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대선이 끝나고 그해 말 트럼프가 ‘당선 감사 캠페인’을 한다고 해서 앨라배마주 행사에 간 일이 있다. 대선 유세 때와 똑같은 분위기의 유세장에서 트럼프는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흐뭇해했다. 그날 트럼프는 캘리 콘웨이 선거본부장을 무대 위에 세워, 미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대통령을 만든 여성이라고 치켜세웠다.

트럼프 선거캠프는 지금 트럼프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늘 문제가 생겨서 삐걱거렸다. 콘웨이는 난파선처럼 어수선한 선거캠프를 맡아 끝까지 이끈 것은 물론 트럼프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당연히 트럼프의 신임이 컸고, 콘웨이의 목소리도 따라서 커졌다. 콘웨이는 트럼프와 비슷한 면이 있어서 순식간에 누구나 알아보는 유명인사가 된 걸 즐겼다. 그리고 고문으로 백악관에 입성했다. 하지만 그가 이 정부에서 정확하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대통령 딸 이방카 등 백악관의 다른 많은 고문들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집권 중반에 들어선 지금은 ‘개국공신’ 콘웨이의 존재도 희미해졌다.

그런데 며칠 전 난데없이 콘웨이의 남편 조지 콘웨이 변호사와 트럼프 대통령의 설전이 벌어졌다. 조지 콘웨이가 트럼프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 게 발단이었다. 트럼프 정부를 보고 있으면 거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상태’인 것처럼 느껴진다. 참모들은 대통령 밑에서 일할 때야 다들 참고 수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아니다 싶으면 할 말 다 하고 털고 나온다. 충성스럽게 보였던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도 한계에 달하자 자신은 대통령과 의견이 다르다는 걸 명확하게 밝히고 장관직을 내려놨다.

콘웨이 남편의 비판에 화가 난 트럼프는 인정사정없이 퍼부었다. 애들 싸움 같았다. 트럼프는 콘웨이 변호사가 아내의 성공을 시기하고, 정부에서 한자리 얻지 못한 데 화가 나서 자신을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로 패배자라고 손가락질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싸우는 트럼프의 성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참모의 배우자와 이런 식으로 앞뒤 안 가리고 싸우다니. 입이 안 다물어졌다.

트럼프는 싸울 때 체급을 따지지 않는다. 상대가 정적인 힐러리 클린턴이든, 자신이 발탁한 참모이든 가리지 않는다. 대적할 힘이 없는 약자와 싸워서 이기는 건 의미도 없거니와 비겁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조차 한 번 더 생각한다. 대통령쯤 되면 더욱더 상대를 가릴 법한데 트럼프는 개의치 않는다.

트럼프는 최근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에 대해서까지도 비난을 퍼부었다. 망자에게 싸움을 건 꼴이랄까. 매케인 전 상원의원이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을 반대하고, 트럼프 X파일 공개에 연루됐던 것을 문제 삼고, 온갖 시시콜콜한 얘기를 꺼내 ‘뒤끝’을 보여줬다. 결국 매케인의 가족은 물론 미트 롬니 상원의원까지 나서서 자제를 요청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얼마나 크고 강한지를 잊어버리거나 아예 고려하지도 않은 채 정색하고 싸운다. 트럼프가 급도 격도 따지지 않고 싸우는 모습을 볼 때면 세계에서 제일 강한 나라가 ‘미국 우선주의’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외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마 트럼프는 나라든 개인이든 약자의 처지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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