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세 개 신문을 구독한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그리고 뉴욕타임스이다. 지난 3월 13일 수요일 아침엔 신문을 들춰보다 놀랐다. 트럼프에 대한 특별한 기사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아서다. 이상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정은을 만나 협상을 ‘노 딜’로 마무리하고 돌아온 후 워싱턴이 전과 달리 조용해졌다고 느낀다. 이날은 트럼프의 트위터를 들여다봐도 대단한 얘기가 없었다. ‘미국을 위대하게’ 같은 대선 때 구호를 한 번 쓴다든지, 미국 경제지표가 호조라는 기사를 다시 올리는 정도이다.

트럼프가 하노이에 있던 지난 2월 말 워싱턴에선 그의 해결사로 불렸던 마이클 코언 변호사의 의회 증언이 있었다. 트럼프를 사기꾼이자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인 그의 증언은 의외로 폭발력이 약했다. 그 이후 트럼프는 여유 있어 보인다. 최근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트럼프를 탄핵하려고 해봤자 나라만 분열될 뿐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해 트럼프를 기쁘게 만들었다.

트럼프만 조용하면 세상이 다 조용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분위기는 그러나 정상은 아니다. 뉴스 생산라인이 활력 있게 돌아가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백악관 출입기자가 올린 백악관 언론 브리핑룸 사진을 보았다. 그는 텅 빈 회견장 사진을 올리고 “한때 여기서 정례 브리핑을 했었다”고 썼다. 그 사진을 보면서 미국에서 중요한 무엇인가가 멈추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백악관 언론 브리핑룸은 생각보다 작다. 고작해야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기엔 너무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어 브리핑룸을 넓히네, 옮기네 말도 많았다. 하지만 대변인과 기자들 간의 언쟁과 대립이 잦아지고 그 자체가 뉴스가 되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정례 언론 브리핑은 사실상 중단됐다.

매일 생중계됐던 백악관 정례 언론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묻고 대변인이 답하는 과정은 국민과 대통령 사이의 간접 대화이다. 거기서 나오는 정보와 토론은 매일 먹는 밥과 같다고 생각했다. 미국 주요 이슈의 흐름이 무엇인지 그보다 더 잘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하지만 트럼프는 자신을 대신해 말해줄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요즘은 트럼프 발언이 기자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 건 대통령 일정을 취재하는 기자단을 통해서이다. 트럼프가 오며 가며 기자들과 나눈 짧은 대화가 기사화될 뿐이다.

트위터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트럼프의 직거래 소통 방식은 마치 직접민주주의 방식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론의 질문할 권리를 빼앗은 채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기 때문에 균형을 잃기 쉽다. 게다가 트럼프는 자신을 비판하는 기사는 모조리 ‘가짜 뉴스’로 반격해버린다. 언론과 백악관의 소통이 줄어든 탓인지 대통령 발언도, 비판적 보도도 점점 더 강도가 세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요 며칠 ‘조용해진 트럼프’가 더 예외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해 트럼프 당선을 도왔다는 의혹을 조사 중인 뮬러 특검의 보고서가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이미 언론사는 특별취재팀을 조직하고, 법무장관 대행 집 근처에는 기자들이 몰려들고, 의회는 보고서 내용을 알아내기 위해 뛰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가 넘어서야 할 가장 난이도 높은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 평온함은 며칠 안에 끝날 것이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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