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제는 과도한 근로시간을 줄여 근로자 삶의 질을 높이고 경제 전반의 선순환 구조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일자리가 줄어들고, 임금소득이 감소하는 등 부정적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가장 최근에 실시한 2016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의 약 8.5%가 주당 평균 52시간을 넘게 일하고 있어 아직 우리 산업현장에는 장시간의 근로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실질GDP 10조7000억 감소

주 52시간 근무제는 근로시간 단축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체계적인 검토 없이 시행되고 있다. 현재 공공기관과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만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2020년부터는 30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적용될 예정이다. 때문에 중소기업의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면 부정적 효과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

최근 민간경제연구소 파이터치연구원(원장 라정주)은 ‘주 52 근로시간 단축의 경제적 파급효과’ 연구보고서를 발표하며 주 52시간 근무제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을 안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할 경우 연간 일자리가 40.1만개, 임금소득이 5.6조원, 실질GDP가 10.7조원, 소비가 5.5조원, 투자가 1.8조원, 기업 수가 7.7만개 감소한다. 근로시간 단축 시 단위임금이 상승하고, 이에 따라 고용이 감소하면서 기업의 생산과 근로자 가계의 임금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비숙련공의 일자리(16.6만개)보다 숙련공의 일자리(23.5만개)가 더 많이 감소한다는 결과다. 숙련공의 업무는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과 노하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근로시간이 줄었다고 해서 새로운 인력이 기존 인력을 대체하기 어렵다. 근로시간 단축 시 기업은 숙련공 일자리부터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전문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이 과업 수행에 꼭 필요한 근로시간에 대한 제약을 받으면, 신규 고용을 통해 부족한 근로시간을 채우거나 과업수를 줄이고 숙련공 일부를 해고해야 하는 선택에 직면한다. 숙련공의 업무는 신규 고용을 통한 대체가 어렵기 때문에 해당 기업은 숙련공 일부를 해고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만약 직원 3~4명 규모의 기업이라면 직원 감축 후 사업 운영이 어려울 것이므로 폐업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래저래 상대적으로 인력 대체가 쉬운 비숙련공보다 숙련공의 일자리가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비숙련공의 근로시간 제한 시 자동화가 촉진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의한 자동화 기술 발달로 근로시간 단축 시 비숙련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 용이해졌다.

이러한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 결과를 종합해볼 때 주 52시간 근무제는 정책 의도와 달리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여가 대신 ‘투잡’ 증가 가능성

이러한 부정적 파급효과에도 불구하고 주 52시간 초과 근로자들이 추가근로에 따라 임금소득이 늘어나도 만족도가 줄어든다면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자를 위해 필요한 제도로 볼 수 있다. 거꾸로 얘기해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소득이 줄어도 만족감이 늘어난다면 주52시간은 타당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파이터치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월 임금소득이 1% 증가할 때 주 68시간 일하는 근로자의 직업만족도는 0.013% 증가했다. 근로시간이 긴 근로자들도 초과근무를 통해 임금소득이 늘어나면 만족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근로시간을 줄이면 정부의 예상처럼 여가가 늘어나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소위 ‘투잡’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2018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르면, ‘시간 관련 추가취업 가능자’가 2017년 대비 10.3%나 늘어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2018년 실질경제성장률은 2.7%로 전년 대비 0.4%포인트나 둔화되었고, 2019년에는 2.3%까지 낮아질 것이라고 경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이러한 경제 현실과 정책의 예상되는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원천적으로 재논의해야 한다. 기업 전반을 대상으로 기업들이 근로시간 단축을 감내할 여력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하여 새로운 정책 처방을 내려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 예외규정 신설해야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원천적 재논의가 불가능하다면, 탄력근무제의 단위기간을 최대한 확대해 기업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근로시간 상한이 낮은 나라도 탄력근무제 단위기간을 우리나라보다 길게 설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탄력근무제 최대 단위기간은 취업규칙으로 정할 수 있는 기간이 2주이고, 노사가 별도로 합의할 경우 최대 3개월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반면 독일은 탄력근무제의 최대 단위기간이 6개월이고, 미국과 일본은 최대 1년의 단위기간을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탄력근무제를 실시하더라도 늘 긴 근로시간이 필요한 직종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부담이 완화되지 않는다. 고도의 숙련노동이 필요한 업무는 근로시간 단축 시 신규 고용으로 부족한 일자리를 단기에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업무의 특성과 종사자의 직업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근로시간 단축의 예외규정을 신설하는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고 중소기업까지 주 52시간 근무제를 확대하는 기존 정책을 강행한다면, 가뜩이나 심각한 일자리 충격이 상상을 초월할 수 있음을 정부는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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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파이터치연구원 연구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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