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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감을 하며
[2543호] 2019.01.28

그리운 거인들

정장열  편집장 

명절 차례상에 놓인 흑백사진으로만 뵀지만 할아버지는 언제부터인가 제 가슴속 거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만주 봉천(지금의 선양)에서 자라셨습니다. 윗대가 고향인 평안북도 철산을 떠나 일찌감치 만주로 건너갔다고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공부를 곧잘 하셨는지 만주의 독립운동가들이 눈여겨보고 학비를 보태준 덕분에 대학 진학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톈진의 난카이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셨다는데, 당시 기준으로 보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인텔리의 길을 걸은 셈입니다. 1919년 문을 연 난카이대학은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모교로도 유명합니다.
   
   할아버지의 시련은 대학을 마치면서 시작된 듯합니다. 당초 프랑스로 유학을 갈 예정이었는데 상하이에서 사변이 일어나는 바람에 좌절되고 말았다고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상하이에서 프랑스행 배를 제대로 탔으면 아마 덩샤오핑이나 저우언라이와 파리에서 동문수학을 하는 사이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프랑스 유학이 좌절된 채 만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삶이 궤도에서 이탈해버리고 맙니다. 당신을 도와준 독립운동가들을 외면하고 일제에 협력한 겁니다. 중국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젊은이가 만주를 통치하던 일제로서는 요긴했을 겁니다. 그 무렵 할아버지는 술을 즐기고 심지어 아편까지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아편을 끊으면서 얼마나 괴로워하셨는지 들려주곤 합니다.
   
   광복 후 할아버지는 식솔을 이끌던 증조할머니와 함께 북한을 거쳐 남한으로 내려와 실향민들이 모여 살던 해방촌에 정착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이 별반 남아 있지 않은 초로의 지식인이 돼버린 듯합니다. 반면 해방촌에서 ‘호랑이’로 통했던 증조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하면서 그 어려운 시절 식솔들을 지켰습니다. 할아버지는 말년에 고등학교 수위로도 일했다고 합니다. 영어를 잘하는 할아버지 수위의 정체를 학교 선생님들이 궁금해했다는 이야기도 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자주 들었습니다.
   
   지면에 몇 줄로 옮겼지만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사신 게 분명합니다. 할아버지가 제 가슴속 거인으로 자리 잡은 것도 할아버지의 삶 속에 녹아든 시대의 엄청난 무게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그 무게에 짓눌려서인지 할아버지는 환갑 무렵 세상을 뜨셨고 망우리 공동묘지에 영면하셨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가족사의 일단을 푼 것은 김효정 기자가 쓴 이번 설 합본호 커버스토리 때문입니다. 독립유공자들을 유별나게 많이 배출한 안동 내앞마을 이야기인데, 결국 김효정 기자의 가족사나 다름없습니다. 기사의 배경이 안동에서 만주로, 만주에서 다시 안동으로 옮겨가는데 김 기자가 풀어낸 이야기가 한 편의 대하소설 같습니다. 가슴속에 거인을 품은 것이 어찌 저와 김 기자뿐이겠습니까.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은 우리 모두의 가족사를 대하소설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자신의 온전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또는 가족의 안위와 생존을 위해, 한편으론 나라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시대를 헤쳐나온 거인들의 이야기가 모든 사람의 가슴에 어떤 형태로든 담겨 있을 겁니다. 곧 명절이 다가옵니다. 설 차례상 앞에서 가슴속 거인들과 오랜만에 조우하시길 바랍니다. 독자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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