 견디기 힘든지도 오락가락합니다. 폭염에 시달릴 때면 그래도 추위가 낫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못 견딜 추위가 엄습하면 줄줄 흘리던 여름철 땀방울마저 그리워지곤 합니다.

인류학자나 진화과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람은 추위에 약하고 더위에 강한 것이 당연합니다. 인류는 더위에 강하도록 진화해왔다는 얘기죠.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의 말로는 “인간의 몸은 더위에만 잘 견디게 진화해왔다”는 겁니다. 그 증거가 우리 몸에 있는 200만개 정도의 땀샘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땀을 흘리는 것은 아주 효율적인 냉각 시스템으로 비유됩니다. 땀을 배출하면서, 또 피부의 땀이 식으면서 두 번에 걸쳐 열을 식혀준다는 겁니다. 이런 냉각 시스템을 발전시켜온 결과인지 인간은 영장류 중 유일하게 발가벗은 존재가 됐습니다. 반면 추위에는 아주 젬병입니다. 인간이 알몸 상태로 자연에 버려질 경우 불이 없으면 영하의 추위를 단 몇 시간도 견딜 수 없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입니다.

알몸의 인간이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외국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를 최초의 인류처럼 완전히 발가벗긴 후 아무것도 주지 않은 상태에서 아프리카 사바나에 던져놓고 얼마나 견디는지 실험한 겁니다. 한 달인가를 견디는 것이 목표였는데 흑인 여자는 며칠 못 가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을 못 견디게 괴롭힌 건 더위도, 추위도, 배고픔도 아닌 야생의 곤충들이었습니다. 벌레에 밤새도록 물어뜯기면서 잠을 제대로 못 자다 보니 거의 신경쇠약의 상태로 빠져들더군요. 백인 남자도 목표를 채우지 못하고 결국 앰뷸런스에 실려갔는데 배고픔에 따먹은 열매가 문제였습니다. 문명의 이기들을 벗어버린 인간은 진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추위에 약한 존재일 뿐더러 현실에서도 더위보다는 추위가 더 위협적입니다. 전력 부족으로 인한 블랙아웃 가능성을 우려할 때 전문가들이 말하는 최악의 시나리오 역시 폭염이 아닌 한파를 배경으로 삼습니다. 폭염이 들이닥친 밤에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더라도 밖에 나가 자면 죽지는 않지만, 한파가 닥칠 때 전기가 나가면 사망자들이 속출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한파에 목숨을 위협받는 사람들은 전기장판 하나에 의존해 겨울을 나야 하는 독거노인 같은 계층입니다. 젊은 기자 시절 쪽방촌을 취재하면서 이들이 얼마나 열악하게 사는지는 직접 목격한 적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한파 경보는 목숨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적색 경보나 다름없을 겁니다. 겨울을 어떻게 나느냐가 걱정인 사람들이 늘고 있는 듯해 걱정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키워드

#마감을 하며
정장열 편집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