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감’과 ‘촉’에 자신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감을 믿고 즉흥적인 판단을 잘 해서 성공해왔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전준비를 싫어한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책들을 보면, 트럼프는 준비를 너무 많이 하면 오히려 순발력 있는 판단을 망치기 쉽다고 믿는 것 같다. 지금까지 트럼프의 감과 촉은 상당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미국과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미국 대통령으로서 그 촉과 감이 여전히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지는 잘 모르겠다.

미국 대통령의 중요 일과 중 하나가 ‘대통령 일일보고(PDB)’를 보는 것이다. 미국엔 국가정보국(DNI) 아래 중앙정보국(CIA) 등 16개 정보기관이 있다. CIA는 국제 문제를 담당하는데, 하루 6~7개의 중요 이슈를 정리해 대통령을 위한 보고서를 만든다. 이 정보 보고서는 신문기사와 비슷해서 핵심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제목을 붙이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대통령 일일보고’엔 도대체 어떤 기밀이 담겼는지 누구나 궁금해한다. 정보기관들이 엄청난 공력을 들여 만드는 것이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트럼프는 정보기관들이 생산해내는 보고서에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세계 최강의 정보력을, 또 단 한 명의 독자인 대통령을 위해 만들어지는 보고서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정보기관의 판단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북한과 협상을 한 결과 “더 이상 북한으로부터의 핵 위협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보기관은 물론 일반 전문가들도 이런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확신을 가지고 계속 주장한다. 정보기관들의 근심은 커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보고서는 더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다고 한다. 정보기관들이 사전에 ‘경고’했다는 기록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9·11테러 사건 때도 정보기관들이 사전에 위험을 충분히 경고했느냐를 둘러싸고 엄청난 논란이 일었다.

트럼프는 최근에도 자신의 본능적인 느낌에 대해 이야기한 일이 있다. 그 느낌을 통해 다른 어떤 사람이 말해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대통령이니 정보 보고서를 열심히 들여다볼 리가 없다. 그래서 대통령과 자주 만나는 참모나 장관을 위한 정보 보고서가 더 중요해졌다고 한다. 그들이 보고서를 읽고 트럼프에게 전해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대통령에 따라 보고서의 형식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경우 긴 글을 읽는 걸 싫어해서 짧게 요약하고 그래픽을 많이 넣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서도 비슷한 방식이 적용된다고 한다. 한눈에 확 들어오는 그림을 삽입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정보 보고서를 직접 읽기도 하지만 대개는 전문적인 브리핑 담당관이 직접 가서 상황을 설명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브리핑 담당관은 특정 이슈 전문가보다는 국제 문제 전반을 이해하는 담당관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날 트럼프의 관심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쩐지 미국과 세계의 운명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해진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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