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 중동부에 폭설을 내린 눈폭풍이 워싱턴에도 불어닥쳐 주말엔 꼼짝없이 갇혀 지냈다. 워싱턴은 눈이 그렇게 많이 내리는 지역은 아니다. 제설 장비와 인력이 부족해 눈이 쌓일 정도로 내리면 하루이틀 정도는 연방정부와 학교가 문을 닫는다. 안 그래도 미국 연방정부는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상태인데, 눈 때문에 문을 닫아야 하니 이중 셧다운을 한 셈이 됐다.

셧다운은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예산에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비용을 배정해달라고 요구하자 민주당이 한 푼도 배정할 수 없다며 맞서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이 됐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트럼프에게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12일을 기점으로 셧다운 상태가 22일을 넘기면서 역사상 최장 기록이었던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21일을 넘어섰다. 각 부처에선 필수 직원들만 근무하면서 꾸려가고 있는데 여파는 점점 커지고 있다. 보수를 받지 못한 공무원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하기에 이르렀다. 연방정부의 손길이 미치는 곳이 워낙 많다 보니 이젠 항공기 안전에서 성장률 둔화 가능성까지 온갖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론은 점점 악화하고 있다. 최근 몇몇 여론조사를 보면 연방정부 셧다운의 책임은 트럼프와 공화당 쪽에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53~55% 수준이다. 반면 민주당 책이라고 보는 쪽은 29~32% 정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이 멕시코 국경 때문에 생기는 위기 상황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데,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셧다운 26일째인 16일엔 트럼프 대통령에게 오는 1월 29일로 예정된 신년 국정연설을 연기하거나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국정연설 당일 경호를 담당해야 할 비밀경호국과 국토안보부가 셧다운의 영향으로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셧다운의 영향은 어떤 의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많이 받고 있다. 플로리다 별장 마라라고 휴가 계획도 접었고, 백악관 만찬은 자신이 돈을 내 패스트푸드를 사서 손님을 대접했다. 무엇보다 집권 이후 최고의 성과로 자랑하던 성장률과 일자리 등 경제지표가 위협받을 지경에 들어섰다. ‘타고난 협상가’라던 트럼프의 자랑도 타격을 입게 됐다. 트럼프는 자신이 기존 정치인이 갖지 못한 협상력을 발휘해 미국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민주당과 극한 대립을 하면서 연방정부의 마비 상태를 장기화시키고 있다.

미국에서 연방정부 셧다운이 처음도 아니니까 다들 이렇게 며칠 하다 말겠지 생각했는데 장기화되자 곳곳에서 불만과 피로감이 묻어난다. 셧다운에 들어가면 정치권이 예산안에 합의할 때까지 200만명의 미국 공무원 중 군인, 경찰, 소방, 우편, 항공 등 국민의 생명 및 재산 보호에 직결되는 ‘핵심 서비스’에 종사하는 필수 인력을 제외한 연방 공무원 80만~120만명이 강제 무급휴가를 떠나게 된다. 남은 공무원들은 업무를 계속하지만 예산안이 결정돼야 보수를 받을 수 있다. 트럼프는 아직은 타협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국경장벽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민주당을 비난하는 분노의 트윗을 쏟아내고 있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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