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초가 되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점집입니다. 새해의 운을 살피기 위해 사람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점집을 들락거립니다. 사람들이 거기서 얻는 것은 뭘까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얘기인 줄 알면서도 때로는 기대와 설렘을, 때로는 위안과 안도감을 자신의 사주와 새해 토정비결에서 찾아내는지 모릅니다.

저는 사주팔자와 운을 잘 믿지 않습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름을 짓지 못해 고민하다가 평소 알고 지내던 역술가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사주 잘 보는 것으로 평판이 자자했던 이 양반은 “아이 사주를 보니 허약하다고 나온다”면서 이름으로 허약함을 막아야 한다고 권했습니다. 그리곤 무지막지한 이름 세 개를 건네줬는데, ‘봉’ 자가 들어가는 등 시쳇말로 촌스럽기 그지없는 이름들이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 내내 고민하다가 결국 발품까지 판 ‘비싼’ 이름이 적힌 종이를 찢어버리고 대신 교보문고에서 작명법 책을 사들고 돌아왔습니다. 며칠 머리를 싸매다가 나름 부르기에 근사한 이름을 아이에게 지어줬는데 청년이 된 아이에게서 허약한 기미를 찾기 힘듭니다.

저는 운은 잘 믿지 않지만 운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신통함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역술가들이 나름 신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접한 것은 도계 박재완 선생의 장례식장에서였습니다. 1992년 ‘마지막 명리학자’로 칭해지던 도계 선생이 돌아가신 후 대전의 상가에 취재를 갔더니 선생의 아들이 “부친은 돌아가실 날짜와 시간을 미리 말씀해놓으셨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음력 9월 초나흘 축시가 그때니 마음의 준비들을 하고 있으라”는 당부가 현실이 됐다는 겁니다. 아들이 아버지가 직접 적어놓은 ‘그날 그 시간’을 보여주는데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생전에 유명인들이 앞다퉈 사주풀이를 부탁하던 도계 선생의 신통함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무척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비참한 일생을 마친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사주풀이입니다. 도계 선생은 김씨의 사주를 풀이하면서 “차를 조심하라”고 했답니다. 이후 김씨는 차 사고를 당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았지만 결국 그를 죽음올 몰아간 건 ‘차’지철 경호실장이었습니다.

도계 선생 상가에는 선생의 명성 때문인지 전국의 유명 역술인들이 많이 찾았습니다. 서울 비원 앞에서 ‘역문관’을 운영하던 유충엽씨와 ‘백자명’이라는 호로 더 유명했던 장태상씨 등 내로라하는 역술인들이 찾아와 선생을 추모했습니다. 그런데 이들과 하룻밤을 지내면서 느낀 것은 신통함을 부르는 평범함이었습니다. 한자리에 모인 유명 역술인들에게 기회다 싶어 사주와 팔자의 비밀을 밤새 캐물었지만 이들은 ‘상식’과 ‘공부’ 이상의 얘기를 하지 않더군요. 운도 일상의 상식과 도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다소 허탈한 얘기었습니다. 도계 선생의 수제자를 자처하던 유충엽씨는 “주역은 고차방정식”이라는 말도 했는데 이후 ‘역문관’을 찾으면 카이스트 박사과정 학생들을 방에 앉혀놓고 진짜 수학 문제를 풀듯이 주역을 가르치더군요.

우리가 믿는 운과 팔자는 우리의 운명을 어디까지 좌우할까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사람의 운을 따라가기는 힘들다는 그때 그 도사님들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선합니다. 독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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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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